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년 1월 본격적인 무역 협상을 앞두고 지난 29일 정상 간 통화를 한 것은 무역 전쟁으로 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뜻을 세계와 시장에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출발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큰 진전'을, 시 주석은 '안정'을 강조하며 양측의 접점을 찾으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합의는 매우 포괄적이고 모든 주제와 분야, 쟁점들을 담게 될 것"이라며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지식재산권 도둑질' 문제와 중국의 시장 개방 확대 요구에 어느 정도 동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뉘앙스다.
시 주석도 "트럼프 대통령과 중·미 관계를 안정적인 방향으로 추진하는 데 동의했다"며 "양측 대표단이 서로 같은 방향을 보고 세계에 이익이 되는 합의를 조속히 이끌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전했다. 다소 양보를 하더라도 시 주석은 그만큼 무역 전쟁이란 불확실성을 최대한 빨리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유화적인 자세는 최근 중국 세관 당국이 사상 처음으로 미국산 쌀 수입을 허가한 데서도 확인된다. 중국 해관총서는 지난 28일 홈페이지에 미국산 쌀 수입을 허용하는 검역과 포장 등의 조건을 게재했다. 같은 날 미국도 연방관보를 통해 에어컨 온도 조절 장치 등 984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면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 후 두 정상의 통화가 이뤄진 것은 양측 실무진이 물밑에서 하나씩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국이 그동안 지식재산권 문제를 걸어 정조준했던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중국 정부가 수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제조 2025'는 로봇, 인공지능 등 10개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경쟁력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으로 미국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정책이다.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는 "지난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협상팀이 요구사항을 직설적으로 중국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정말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졌다면 지식재산권 보호 등에 대한 미국의 요구에 대한 답을 중국 측이 들고 왔다는 뜻일 수 있다"고 했다.
미·중 협상은 새해 초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프리 게리시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이끄는 미국 협상단은 1월 7일부터 베이징에서 중국 측과 협상에 들어간다. 이 협상에서 진전이 이뤄지면 중국의 대미 무역 협상 사령탑인 류허(劉鶴) 부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추가 담판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큰 진전'을 강조했지만 아직 합의 가능성을 말하기는 섣부르다는 평가가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상황을) 과장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2019년 세계전망'에서 "미·중은 무역 전쟁 휴전 선언에도 결국 협상에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