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文정부 들어 불이 많이 난다'… 火난 우파가 퍼뜨린 루머?

조선일보
입력 2018.12.22 03:00

팩트 체크 역대 정부와 비교

팩트 체크 역대 정부와 비교
지난해 4월 13일 세월호 3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생명 존중 조형물에 다짐을 적는 모습. ‘안전 때문에 눈물 흘리는 국민이 한 명도 없게 하겠다’고 썼다. 문 정부 집권 후 화재 건수는 줄었지만 대형 화재 급증으로 인명·재산 피해가 늘었다. / 남강호 기자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37명 부상)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정부의 책임을 묻는 청원이 50여건 올라왔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하야해야 한다(12월 23일)'는 등의 취지였다. 이 국민청원에는 66명이 서명하는 데 그쳤지만, 우파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 화재가 끊이지 않는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2018년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다사다난했고 전국에서 화재가 끊이지 않았다. 새해 벽두에 사상자 190여명이 나온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화재 가운데 최대 규모(사상자 기준)였다. 지난 10월 바람에 날린 풍등에 휘발유 탱크가 폭발한 고양 저유소 화재 사고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한 달 뒤엔 서울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일용직 건설 노동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자리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화재가 많다"는 아우성이 적지 않았다. 과연 실체가 있는 주장일까. '아무튼, 주말'이 이 주장의 진위를 확인했다.

화재 발생 줄었지만, 인명·재산 피해 최대

팩트 체크 역대 정부와 비교
7명이 숨지는 등 18명의 사상자를 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 모습. / 이태경 기자
우선 '문재인 정부 들어 화재가 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8일 현재 화재 4만412건이 발생해 전년 통계(4만4178건)를 밑돌았다. 연말까지 추세가 유지된다면 전년 대비 약 7% 정도(3000여건) 감소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 말이었던 지난해 상반기와 문재인 정부 집권 2년 차인 올해 상반기로 비교 대상을 좁혀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소방청이 지난 7월 발간한 '2018년 상반기 전국 화재발생현황'을 봐도 상반기 전체 화재 발생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9.6% 줄었다.

문재인 정부가 온전히 1년을 집권한 2018년 화재 발생 건수는 이전 두 정부와 견줘도 적다. 2000년대 들어 국내에선 매년 4만~5만 건의 화재가 있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화재 발생 건수는 4만4103건. 수치 자체는 이명박 대통령(4만5188건)이나 박근혜 대통령(4만2729건) 등 보수 정부가 집권했을 때 더 높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2008년(4만9632건)과 2009년(4만7318건) 화재 건수가 연간 5만건에 육박했다.

하지만 화재 사상자만 보면 일부 우파 성향 네티즌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 올해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346명, 부상자는 2146명에 달했다. 상반기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전년 동기 대비 41.4%(448명)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인명 피해(2492명)가 최근 10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방청은 "일평균 강수량과 습도 상승에 더해 예방 대책을 적극 추진해 임야·야외 등에서 화재 건수는 감소했지만, 상반기 사망자(226명)의 17.3%를 차지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대형 화재 사상자가 인명 피해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재산 피해도 컸다. 박근혜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연 4000억원대를 유지했지만 문재인 정부 집권 1년 차였던 지난해 처음 500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5164억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물가 요인 때문에 재산 피해액이 매년 점진적으로 오르는 것을 감안해도 올해는 화재로 인한 재산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고 했다.

급증한 대형 화재가 부른 착시

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여전히 '문재인 정부 들어 화재가 증가했다'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런 루머가 유행하는 배경으로 급증한 대형 화재를 지목한다. "심각한 인명·재산 피해를 낳는 대형 화재가 늘어, 불이 많이 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소방청 '화재조사 및 보고규정'은 5명 이상의 사망자 또는 1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거나 재산 피해가 50억원 이상으로 추정될 경우 대형 화재로 분류한다. 2012년(13건)을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연 10건을 넘지 않던 대형 화재는 올해 최소 12건이 넘는 것이 확실시 된다.

2014년 21명의 사망자를 낸 장성 요양병원 화재 이후 겨울철 대형 화재는 한동안 잠잠했지만 지난겨울엔 빈번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제천스포츠센터 화재(29명 사망·37명 부상)를 시작으로 올해 1월엔 종로 5가 여관 화재(6명 사망·4명 부상),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39명 사망·151명 부상) 등이 이어졌다. 2월엔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불이 나 400여명에 가까운 입원 환자를 포함한 시민이 옥상과 1층 로비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상반기에 발생한 전체 화재의 38.3%가 1~2월에 집중됐고 사망자도 같은 기간에 52.2%가 몰렸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겨울철 대규모 인명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이때부터 '불이 많이 난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대형 화재는 하반기에도 이어졌다. 8월 21일 인천 남동산단 내 인쇄회로기판(PCB) 제조공장에서 불이 나 9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한 달 뒤인 10월 7일엔 고양 저유소에서 화재가 일어나 주유소 100개 규모(440만L)의 기름을 태웠고 117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11월엔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9일)를 시작으로 '최악의 통신대란'이라 불리는 KT 아현지사 화재(24일), 부상자 67명이 발생한 수원역 골든프라자상가 화재(30일)가 잇따랐다.

나은영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한번 대형 화재 보도를 본 독자들 머릿속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활성화되고, 정치적 프레이밍 등이 더해져 사실과 다른 착시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양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형 화재가 자주 일어나 관련 보도가 줄을 잇고 인터넷으로 화재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나 사진 등이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실제 데이터와 상관없이 화재가 많이 난다는 인식이 확고해졌다"고 설명했다.

文 정부, 국민 안전 앞세웠지만

잇따르는 화재에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요즘 들어 더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야당이자 현 집권 세력은 유달리 국민의 안전을 강조했다. 정작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연달아 터지는 화재 앞에서 속수무책인 모습을 보여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신분이던 지난해 4월 문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등을 모아 놓고 "안전 때문에 눈물 흘리는 국민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후엔 국정 전략 중 하나로 '국민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를 내걸었고, 100대 국정 과제 중 8개 항목에 걸쳐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선제적 화재 예방 및 대형 화재 대비·대응 체계를 마련해 2015년 대비 화재 피해를 17% 감축하겠다'는 목표까지 세웠지만 빛이 바랬다.

문 대통령은 대형 화재가 잇따른 올해 1월 중 가진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약속, 안전한 대한민국을 꼭 만들겠다"고 했다. 1호 국정 과제인 '적폐 청산'도 관행과 탈법을 끊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올해 있었던 밀양병원 화재(스프링클러 미설치), 고양 저유소 화재(시설 관리 소홀), 국일고시원 화재(법률 미비) 등은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형남 전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각종 검사와 조사가 이뤄지지만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 등 좌파 성향 시민단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민변과 민노총 주관으로 열린 한 토론회에선 "재난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대책 마련과 사후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문 정부의 '면피성 수습'을 꼬집는 발언이 나왔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