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카드 영수증 만지면 환경호르몬이 몸속으로… 精子 수도 줄어들었다"

조선일보
입력 2018.12.24 03:12

'화학물질의 습격'을 출간한… 계명찬 한양대 교수

'화학물질의 습격'을 출간한 계명찬(55)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와의 대화는 몹시 불편하다.

"우리가 종이컵으로 여기는 자판기나 테이크아웃용 커피 컵은 실제로는 '종이컵'이 아니다. 종이 틀로 된 플라스틱 컵이다. 컵 내부에 '저밀도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돼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내부 코팅이 벗겨지는 것이 현미경으로 관찰된다. 커피를 마시면 플라스틱 성분도 함께 마시는 게 된다. 짜장면·짬뽕·탕수육을 배달할 때 포장하는 업소용 랩에는 '프탈레이트'라는 환경호르몬이 들어있다. 우리는 그런 성분이 일부 녹아 나온 배달 짬뽕을 먹는 셈이다."

그는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생식 독성 유전체, 남성 불임 및 보조생식술 분야를 연구해왔다.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국내 관련 연구자들과 '환경호르몬 연구회'를 시작했다. 2015년에는 정부 지원금으로 '환경호르몬 대체물질 개발사업단'의 단장을 맡기도 했다.

계명찬 교수는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비어캔 치킨’은 환경호르몬을 양념처럼 뿌려 먹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계명찬 교수는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비어캔 치킨’은 환경호르몬을 양념처럼 뿌려 먹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수 있나?

"지금 세대의 정자(精子) 수가 할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연구 보고서가 이미 1990년대에 나왔다. 나도 정자 실험을 해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호르몬에 의해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 유전자 구조가 관찰됐다. 가임(可妊) 여성의 불임률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도 환경호르몬 영향으로 본다. 여자아이의 초경(初經)이 빨라지는 것도 여성호르몬처럼 작용하는 환경호르몬 때문이다. 호르몬과 관계된 유방암·자궁암·전립선암·갑상선암 등의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됐다."

―책에는 위험 사례를 나열해놓았지만 무슨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에게 불필요한 공포심만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과학적 근거로 말하지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등록된 화학물질은 1억3700만 종이다. 하루 동안 최대 200종의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이 중 일부는 안전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몸속에서 정상적인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교란하는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알고 이런 물질에 노출을 줄이는 생활 습관을 갖자는 것이다."

―당신 말대로 그렇게 많은 화학물질이 있는데 무슨 수로 노출을 줄일 수 있나? "우리 생활에서 노출 빈도가 높은 환경호르몬은 '비스페놀A'와 '프탈레이트'이다. 대부분 플라스틱과 관계돼 있다."

―플라스틱도 종류가 많지 않나?

"투명하고 단단한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인 물병·물컵 등에 비스페놀A 성분이 들어가있다. 가벼운 선글라스 플라스틱테와 렌즈도 그렇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스페놀A 성분이 들어간 플라스틱 젖병을 사용했다. 소독을 위해 찜통기에 넣었다. 아기가 '비스페놀A 우유'를 빨았던 셈이다. 통조림과 캔 내부 코팅제에도 비스페놀A가 들어있다. 통조림이 오래됐거나 찌그러졌으면 그런 성분이 더 쉽게 녹아 나올 수 있다."

―인체 허용 기준 이하 아니겠나. 정말 그렇게 유해하다면 통조림과 캔 제조업체에서 굳이 쓰겠는가?

"통조림의 내부 코팅을 하는데 아직 그 성분의 대체물이 없다. 요즘 젊은이 사이에서 맥주캔을 딴 다음에 닭 조각을 넣어 장작불에 구워먹는 '비어캔 치킨'이 인기다. 이는 정말 미친 짓이다. 번데기 통조림을 데워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환경호르몬을 양념처럼 뿌려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통조림이 설령 그렇다고 해서 유리병 조림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집에서는 통조림을 안 먹는다는 답변으로 대신하겠다. 유리병 조림처럼 과거에는 유리 링거병을 썼다. 그러다가 폴리염화비닐 소재로 편리한 수액백이 개발됐다. 하지만 여기에 '프탈레이트'라는 환경호르몬이 문제 되면서 3년 전부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그렇지만 혈액 용기, 혈액 투석용 튜브 등을 완벽하게 대체할 제품은 아직 개발 안 됐다. 이런 의료기기를 쓴 혈액 투석 환자의 혈중 프탈레이트 농도는 일반인의 8배, 식염수를 맞은 환자는 4배가 더 나왔다. 물론 미국 FDA의 허용 기준치보다 200분의 1이다."

―허용 기준치 이하라면 별로 문제가 없다는 뜻 아닌가?

"정부나 업계에서는 '인체에 큰 영향이 없는 기준 이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도처에 널려 있고 미량이라도 흡수 빈도가 높으면 우리 몸에 축적된다. 일상에서 거의 무방비로 비스페놀A에 노출되는 경우가 카드 영수증이다."

계명찬 한양대 교수와 최보식 선임 기자

―카드 영수증에 무슨 문제가 있나?

"카드 영수증은 열에 반응하는 감열지(感熱紙)에 비스페놀A를 코팅해놓은 것이다. 레이저가 지나가면서 열을 가해 타면서 글자가 나오는 원리다. 동사무소나 은행 대기표, 기차표, 영화표도 같다. 영수증을 만지는 순간 지용성(脂溶性)인 비스페놀A는 손을 통해 들어온다. 화장품이 피부에 흡수되는 것과 같다. 특히 핸드크림 등의 보습제를 자주 사용하는 아이나 여성의 연한 피부에 잘 흡수된다."

―그렇다고 해도 영수증 한 장이 얼마나 작용하겠나?

"영수증 한 장에 들어있는 비스페놀A의 양은 음료 캔이나 젖병에서 나오는 양의 수백 배 된다. 감열지를 5초만 만져도 흡수된다. 국내 대형마트 7곳에 근무하는 계산원 54명의 소변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근무 전후 소변 검사를 해보면 비스페놀A의 농도에 큰 차이가 있었다. 취급자는 반드시 장갑이나 손가락에 실리콘 고무를 껴야 한다. 제출용이 아니면 카드 영수증을 주고받지 않는 게 좋다. 자원 절약에도 도움이 된다."

―묻기가 겁이 난다. 생수 페트병은 괜찮은가?

"페트병은 안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무실에 쓰는 20L 생수통의 소재에는 환경호르몬이 들어있다. 대체 소재로 생수통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지금 같은 강도(强度)가 나오지 않았다. 환경호르몬의 위험을 알지만 일상의 편리함을 포기하기 쉽지 않은 거다."

―편의점에서 먹는 컵라면 용기는 어떤가?

"스티로폼 재질의 용기로 된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으면 미량의 플라스틱 성분이 녹아 나온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하면 훨씬 더 쉽게 그렇게 될 거다. 수도 파이프의 내부 코팅에도 비스페놀A가 들어가있다. 수도관에서 녹물이 나오면 이미 코팅이 벗겨져 환경호르몬이 녹아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코팅'을 말하니까 눌어붙지 않는 '테플론' 프라이팬이 떠오른다. 이도 환경호르몬과 관계있나?

"개발사의 상표명으로 널리 알려진 '테플론' 프라이팬의 코팅에 사용되는 것은 불소수지다. 불소수지는 다른 분자를 밀어내는 성질이 있기에 안 눌어붙는 거다. 불소수지 제조에 필수 성분이 '과불화 화합물'인데 환경호르몬이다. 독성은 낮아도 갑상선호르몬 등을 교란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흡수되면 몸 밖으로 배출도 잘 안 된다."

―'코팅'됐다고 해서 그런 성분이 녹아내린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열의 누적으로 코팅이 벗겨지거나 오랜 기간 사용했으면 더 쉽게 나온다. 우리나라와 미국·일본 등 9개국 12개 지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과불화 옥탄산 수치를 조사한 결과 우리 수치가 3~30배 높게 나왔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방부제 성분 '파라벤'도 환경호르몬이라고 지적했는데.

"파라벤은 로션, 스킨, 크림은 물론이고 물티슈, 구강청결제, 치약에도 들어간다. 박테리아와 곰팡이를 막아 제품의 보존 기간을 늘려준다. 물론 법적 허용 기준에서 미량이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유독 높아졌는데, 목주름에 신경 쓰는 화장 습관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목 아래 갑상선이 있다. 무(無)파라벤의 소량 제품을 사서 냉장고에 넣고 쓰는 게 좋다."

―생활용품 중에서 화학물질이 사용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이것도 저것도 문제라면 어떻게 살겠나?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것도 아닌데.

"플라스틱은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일상생활에 널리 퍼져있다. 2016년 기준 한국인 1명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이었다(영국은 56.3㎏, 미국은 97.7㎏). 플라스틱에 대해 쓰레기 문제만 걱정했지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은 이슈가 안 됐다. 가령 국내 하천에 사는 수컷 물고기의 고환에서 군데군데 알이 들어있다는 연구 보고가 나왔다. 환경호르몬 영향으로 정자도 만들고 난자도 만든 것이다. 하지만 하수종말처리장에는 중금속 물질에 대한 기준치 이하의 규정은 있어도 환경호르몬 규정은 없다. 환경호르몬 종류가 워낙 많아 일일이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인체는 그 정도 적응 능력이 있지 않을까?

"환경호르몬은 종류가 다양하고 도처에 널려있다. 전생애 주기를 통해 수많은 환경호르몬에 노출된다. 그래서 적응은 되겠지만 몸속에 계속 축적된다. 당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환경호르몬에 영향을 받은 생식세포의 유전자 구조가 화학적으로 바뀌어 후대까지 영향을 미친다. 요즘 늘어난 아이들의 과잉 행동 증상도 환경호르몬과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 보고도 나왔다."

―우리 사회에서는 환경호르몬을 갖고 떠드는 것은 한가하다고 할 것이다. 술·담배가 더 나쁘지 않은가?

"사람들이 술·담배를 다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은 무의식중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 마치 침묵의 살인자처럼 그 위협이 우리 턱밑까지 와있다."

―당신은 연구자의 시각으로만 얘기했겠지만, 건강 염려증이 건강을 더 해칠 수도 있다. 과도한 공포심을 불러와 자칫 해당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겠나?

"물론 어떤 성분의 유해성에 대해 논쟁의 여지는 있다. 환경호르몬이 없는 대체 소재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류를 우주로 보내는 기술만이 아니라 가령 환경호르몬을 덜 쓰는 벽지를 만드는 적정 기술로도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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