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살인자 아빠의 신상을 공개합니다" 등촌동 세 자매의 분노

입력 2018.12.21 10:39 | 수정 2018.12.21 16:50

이혼한 아내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종선(49). 이 사진은 피해자의 딸이자 피의자의 직계 자녀인 세 자매가 공개했다.
이혼한 전처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서울 등촌동 살인 사건’ 피해자 세 딸이 범인인 부친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피해자(어머니)의 딸이자, 피의자(아버지)의 직계 자녀가 범죄자 신상을 직접 공개를 한 것은 전례가 없다.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 입장에서 수사 당국의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사적(私的)으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법적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경찰의 범죄자 신상공개 심사 기준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 자매는 지난 20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저는 살인자인 아빠 신상 공개합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들은 게시물에서 어머니 이모(47)씨를 살해한 범인인 아버지 김종선(49·사진)의 실명(實名)과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60일이 되는 날"이라면서 "살인자(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와 우리 가족 중 누구를 죽일까’ 목숨을 가지고 저울질 했다고 하더라. 이에 또 한 번 우리 가족은 불안에 떨고 있다"고 적었다.

게시물을 올린 둘째 딸 김모(22)씨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통화에서 "수사기관에서 범죄자 신상공개를 하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사진을) 올렸다"면서 "우리(세 자매)는 보도로 범인의 신상이 공개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사람(아버지)이 풀려나 사회에 다시 나오면 어떻게 되겠느냐. 조사를 받으면서 경찰에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해달라고 수 차례 요구했지만 ‘안 된다.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검찰에 가서 요청했더니 ‘얘기는 한 번 해보겠다’고 답한 뒤 변한 것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 김종선이 신상공개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는 게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제가 두려운 건 명예훼손 소송이 아니라 살인자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2009년)을 계기로 법 개정을 통해 기준이 세워졌다. 당시 연쇄살인 등 흉악 범죄가 잇따라 터지면서 "피의자 인권 보호보다는 범죄 재발 방지 차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이듬해 흉악범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된 것이다.

개정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의 신상 공개 조건은 △중대한 강력범죄사건일 때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국민의 알 권리,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때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때 등이다.

김씨는 강력 범죄자이며, 혐의를 인정한 데다 성인이지만 경찰은 신상 공개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신상공개는 무조건 원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제 기억으로는 유족이 수사 단계에서 경찰에 신상 공개를 요청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5일 ‘등촌동 살인 사건’ 피의자 김종선(49)씨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 때문에 경찰은 지난 10월 2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지난달 1일 검찰 송치 당시 검은색 야구모자와 마스크로 김씨의 얼굴을 가렸다. 김씨는 당시 고개를 아래로 꺾어 카메라를 피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0월 22일 오전 4시 45분쯤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아파트의 지상주차장에서 이혼한 아내 이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숨진 이씨의 차량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를 몰래 부착, 동선을 파악했다. 2015년 이혼한 상태였지만 계속해서 뒤를 쫓은 것이다.

또 범행 당시 가발을 착용하면서 신분을 위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파트 주변 CCTV에는 김씨가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범행 현장을 서성거리는 모습이 포착됐고, 김씨는 범행에 쓸 흉기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의자 김씨는 주먹으로 가정을 다스렸다. 그는 어린 딸들을 때릴 때마다 "짐승도 때리면 말을 듣는다"고 말해왔다. "엄마도 질릴 때까지 맞았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이혼 이후에도 미행 등의 수법으로 거처를 알아낸 뒤 공갈·협박·폭행했다. 숨진 이씨는 4년간 6번이나 이사하면서 도망 다녔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정부는 지난달 가정폭력 가해자는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가정폭력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딸들은 앞서 지난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아빠를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달라"고 썼다. 여기에는 21만명이 동의했다. 세 자매는 "우리는 피의자의 딸이다. 그러나 피의자의 딸이기보다 피해자의 딸로 살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 등촌동 살인 사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합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살인범 김종선(49)의 얼굴을 공개합니다.

2000년대 ‘인권(人權)수사’가 강조되면서 흉악범 얼굴을 마스크로 가려주는 관행이 생겨 났습니다. 그러나 연쇄살인·아동성폭행 같은 반(反)인륜적 범죄 재발방지, 국민 알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습니다. 이에 2010년에는 강력범죄 사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마련됐습니다.

아동성폭행범 김수철(당시 51세),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 오원춘(당시 48세)의 얼굴이 차례로 공개됐습니다. 최근 사례로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당시 35세), 노래방 손님을 토막살해한 변경석(34)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상공개 여부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은 남아 있습니다. ‘서울 등촌동 살인사건’의 범인 김종선의 경우, 개정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만 수사기관은 신상 공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어머니)의 딸이자, 피의자(아버지)의 직계 자녀인 세 자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범인의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둘째 딸 김모(22)씨는 이에 대해 "경찰·검찰에 수 차례 신상공개를 요청했지만, ‘안 된다.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면서 "수사기관에서 범죄자 신상공개를 하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로 범죄자 얼굴이 공개되기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피해자 가족의 절박한 호소를 접한 뒤 신상공개에 대한 법적 자문을 거쳐 고민 끝에 김종선의 얼굴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범인의 실명·얼굴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미 게시된 점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올린 당사자가 직계 자녀(세 자매)인 특수성 △피해자·피의자 직계 자녀가 신상공개를 강력히 원하는 점 △보도로 반(反)인륜적 범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는 공익적 측면 등을 고려해 내린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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