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외식의 품격] 그냥 우유 말고, ‘저지 우유’ 주세요

  • 이용재 음식평론가
    입력 2018.12.24 10:00

    유지방 함량 4.84%, 가격은 5배, 저지 우유 시대 열렸다
    ‘英 황실 우유’ 저지, 첫인상은 맑고 또렷…우유 소비 물길 틀까

    프리미엄 우유가 우유 시장을 구원할 수 있을까?/픽사베이
    우리는 여태껏 무슨 우유를 마신 걸까? ‘영국 황실에서 먹던 우유’라는 저지 우유를 마시게 된다면 한 번쯤 품을 법한 물음이다. 서울우유에서는 2017년부터 저지(Jersey)종의 우유를 출시했다. 배달을 시키거나 여느 마트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서초역 1번 출구 뒤의 롯데마트 안과 낙원상가 건너편, 종로2가 사거리에서 종각 방향, 분당 서현의 ‘밀크홀 1937’ 세 군데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330mL들이 1병에 3300원이니 100mL에 1100원이다. 참고로 같은 양의 일반 우유는 1000mL들이가 2000원대부터 시작하니 100mL에 200원꼴, 다섯 배가 넘는다.

    ◇ ‘英 황실 우유’ 저지 우유, 어떻게 다른가

    저지 우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마셔온 ‘일반 우유’와 어떻게 다를까. 전 세계 우유의 대세는 ‘홀스타인(공식 명칭은 홀스타인 프리슬란트)’ 종이고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젖소의 이미지로 친숙한 흑백 무늬가 특징인 홀스타인은 네덜란드 노르트홀란드와 프리슬란트주, 독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등에서 비롯된 품종으로 생산량 증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유 맛의 척도 가운데 하나인 지방 유지방 함유량이 3.7%다.

    저지는 이름처럼 영국령 저지 군도의 채널 섬에서 비롯된 품종인데, 영국보다 가까운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1700년 전후로 독립 품종으로 들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갈색의 털을 지녀 한우와 얼핏 비슷해 보이는 저지는 홀스타인에 비하면 덩치가 작고 우유의 생산량도 적지만 유지방 함유량은 4.84%로 월등히 높다. 그래서 저지 우유가 훨씬 더 맛있을까? 이전에 외국에서 먹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저지 우유가 더 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늘 먹는 홀스타인 우유보다 한결 맑고 가벼운 가운데 표정 혹은 해상도가 또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서울우유의 저지종 우유도 이런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지 우유가 한국 우유업계의 구원자 같은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우유의 세계 자체가 흔들리는 현실 때문이다. 한국에서 우유는 영양식품처럼 소비되어 왔으며, 일부 세대에게는 준강제급식의 트라우마도 남아 있다. 게다가 ‘왜 동물의 젖을 굳이 먹어야 하는가’라는 반감과 더불어 일종의 음모론도 만만치 않다. 유가연동제 탓에 소비가 줄어도 우유의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 현실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일반 우유보다 다섯 배 이상 비싸고 이제 막 시장에 풀린 저지 우유에 무거운 짐을 지우기보다, 일단 우유의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게 바람직하다.

    ◇ 우유 소비 늘리려면…가공식품 수준 높이고 개인화·대중화 필요

    지난 칼럼에서 ‘사브레’와 ‘사블레’의 차이점을 살펴봤는데, 유제품 바탕의 대량 생산 식품 세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우유와 동물성 크림 위주의 공산품 아이스크림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소비자는 편의점 등에서 하겐다즈 같은 수입 아이스크림을 2+1 행사나 이동통신사 포인트 등을 적극 활용해 사 먹는다. 맛없는 국산 맥주에 지친 나머지 ‘네 캔 만 원’ 등의 할인 수입 맥주에 의존하게 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게다가 요즘 부쩍 제품이 늘어난 초콜릿이나 커피 맛 우유 등은 전지분유에 타서 만든 ‘환원유’에 맛을 첨가한 수준이다. 따라서 다양성의 측면에서 최고급 우유의 제품군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존하는 우유 소비의 물길을 어느 쪽으로 돌릴 것인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우유의 다양성 측면에서 최고급 우유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존하는 우유 소비의 물길을 돌리는 고민도 필요하다./픽사베이
    밥과 국, 김치 위주의 한식 밥상에서 우유가 잘 어울리는 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또 우유 소비의 돌파구일 수 있는 치즈 생산도 사실 쉽지 않다. 미국에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납품하는 치즈를 만드는 ‘안단테 데어리’의 김소영 장인은 인터뷰에서 ‘단백질 함량은 적고 지방 함유량은 많아 국산 우유는 아직 좋은 치즈를 만들 수가 없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우유 소비의 물길을 돌리는 방안은 다음과 같이 네 갈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공산품 디저트류이다. 우유 혹은 크림이 아이스크림과 같은 빙과류나 케이크류에서 지분을 점차 넓혀야 한다. 가공성에 기대어 식물성 지방이 득세하는 제품군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우유의 개인화’이다. 신선도에 대한 염려를 조금이나마 덜고 휴대가 더 간편해지도록 한 번에 마실 수 있는 소포장 우유의 소비를 북돋아야 한다. 세 번째는 빵이나 쿠키의 수준 향상이다. 양식에서도 우유가 모든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차가운 우유가 잘 씻어 내려 주는 단맛의 빵이나 쿠키류의 수준이 높아지면 우유의 소비도 덩달아 늘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화가 잘되는 우유의 대중화이다. 한국인의 75%가 유당불내증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모든 업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유당이 분해된 우유를 상품화하면 좋겠다.

    ◆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다. 음식 전문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를 연재했으며,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음식 문화 비평 연작을 썼다.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뉴욕 드로잉’ 등을 옮겼고,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문화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