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남자는 100만원, 여자는 50만원… 필리핀 한인 청부살인 값이라고?

입력 2018.12.15 03:01

[주말의 수사반장] 필리핀 현지엔 '코리안 데스크'

필리핀 현지엔 '코리안 데스크' 일러스트
일러스트= 안병현
장면 하나. 지난 2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시내. 세계 3대 슬럼 중 하나로 꼽히는 빈민촌 나보타스 인근의 한 카페에 허름한 차림의 필리핀 남성 한 명이 검은색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40~50대 정도로 보이는 이 남성은 주변을 살핀 뒤 한 남성에게 다가갔다. 그는 재빨리 비닐봉지를 건넨 뒤 돈만 받고 사라졌다. 봉지 안에는 신문지로 둘둘 싼 물건이 있었다. 검은색 38구경 권총이었다. 받은 총을 확인한 남성도 곧바로 일어났다. 이 카페는 마닐라에서 잘 알려진 총기 밀거래 장소 중 하나. 옆 테이블에서 훤히 보이도록 거래가 이뤄져도 아무도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필리핀 현지 가이드 K씨는 "38구경 시세는 2만 페소(약 42만원) 정도"라며 "보통 실탄 6발이 장전돼 있고 등록된 총기도 아니라서 아무렇게나 쓰고 버려도 추적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면 둘. 지난 5월 16일 오후 9시(현지 시각) 마닐라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의 한 공터에서 한국인 사업가 김모(58)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머리를 비롯해 여러 곳에 총상이 나 있었다. 현장에 총격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버려진 것으로 추정됐다. 공터라서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었다. 현지 경찰은 전문 킬러의 솜씨라고 결론 내렸다. 피해자가 한국인이라 한국서 파견된 경찰청 외사국 소속 윤원창 경감이 수사에 투입됐다. 윤 경감은 공터 인근에 있던 주택의 방범용 CCTV에 찍힌 차 한 대를 발견했다. 시신 발견 시점보다 조금 앞선 시간이었고, 탐문 결과, 근처 주민의 차는 아니었다. 김씨의 시신을 유기하는 데 쓰인 차일 가능성이 컸다. CCTV 영상을 정밀 분석하자 차량 번호가 나왔다.

남자는 100만원, 여자는 50만원이면 '청부 살인 OK'

한국은 필리핀과 협정을 체결하고 2010년부터 필리핀 현지에 윤 경감 같은 한국 경찰을 파견해 공조 수사를 펼치고 있다. 한국인 관련 사건만 전담해서 '코리안 데스크'라고 부른다. 원래 외국에서 경찰 활동을 벌이는 건 주권 침해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한국 경찰이 외국에 파견돼 수사에 참여하는 국가는 필리핀이 유일하다. 현재 마닐라, 세부 등 필리핀 전역에 6명의 코리안 데스크가 활동 중이다.

유독 필리핀에서 한국 경찰의 활동을 허용한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 앞선 두 장면이다. 한국 교민 살인 사건이 해외서 가장 많은 나라가 필리핀으로, 최근 6년간 46명이 숨졌다. 그중 13명이 총기에 의한 살인. 지난 5년간 이 지역에서 실종된 한국인만 170명에 달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은 시내 한복판에서 밀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총기 규제가 엉망이고, 따라서 소지도 자유로워 그만큼 총기 사건도 빈번하다. 총기는 단순히 호신용이 아니라 현지인들에겐 일종의 생업 수단이다. 청부 살인도 직업이다. 필리핀 경찰국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불법 총기만 100만 정이 넘는다. 필리핀 경찰과 코리안 데스크의 말을 종합하면 필리핀의 청부 살인 '시세'는 대상자의 국적, 나이,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하지만 통상 한국 남자는 5만페소(약 106만원), 여자는 2만5000페소(약 53만원) 정도다. 이 역시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후 범죄와 전쟁을 벌이면서 상승한 가격이다.

청부 살인 수법도 각양각색이다. 지난 2월 유명 관광지 세부에서 피살당한 한국인 A(41)씨 경우엔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접근해 총을 쏘고 달아났다. 킬러를 고용한 살인뿐 아니라 알고 지내던 필리핀인에게 총격을 당해 죽는 일도 있다. 지난 8월 세부의 모텔 복도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이모(25)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필리핀인 친구와 다툼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사람이 다툼을 벌였고, 이어 총소리를 들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필리핀 현지엔 '코리안 데스크' 일러스트
범인 찾아도 검거까지 첩첩산중

2016년 10월 11일 오전 7시 30분 필리핀 바콜로시 외곽의 한 사탕수수밭. 한국인 남성 심모(52)씨, 박모(48)씨와 여성 맹모(49)씨가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세 사람 모두 테이프로 몸이 묶인 상태였고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쏜 흔적이 있었다. 세 명의 신원은 물론 목격자도, 현장에 남은 물증도 없어 미제(未濟)로 처리될 가능성이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코리안 데스크가 나서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필리핀 경찰국의 동의를 얻어 한국 경찰청 감식반도 급파됐다. 감식반은 현장 인근 사탕수수를 하나하나 베어 가며 혈흔 및 지문 채취를 했고, 코리안 데스크는 현지 교민을 상태로 강도 높은 탐문 수사 끝에 피해자들의 신원과 사연 등을 알아냈다. 살해된 세 명은 한국서 140억원대의 다단계 사기를 저지른 뒤 돈을 챙겨 필리핀으로 도주한 이들이었다. 탐문 수사를 통해 용의자도 확정했다. 현지 가이드처럼 이 세 명을 따라다녔던 박모(38)씨였다. 피해자들이 묵은 숙소에서 박씨의 지문이 발견됐고, 피해자가 숨진 뒤 박씨가 카지노 계좌에서 7억원을 인출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이후는 박씨의 행방추적. 교민 탐문 수사 과정에서 박씨의 내연녀 소셜미디어 계정이 나왔다. 사건 발생 후 올린 사진 한 장의 배경에 필리핀 루손섬 북부의 유명 리조트가 나온 게 결정적 단서였다. 코리안 데스크팀은 그대로 차를 타고 400여km를 내달렸지만, 막상 도착하니 박씨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후에도 내연녀는 수사팀을 약 올리듯 계속 사진을 올렸고, 그때마다 한국 경찰 등은 루손섬 전체를 돌며 추격전을 벌였다. 2000여km를 내달린 끝에 결국 마닐라 시내의 한 콘도에 숨은 박씨를 검거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CCTV는 물론, 치안이 열악한 필리핀 특성상 사건 현장에 물증이 남은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범인이 필리핀인인 경우에는 검거도 어렵다. 반드시 현지 경찰과 합동 작전을 벌여야 하는데, 한국과 달리 사전에 검거 작전 정보가 새는 경우도 잦다. 필리핀 경찰국 관계자는 "필리핀 경찰 중에는 아예 카지노나 범죄 단체에 고용돼 월급을 받는 경우도 많다"며 "킬러나 유력 용의자가 그런 단체의 비호를 받으면 그와 결탁한 부패 경찰이 미리 정보를 유출해 도망치도록 한다"고 말했다. 마닐라 경찰국 본부에 파견된 장성수 경감은 "한국서 도망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을 잡으려고 현장을 덮쳤는데 먼저 현장에 가 있던 필리핀 경찰이 그 자리에서 매수돼 작전 정보를 유출하고 도망치도록 도운 일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살인뿐 아니라 한인 대상 '꽃뱀'도 기승

"살인 사건은 사실 업무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셋업(set-up)' 범죄 같은 게 더 골치 아프죠."

코리안 데스크들은 "필리핀에 간 가족이나 친지가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며 찾아달라는 요청을 가장 많이 받는다"며 "그중 다수가 셋업 범죄에 휘말린 것"이라고 말했다. 셋업 범죄는 속칭 '꽃뱀'을 이용한 대(對)한국 남성 사기 사건을 일컫는다. 필리핀법은 18세 이하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할 경우 종신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데, 이를 이용해 한국 남자들에게 미성년자를 접근시켜 성매매를 하게 하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는 게 기본적인 셋업 범죄 수법이다. 꽃뱀뿐 아니라 마약을 팔겠다며 접근하거나 음식을 접대하는 척하며 약물을 넣어 기절하게 만든 뒤 금품을 털어가는 일도 흔하다. 윤 경감은 "노약자나 임신부, 어린이 등을 앞세워 '도와달라'고 접근한 뒤 보답하는 척하면서 약을 탄 음료수를 건네는 수법도 있다"며 "수치심 때문에 가족이나 경찰에 알리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이들도 있는데, 반드시 코리안 데스크의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