미세 먼지 예보를 담당하는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 예보관들은 겨울철 기온만 봐도 미세 먼지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한다. 거센 추위가 수그러들면 미세 먼지 농도가 짙어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주기가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겨울철 기후 특성인 '삼한사온(三寒四溫)'에 빗대 '삼한사미(三寒四微·삼일은 춥고 사일은 미세 먼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계절에 따라 미세 먼지의 원산지 구성이 달라진다. 여름과 가을에는 국내 발생 미세 먼지 비중이 높지만, 겨울이 되면 중국발 미세 먼지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이 먼지는 북서 계절풍을 타고 유입된다.

지난달 12일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서 차량들이 짙은 스모그 속을 운행하고 있다. 난방용 석탄 사용이 급증하는 겨울철이 되면 중국은 스모그로 몸살을 앓는다. 이 스모그에 포함된 미세 먼지는 북서풍을 타고 이동해 우리나라에도 피해를 준다.

중국 정부도 이런 점을 의식해 한국·일본과 미세 먼지 장거리 이동에 관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중국 책임론에 대해서는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배상 책임 등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류유빈(劉友賓) 중국 생태환경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브리핑에서 "지난 수년간 중국의 대기질은 크게 개선된 반면 서울의 초미세 먼지는 소폭 상승했다"며 "최근 서울의 미세 먼지는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겨울철 미세 먼지 60% 이상이 중국 요인

국립환경과학원의 미세 먼지 통계를 보면 여름과 가을에는 국내 영향이 국외 영향보다 더 크다. 2015년과 2016년 여름과 가을엔 월별로 55~81%가 국내 영향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늦가을부터 겨울, 초봄에 이르는 4~5개월은 국외 영향이 전체의 절반 이상으로 급증한다. 2016년 2월엔 국외 영향이 67%나 됐다. 한국에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 몽골 등으로부터 미세 먼지가 유입되는데, 국외 영향의 80~90%는 중국이 차지한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개발한 대기질 예보 모델에 따라 국내외 영향을 추정한다. 장임석 대기질통합예보센터 센터장은 "중국도 자체적으로 미세 먼지의 지역 간 이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며 "중국 생태환경부 대변인의 이번 발언은 이런 중국 내 연구 결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고 했다.

◇수도권 미세 먼지 원산지는 中 화북

국립환경연구원은 징진지(京津冀·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를 포함한 중국 화북(華北) 지역에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가 우리나라 수도권에 주로 유입되는 것으로 본다. 화북은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 산시성, 네이멍구자치구 일부 등으로 구성되는데, 상하이 중심의 화동(華東) 지역과 함께 중국 내에서 스모그가 가장 심각한 곳이다.

화북 지역 대기오염이 심각한 것은 대도시와 공업시설이 밀집해 있어, 오염원 배출이 가장 많은 것이 주요인이다. 징진지 지역과 산시·산둥·허난성을 합친 6개 성시(省市·성과 직할시)는 면적으로는 중국 전체의 7.2%에 불과하지만 석탄 사용량은 중국 전체의 33%를 차지한다. 석탄은 겨울철 발전과 난방용으로 대량 소비된다.

징진지 지역만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국 석탄화력발전소의 27%가 이곳에 밀집해 있고, 배기가스 배출이 소형차의 수십 배에 달하는 3.5t 이상 차량도 30%가 이 지역에서 운행된다. 중공업 시설도 집중돼 있다. 중국 철강 생산량의 43%를 차지할 정도로 제철소가 많다. 석탄을 구워 만드는 제철용 코크스도 중국 전체의 47%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유리는 33%, 시멘트는 19%가 이 지역에서 제조된다고 한다.

◇북서풍 가로막는 베이징 주변 산맥…스모그 해소 쉽지 않아

지형도 스모그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징진지 지역은 서쪽으로는 타이항(太行)산맥, 북쪽으로는 옌산(燕山)이 가로막고 있다. 두 산맥은 해발고도가 높은 편이 아니지만 수백㎞씩 병풍처럼 길게 이어지는 게 문제다. 겨울철 북서 계절풍이 이 산맥들에 부딪혀 고도가 상승하면서 베이징 도심 지역의 미세 먼지를 제대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두 산맥은 산림이 적어 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흡수하는 효과도 낮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후변화가 이 지역 스모그 악화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칭다오해양과학기술국가실험실의 차이원쥐(蔡文炬) 박사와 중국과학원 대기물리연구소 왕후이쥔(王會軍) 원사 등 중국 측 연구진은 지난해 4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극 가을철 해빙 면적의 감소와 중국 동부 지역 스모그 일수 간에 큰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해빙 면적의 감소가 클수록 중국 동부 지역 스모그 일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해빙 면적 감소에 따른 유라시아 중위도 지역의 기압 변화로 북서 계절풍이 약화되고 대기가 정체돼 중국 동부 지역의 스모그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2013년 이후 대대적인 스모그 감소 대책을 시행하면서 중국 대기질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게 중국 국내외 연구 결과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지형적 요인 등이 복합 작용하면서 이런 개선 효과는 기대한 만큼 두드러지지는 않고 있다. 장임석 대기질통합예보센터 센터장은 "북극 해빙 감소로 인한 대기 정체 현상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나타나 겨울철 미세 먼지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주중 美대사관이 대기오염지수 발표하자… 中, 초미세먼지 대책 시작
中 전문가 "10~15년 지나야 효과"

중국 내에서 스모그와 미세 먼지에 대한 우려가 본격 제기된 것은 2012년이다. 발단은 베이징에 있는 주중 미국 대사관이 대사관원과 그 가족들의 옥외 활동 참고용으로 발표한 '대기오염지수'였다.

이 지수에는 초미세 먼지(PM2.5)와 미세 먼지, 오존, 이산화질소 등이 포함돼 있었는데, 당시 중국 정부는 호흡기와 심장 질환의 원인이 되는 초미세 먼지는 측정 항목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베이징 시민들이 미 대사관 발표를 더 믿는 현상이 벌어졌고, 이에 발끈한 중국 환경보호부는 "미국 대사관의 발표는 중국 국내법을 위반한 내정간섭 행위로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은 중국 정부는 결국 2012년 12월 초미세 먼지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PM2.5를 공식 측정 항목에 포함했다.

베이징·상하이를 포함한 중국 중동부 지역은 2013년 12월 사상 최악의 스모그에 시달렸다. 2015년 12월에는 베이징에 처음으로 대기 오염 경보 최고 등급인 홍색 경보가 내려졌다.

중국의 대기 오염 상황은 개선되는 추세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석탄이 전체 에너지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60%나 된다. 마융량(馬永亮) 칭화대 환경학원 부연구원은 "화북 지역 스모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려면 지금부터 10~15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