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마태오 복음에는 ‘동방 박사’, 즉 동쪽에서 온 현자(賢者)들이 구세주가 태어나실 것을 알고,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찾아내 경배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정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으나, 서방 교회에서는 그들이 황금·몰약·유향의 세 가지 선물을 예수께 바쳤다고 해서 세 사람이라고 믿었다. 중세 이후에는 ‘박사’가 ‘왕’이라고 번역되면서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됐고, 15세기 즈음에는 연령대와 인종이 각기 다른 세 사람으로 그려지게 됐다.

동방 박사의 여행, 11.9×17㎝,‘ 예수 일대기’ 중 34쪽, 로스앤젤레스 J. 폴 게티 박물관 소장.

세 사람의 동방 박사가 말을 타고, 별을 가리키며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하러 달려가는 모습을 그린 이 삽화는 1200년경 영국에서 만들어진 그림책, '예수 일대기(Vita Christi)' 중의 한 쪽이다. 제목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51점의 그림으로 도해한 이 책은 당대에 제작된 서적 중 예수의 삶을 가장 정교하게 묘사한 사례로 꼽힌다. 이 책은 1400년경에 대대적인 증보가 이루어져, 기도문과 함께 창세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장면을 그린 57쪽의 삽화가 새로 더해졌다.

그 과정에서 후대인들은 원래 모두 백인이었던 이들 중 제일 왼쪽의 얼굴만 검은 피부로 수정했다. 그즈음, 가장 젊은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덧칠을 한 이는 얼굴에만 온 신경을 쏟았는지, 손은 그대로 둬서, 젊은 동방 박사는 검은 얼굴에 흰 손을 가진 이상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물론 예수께서 이들을 맞으실 때에 피부색을 가리지 않으셨을 테니, 검은 얼굴에 흰 손인들 대수롭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