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사장 인사 개입’과 ‘적자 국채 발행 압력’ 등 청와대를 둘러싼 의혹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2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스터디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신 전 사무관은 자신이 유튜브를 통해 근무하면서 겪은 부당한 일을 제보한 것에 대해 "어떤 정치 집단, 이익집단과 관련이 없다. 순수하게 이 나라와 행정조직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했던 행동"이라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달 29일 유튜브에 ‘뭐? 문재인정권 청와대가 민간기업 사장을 바꾸려했다고?!’라는 제목의 12분짜리 제보 동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그 후 나흘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취재에 응했다.
그는 또 적자 국채 발행 의혹과 관련 기재부 관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은 청와대 인사는 차영환 당시 경제정책비서관이라고 밝혔다. 차 전 비서관은 기재부 정책조정국장을 지낸 후 2017년 6월 청와대 경제수석실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해 12월 국무조정실 제2차장에 임명됐다.
신 전 사무관은 짙은 색 정장에 세로로 줄무늬가 있는 셔츠, 노타이 차림으로 웃으면서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와 단상 위에 섰다. 전날 MBC 인터뷰에 나올 때 입었던 검은 색 패딩 점퍼 차림, 또 이날 자정쯤 진행했던 유튜브 생중계 방송에서 입었던 후드 티 차림과 달리 단정한 모습이었다. 신 전 사무관은 "며칠 동안 집에 못 들어가 모텔에서 잤다"며 "옷이 없어서 친구에게 급하게 빌려 입고 왔다"고 말했다.
이날 전 사무관은 ‘이번 폭로가 학원 강사로 유명해지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주장과 검찰 고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말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앞서 기재부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날 오후 신 전 사무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 전 사무관은 ‘노이즈 마케팅’ 비난에 대해 "(기재부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부당하다고 느낀 것을 영상이든,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하지 않으면 (퇴직 후)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며 "국가의 녹을 받으며 일했다는 부채의식을 해소하기 위해 유튜브 제보 영상을 찍었다"고 했다.
신 전사무관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기재부의 검찰 고발에 대해서도 신 전 사무관은 조목 조목 반박했다.
제가 고시를 4년 동안 준비하고 4년 일하고 나왔다. 처음 고시 준비할 때 나름대로 사명감이 있었고, 공직에 처음 입문할 때 각오, 그리고 그 후에 기재부에 들어왔을 때 열망, 그리고 KT&G(인사개입) 사건을 보고 났을 때 막막함, 국채 사건을 봤을 때 절망감. 열정을 가진 다른 공무원들이 후에 절망하고 똑같은 상황에 처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다른 공무원은 일을 하면서 회의감에 빠지거나,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일을 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을 찍었고 자료를 공개했다. 저는 공익제보자가 숨어 다니고, 굉장히 비장한 채로 말하고, 그리고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이런 모습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익제보자가 사회에서 인정 받고, 공익제보자도 공익을 위해 제보하는 건데, 즐겁게 제보하고, 유쾌하게 영상 찍는 것을 시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선택했다. 그게 진정성을 의심 받을 정도로 안 좋았을 지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지는 몰랐다. 지금 모텔에 칩거해 있지만 그건 기자의 접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당당하게 취재에 임하고 당당하게 살도록 하겠다. 나는 어떤 정치집단이나 이익집단과도 관련 없다. 순수하게 우리가 사는 나라와 행정조직이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했던 행동이었다.>
다음은 신 전 사무관의 발언에 이후 이어진 일문일답.
-기재부 해명자료는 종합적 상황을 고려해서 국채 바이백(매입)을 취소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부 논의를 거쳐 적자 국채 발행이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라는 지적이 있다.
"다른 문제보다도 (2017년에)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국민에게 죄송스럽다고 느꼈던 게 바이백이 하루 전 취소돼 금리가 치솟은 것이었다. 금리가 치솟고 바이백이 취소되는 모습을 봤고, 의사결정 과정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노했던 것이다. 비상식적 의사결정에 기반한 행위인데, 기재부에서는 바이백을 왜 취소했는지는 말하지 못할 거다."
-사건 전말을 아는 사람이 (기재부 내에) 3명이라고 했는데,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했는가.
"죄송하지만 오늘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서 부연 설명하는 자리이지 새로운 정보를 드리긴 힘들다. 당시 업무를 했던 경과를 조직도라든지,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반기 적자 국채 발행 관련 보고를 받을 때 안이 몇 번 바뀌었다고 했다. 최초 상부에 보고했던 것과 이후 차관보가 심하게 깨지고서 바뀌었을 때 등, 각각 얼마씩 발행하려 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 부분은 나중에 제가 검찰 조사를 받으면 당시 문서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을 보면, 사진이 언제 찍혔는지 기록이 있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최초 부총리 보고 시 차관보는 8.7조원를 발행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차관보가 깨진(혼난) 이후 수출입은행에서 간부 회의를 하면서 그런 일을 겪었다. 국회 본청에 기획재정부가 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옆에 부총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간부 회의실이 있다. 부총리가 언급하는 것을 나도 배석하면서 들었다. 그때 했던 얘기다. 1차로 차관보가 질책을 받았을 때는 발행 안 하겠다고 얘기를 했다가, 이후에는 (2차 질책) 실무진이 다 들어가자고 해서, 차관보, 국장, 국채과장, 나 4명이 보고에 들어갔다. 두 번째 때 부총리에게 보고 드리기로는 최대한 발행할 수 있는 한도를 만들어 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 다음에 부총리에게 보고하면서, GDP 대비 채무 비율 때문에 채권 발행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 공무원으로서 회의감을 들었다. 2017년에 (채무비율을) 낮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 부총리는 39.4% 또는 37.4%(정확한 수치는 유튜브 영상 참조) 그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것에 맞춰서 액수를 맞췄다. 국장이 지시했던 퍼센트를 맞추기 위한 결정이었다. 채무 비율이 먼저 정해졌고, 이후 액수를 결정하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2017년이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이기도 하지만, 문재인 정부 첫해여서 굳이 채무 비율을 높일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것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전해 들은 말 외에 구체적인 증거가 있나.
"저는 '들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제가 들었던 건 부총리에게 들은 것이다. 부총리가 제 눈 앞에서 말했다. 청와대의 말도 '누구에게 들었다'가 아니라 과장이나 국장이 통화를 제 옆에서 했고, 통화를 끊고 지시했다. 누구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제가 직접 겪은 일이다.
두 번째, 청와대로부터 결국 의견이 관철됐다고 하는데. 제가 당시 분노했던 이유 중 하나가 무엇이냐면, 제가 적자 국채 과정과 관련해 쓴 글에도 나와 있다. 중요한 것은 결국 부총리가 의사결정을 한다. GDP 대비 채무비율을 말하는 건 분명히 문제 없지만, 부총리께서 그냥 '발행하지 말자'고 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 직접 과장,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보도자료를 취소하라고 했다. 제 기억에 (2017년) 12월 발행계획이 나오는 날이었다. 엠바고가 걸려 있는 시점이 있었다. 엠바고 시점 1시간 전에 (보도자료가) 배포가 됐다. 엠바고도 풀리기 전에 과장님이 기자분들 몇몇에게 연락 돌린 걸로 알고 있다. 연락 돌려서 이거 기사 지금 내리면 안 되냐고 했던 때가 청와대에서 전화를 받아서 했던 행동이다."
-청와대에서 누가 전화했나.
"차영환 비서관(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 경제정책비서관)이었다."
-GDP 대비 채무비율과 관련해, 2017년이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라고 말했는데, 기재부 해명자료에는 문재인 정부 첫해로 잡힌다고 했다. 어떤 것이 맞나.
"두 개 다 해당된다. 짧게 올렸던 카카오톡 내용에도 있지만, 결국 문재인 정부 첫 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GDP 대비 채무 비율이 올라가면 정권에 안 좋다. (전 정권과) 겹쳐 있는 해면 더 평가하기 좋고, 겹쳐 있지 않은 첫해라고 하더라도 정권이 지나갈 수록 채무 비율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기재부의 말은 해명이 될 수 없다."
-(공익제보와 관련) 국민권익위원회의 법적으로 공익신고자 신분을 요청할 계획이 있는가. 기재부의 검찰 고발에 대해서 심적 배신감을 느끼나.
"공익 신고는 (기재부에서) 나오기 전에 경황이 없어서 알아보지 못했다. 공익신고 절차를 밟겠다. 받을 수 있는 법적 보호는 받고 싶다. 친정(기재부)에는 죄송하다. 어제도 마음이 아팠던 게 보도자료에 다 아는 분들(작성자) 이름이 나왔다. 저 때문에 기재부도 안 좋은 상황일 것이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다. 그렇지만 5개월 동안 언제 말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다. 이걸 발언하지 못하면 저는 계속 다른 일을 못할 거 같았다 부채의식을 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부총리 바뀌고 차관보가 바뀐 후 시기를 맞춰서 공개하려고 했다."
-제보와 관련해 윗선에서 압력은 없었나.
"지금 (나에게 누군가 연락할) 휴대전화가 아예 없다."
-유튜브 방송에서 다른 기재부 사무관이 '비망록'을 썼다면서 '제2의 신재민'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비망록은 어떤 내용인가.
"비망록은 제가 작성한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을지 잘 모른다. 경과에 대해서 당시에 우리 부도 업무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무자들 모두 다 문제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말하고 신 전 사무관은 ‘바이백’과 자신의 제보 이유에 대해 추가 설명을 했다.
"바이백 취소에 대해 어떤 분은 별것 아니라고 했다. 바이백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한다고 해놓고 안 한 건 굉장히 큰 문제다. 한 달 전에 1조원(어치 국채를) 바이백한다고 공고해놓고 하루 전에 취소하면 어떤 기업들은 분명히 타격을 받고 고통을 받게 된다. 기재부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의사결정을 해 (국채) 금리가 뛰는 것만으로 죄송스러웠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영상에서도 밝혔듯이 다른 의도가 없다. 배후에 정치적 세력도 없다. 단 하나, 제가 나서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합리적으로 변하고, 조금 더 나은 공무원 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정권이 아니라 의사가 결정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 속에서 한 명 한 명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백 취소) 결정이 나기까지 막아준 수많은 공무원의 모습이 있어서 최악의 결정까지는 안 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선 건 의사결정이 너무나 납득되지 않아서, 그리고 납득되지 않는 과정을 통해 바이백 취소라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상황 때문이다. 그런 게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상을 올린 건 그런 이유였다. 비록 처음에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 유튜브 영상 올리면서 격식을 갖추지 않은 상태로 접근하고 이야기하려고 했다. 나로 인해서 또 다른 공익신고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여기서 신재민이 고발 당하고 법적 절차를 밟고 사회적으로 안 좋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느 누가 용기 내겠나. 먼저 나와서 용기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