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과 함께 밝힌 2000번째 등불

입력 2018.12.28 03:02 | 수정 2019.03.08 11:58

서정훈씨, 장애 앓다 떠난 누나 생각하며 사회적기업 세워… 빠른 성장보다 '동행'을 택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자란 목수 아저씨네 막내아들이 연 매출 350억원의 기능성 화장품 회사를 창업한 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재(私財) 1억원을 기부했다. '아너소사이어티' 2000호 회원이다. 전체 직원 120명 중 40명이 장애인인 사회적 기업이자 연 매출 4분의 1을 순익으로 뽑는 알짜 스타트업 기업이다.

27일 전북 남원 사옥에서 마주 앉은 서정훈(45) 제너럴바이오 대표는 과묵하고 무뚝뚝했다. "4남매 중 누나가 중증 장애였어요. 제가 일곱 살 때 열세 살 나이로 죽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네가 잘되면 누나 같은 사람들을 도우라'고 했어요. 제가 장애인 뽑을 때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서정훈(오른쪽 넷째) 제너럴바이오 대표가 27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 2000번째‘아너소사이어티’회원이 됐다. 그는“누나가 중증지체장애를 앓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며“제가 장애인을 많이 뽑는다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셨다”고 했다. 제너럴바이오는 전체 직원 120명 중 40명이 장애인인 사회적 기업이다. /김영근 기자
서 대표는 "우리 회사가 '착한 회사'라고만 알려지는 게 싫다"고 했다. 이 회사는 고용부가 매년 선정하는 '강소 기업' 목록에 두 차례 올라갔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면 봉사하듯 한번 사줘야 하는 정도로 여기는 분들이 계셔요. 저희는 일반 기업과 똑같이 살아남고 싶습니다."

수도권 4년제 대학에서 전자기계를 전공한 뒤 외환 위기 직전 대기업 계열사에 들어갔다. 그 뒤 10년간 "월요일에 출근해 토요일에 퇴근하며" 일에 미쳐 살았다. 어느 날 돌아보니 아들은 천식이고 아내는 고민이 많았다. "어찌 보면 남편 없이 산 거니까요."

그때까지 전북과는 아무 인연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간 국내외를 돌며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다 주름 개선·미백 화장품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2007년 11월 집 판 돈 3억원으로 전북 완주에 지금 회사를 차렸다. 10년간 모은 게 딱 그 돈이고, 3억원으로 3000평 살 수 있는 게 완주였다. "아들 생각해 공기 맑고 물 좋고 축사 없는 곳이라야 했고요." 가족이 같이 살 집을 구하느라 마을 빈집을 돌아다녔다. 지붕에 구멍이 나 있고 쥐가 뛰어다녔다.

'아너소사이어티' 2000호 회원인 서정훈 제너럴바이오 대표가 전북 남원 사옥의 연구실에서 자사 기능성 화장품 제품을 바라보고 있다.
'아너소사이어티' 2000호 회원인 서정훈 제너럴바이오 대표가 전북 남원 사옥의 연구실에서 자사 기능성 화장품 제품을 바라보고 있다. /김영근 기자

손익분기점 넘는 데 1년 걸렸다. "그때부터 숨도 쉬어지고 밥도 먹어지더라"고 했다. 완주 공장이 자리 잡은 뒤 가까운 남원에 본사보다 11배 큰 3만3000평짜리 공장을 하나 더 지었다.

이 회사는 신입사원 뽑을 때 전문성을 따져야 할 분야만 빼고 나머지는 학력을 안 본다. 올해 5월 채용 공고 낼 때도 연구직만 '화학 전공 4년제 대졸자'를 조건으로 걸고, 경영지원팀은 '학력 무관, 세무 신고 경험자 우대'만 내걸었다.

서 대표가 "내부에서 성장시킬 수 있으니 학력 따지지 않는다"며 "고졸도 많다"고 했다. 집안 어려운 청년도 우대한다. 직원 중 26명이 차상위 계층 혹은 기초생활수급자다.

남원 사옥도, 완주 본사도 차로 십수분 달려야 수퍼마켓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외딴 들판에 있다. 남원 사옥 근처에 50명 살 수 있는 무료 사택을 마련하고, 완주 본사에도 무료 기숙사를 지었다. 장애인 직원 전원이 이 두 곳 중 한 곳에 산다. 장애인 직원을 전담하는 비장애인 직원도 따로 뽑았다. 이런 비용이 월 5000만원 정도 든다.

"'정치할 거냐'고 비아냥대는 이도 있는데, 하다 보면 중독됩니다. 우리 회사에서 서로 만나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존감이 높아지고 꿈이 생깁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천식 앓던 아들이 이젠 건강한 중 3이 됐다. 지역 학교에 다닌다. "자식 안 주고 왜 기부하느냐"는 질문에 서 대표는 "아이와 어렸을 때 서로 약속한 게 있다"고 했다.

"제가 '아빠 아들로 태어났으니까 공부는 원하는 만큼 무조건 다 시켜주겠다. 유학 가고 싶으면 가라. 대신 회사는 절대 물려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저는 일이 재밌고 비즈니스 하는 게 행복하지만 아들은 저와 다를 수 있어요."

그가 가입한 아너소사이어티는 2008년 회원 6명으로 출발해 11년 만에 2000명을 돌파했다. 창립 이래 첫 3년이 탐색기, 5년까지가 발전기였다면 이젠 저변이 확대되는 '확산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철희 연세대 교수는 "젊은 사회적 기업 창업자가 2000번째 아너 회원이 됐다는 게 상징적"이라며 "고생 끝에 부(富)를 일군 사람들이 중년 이후 기부에 나서는 게 기존 패턴이었는데, 아직 부를 쌓고 있는 젊은 사람이 다 이루기도 전에 큰돈을 기부한 것 자체가 선순환적 확산의 상징"이라고 했다.

서 대표는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 부가가치도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며 "사회적 기업이 기업으로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는데, 우리가 잘 되면 그런 모델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기업이 아닌 일반 기업으로 갔다면 성장 속도가 지금보다 3배쯤 빨랐겠지요. 후회 없어요. 내년 상장이 목표입니다."

※후원=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