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28일 ‘레이더 동영상’을 공개한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29일 일본 산케이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27일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을 총리관저에 비공식적으로 불러 레이더 동영상 공개를 지시했다.

레이더 동영상은 지난 20일 동해상 중간 수역에서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해상 자위대 초계기 P-1 사이에 발생한 일을 촬영한 영상이다. 일본 정부는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무력 사용을 가정한 사격 통제 레이더를 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이 실무급 화상회의를 갖고 해결 방안 모색을 시작한 바로 다음날 갈등을 확산할 조처를 한 것이다.

일본이 공개한 ‘레이더 논란’ 영상 봤더니… 日초계기, 한국 광개토함 150m위 근접비행 - 지난 20일 동해상 한·일 중간 수역에서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항해하는 가운데 위로 일본 해상 자위대 초계기 ‘P-1’의 날개와 동체가 보이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28일 “광개토대왕함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무력 사용을 가정한 사격 통제 레이더를 쐈다”고 주장하며 관련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우리 군은 “일본 초계기에 추적 레이더를 운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 150m 위를 저공비행하는 ‘위협 행동’을 했다”고 반박했다.

도쿄신문은 영상 공개에 대해 방위성이 ‘한국을 더 반발하게 뿐’이라며 신중론을 폈고 이와야 방위상도 부정적이었지만 수상의 한마디에 방침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과 강제징용 판결 등으로 아베 총리가 울컥했다"는 자민당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며 여기에 레이더 조사 문제가 생기자 아베 총리가 폭발한 것이라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이런 조치를 취한 배경에는 지난 2010년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 충돌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 정부의 대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던 사실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선일보 DB

당시 민주당 정권은 관련 영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해상보안청 직원이 인터넷에 이를 유출해 논란이 컸다. 아베 총리는 이후 이 문제와 관련해 "공개했어야 할 비디오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아베 정권이 최근 급락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과의 레이더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의 영상 공개와 관련해 아베 정권이 국내 여론 대책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밝혔다. 아베 내각은 최근 회기가 끝난 임시국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호 확대 법안 등 각종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가 지지율이 30%대까지 추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의 명예를 언급하면서 동영상을 공개한 행위에서 핵심 지지층인 보수층을 결집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읽힌다는 것이다. 외교를 내치에 이용하는 아베 정권 특유의 꼼수를 쓴 셈이다.

한편 일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동영상이 증거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상자위대 소장 출신인 이토 도시유키 가나자와 공대 도라노몬 대학원 교수는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조사를 뒷받침할 만한 경보음이 없어 증거로서 애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올린 주먹(강경 대응)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심각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