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씨 사망 후… 상정 8일만에 통과된 '초고속 안전법'

입력 2018.12.28 03:02

산업안전보건법 28년만에 개정… "법안 검토 미흡" 비판도

국회가 27일 통과시킨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지난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김용균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회 논의에 박차가 붙었다. 당시 김씨는 화력발전소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 새벽에 홀로 발견됐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수차례 국회를 찾아 눈물을 쏟았던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이날 "아들에게 고개를 들 면목이 생겨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27일 국회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에서‘산업안전보건법’전면 개정안이 통과된 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환노위 간사와 끌어안고 있다.
故 김용균씨 어머니, 국회 표결 현장에 -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27일 국회 환경노동위 고용노동소위에서‘산업안전보건법’전면 개정안이 통과된 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환노위 간사와 끌어안고 있다. /성형주 기자
◇법안 상정 8일 만에 통과

이날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사내 도급과 재(再)하청을 전면 금지하는 등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은 정부가 28년 만에 제출한 정부 개정안으로서, 현행 72개 조항을 175개로 늘렸다. 지난달 초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국회가 심의하지 않다가, 김용균씨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19일 법안을 상정했다. 이후 8일 만에 단 4일간의 심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안전 강화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산업 현장의 비용 부담과 혼란이 늘어날 수 있다"며 반발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법안 검토가 미흡했다"며 유일한 반대표를 던졌다.

◇업계 "안전 전문업체 없어질 우려"

기업 현장에서는 "안전 문제가 개선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위험 업무라고 해서 사내 도급과 재하청을 전면 금지시킨 규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우려된다는 의견이 많다. 현행법은 도금과 수은·납·카드뮴 등 위험물질 관련 작업의 사내 도급을 일부 허용하지만 앞으론 도급 자체가 금지된다. 업계에서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면서 안전 전문 업체의 노하우마저 고사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중소업계 관계자는 "복수의 사업장으로부터 일감을 받아서 위험 업무를 해온 전문 업체들이 특정 기업에 흡수되지 못하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한 5대 그룹 임원은 "전문 분야의 외부 아웃소싱을 막으면 대기업의 산업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고 했다.

김용균법에서 강화된 안전 조치
◇재계 "사업주만 책임 지워"

법 개정 내용이 실질적으로 '김용균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개정법은 사망 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한 최대 징역형 처벌을 현행 '7년 이하 징역'에서 '5년 이내 재범의 경우는 2분의 1까지 형량 가중'으로 늘렸다. 안전 조치 의무 위반 시 처벌은 현행 '1년 이하 징역'에서 '3년 이하 징역'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 최대 형량 판결이 드문 현실에서 "해법을 잘못 짚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의 박재근 본부장은 "선진국보다 과도한 처벌 수위를 더 높인 것으로,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노동계 일부에서도 "악덕 사업주에 대한 막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것도 아니고, (김씨 사망 사고를 낳은) 변칙적 '2인 1조' 근무를 방지할 뚜렷한 대책도 없다"고 했다.

사업주로서는 생산 비용이 증가해 결국 소비자 부담이 상승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현재는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사업장 내 지역이 '22개 위험장소' 등으로 국한돼 있지만 앞으로는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인력을 더 늘려야 한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원청업체와 사업주의 책임만 강화한 것"이라고 했고,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안전 기준을 지나치게 높여 사업주가 도저히 지키기 어려운 악법"이라고 했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업 중지 명령'으로 중단시키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도 "정부의 자의적 개입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이번 법 개정에 따라 특수근로자, 배달종사자, 가맹점 등이 안전·보건 보호 대상에 새로 편입된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토록 하겠다는 정부안 조항은 "영업 비밀"이라는 업계 우려를 받아들여 국회가 삭제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