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미국이 계속해서 세계의 경찰일 순 없다. 우리는 세계의 호구(suckers)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라크 알 아사드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며 동맹국과의 방위비 분담과 관련, "그들(다른 나라)이 비용 부담을 나눠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모든 부담을 우리 미국이 져야 하는 상황은 부당하다"고 했다. 미국이 현재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진행 중인 상대국은 한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을 겨냥했고, 상황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카드까지 꺼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한·미 간 다음 회의 일정도 잡지 못한 채 분담금 총액 등을 놓고 교착에 빠진 방위비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성 발언이 실제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더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와 우리의 엄청난 군을 이용하는 국가들에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이제는 돈을 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한·미 방위비 분담분을 현재(약 9600억원)의 약 2배로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측은 최근 협상에서 현행 5년인 방위비 협정 유효기간도 1년으로 줄이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내년 분 인상 후 다시 우리의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는 지나친 것으로, 지금 상황에선 협상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방위비 협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압박성 발언으로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부터 사흘 연속 동맹국과의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했다. 24일 트위터에선 "우리는 전 세계 많은 부유한 국가의 군대에 실질적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무역에서 미국과 미국의 납세자를 완전히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25일엔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했고, 26일엔 한발 더 나아가 "우리는 세계의 호구가 아니다"라는 직설적 표현까지 쓰며 방위비 문제를 정면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방위비 관련 발언을 두고 외교가에선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금액을 얻어낸 뒤, 내년부터 일본 등 다른 동맹국과의 방위비 협상에서 이를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측은 특히 지난 11~13일 서울에서 열린 협상에서 "현행 5년인 방위비 협정 유효기간을 1년으로 줄이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효기간이 1년으로 줄어들 경우, 미국은 내년에 협상할 일본·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과 비교하면서 우리 측 부담분의 인상을 다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총 10차례 회의를 갖고도 분담액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측은 한국 분담액의 약 1.5배 수준인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 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최근 협상에서 입장 차를 상당 부분 좁혔다가, 미 수뇌부가 입장을 바꾸면서 일단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미 동맹의 근본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적 관심을 갖고 뒤에서 강하게 압박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측도 지금 분위기에선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일각에선 주한미군 주둔 비용 문제를 거론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까지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AFP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이라크 방문을 '세계의 경찰' 역할론에 대한 종식을 선언하는 기회 등으로 활용했다"며 "다국적 동맹국들로부터 철수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방어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의 군)는 전 세계에 걸쳐 퍼져 있다"며 "대부분의 사람이 들어보지 못한 나라에도 있다. 솔직히 말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했다. 특히 "중동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세계 각지에 주둔 중인 미군의 역할을 축소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주한미군 감축은 향후 북한 비핵화에 따른 미측 상응 조치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그간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주둔을 강하게 주장해온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이 최근 사임하면서 이 같은 우려가 더욱 커졌다.
다만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실제 주한미군 감축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현재 약 2만8500명인 주한미군 병력을 미 의회 승인 없이는 2만2000명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한 미 국방수권법(NDAA)도 지난 10월 발효됐다.
미 상원 군사위 소속 댄 설리번 의원(공화)은 이날 VOA(미국의소리) 인터뷰에서 "미국은 합법적으로 배치된 주한미군을 불법적으로 배치된 북한의 핵, 미사일과 절대 교환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70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전에 기여해 온 핵우산을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