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라이터 가스로 돼지 질식시켰다?… 술자리면 터지는 남북 '군대 구라'

조선일보
  •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8.12.15 03:01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얼마 전 충북 보은에 강연하러 갔을 때다. 강연이 끝나고 주최 측에서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해 한자리에 앉았다. 같이 서울에서 내려간 경호팀원들도 합석했다. 다들 초면이라 별 대화 없이 분위기가 썰렁했다. 그런데 주최 측 한 사람이 자기가 특전사 출신이라면서 군대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내 경호원도 특전사 출신이라더니 5분 만에 기수 정리가 끝났다. 갑자기 화기애애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한국에 와서 여러 번 느꼈지만 남자들끼리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나면 군대 얘기가 늘 나온다. 고향이 어디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다음이 어디서 군 복무를 했느냐다. 하기야 20대 초반 사내들이 성인이 되어 처음 살 부딪치며 살벌한 육체 훈련을 했을 테니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리라. 그러니 술잔만 돌면 군 시절 살 에는 추위 견디느라 힘들었고, 거친 파도 뚫고 몇 ㎞ 바다에서 헤엄쳤다느니, 온갖 군장 메고 몇 시간 동안이나 땡볕에서 훈련했다느니 무용담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북한 남자들이 한국 남자들의 군대 얘기를 들으면 콧방귀를 뀔 듯하다. 북한 남자들은 보통 10년 이상 군대에 갔다 온다. "군대 생활 2~3년이면 초등학교 애들 수학여행 갔다 온 격인데 뭐 그리 요란 떠느냐" 할 것 같다. 북한 군대에선 "남한 군대는 괴뢰군이어서 애국심이 없고 전투력도 약하다. 전쟁이 일어나면 다 도망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래도 군대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한 민족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싶다. 북에서도 초면에 마주 앉을 일이 있으면 군대 얘기가 화제에 오른다. 같은 부대 출신이면 기수 정리가 자연스럽게 된다. 비무장지대 GP에서 복무한 '민경'(북에서는 DMZ를 '민사경찰'이라는 부대에서 관리하는데 훈련 강도가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이나 '저격 사단'(한국의 특전사 격) 출신은 이 세상 고생은 혼자 한 것처럼 떠들어댄다. '피스톤 부대'(대남 침투 간첩들을 안내해 휴전선을 넘어 내려오는 부대)처럼 특수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더 우쭐한다.

    /일러스트= 안병현
    단골 메뉴는 군대 때 배고픔을 어떻게 달랬느냐다. 야밤에 민가에 내려가 보니 집주인이 자고 있더라, 라이터 가스로 돼지를 질식시켜 업어 와 부대원들이 나눠 먹었다, 돼지를 부대까지 등에 메고 왔는데 나중에 보니 등이 돼지 배설물로 푹 젖어 있더라는 체험 수기가 넘쳐흐른다.

    제 자식 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자식 있는 부대로 소포를 보내는 건 상상도 못 하지만, 북한에서도 힘있는 부모들은 차에 먹을 것을 가득 싣고 부대로 찾아간다. 장교들에게 돈을 주면서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고위층은 자제를 '널널한' 곳으로 보내려 안달이다. 평양시에서 복무하는 호위사령부(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으로 내려올 때 따라왔던 부대), 보위부 군부대(한국으로 말하면 국정원 특수부대)가 대표적으로 인기 있는 곳이다. 이 부대에선 굶을 일이 없다. 그다음이 경무국(한국으로 말하면 헌병대)인데 단속 나가면 뇌물을 받을 수 있다. 북·중 국경지역 부대도 인기다. 밀수꾼, 탈북 브로커와 연결돼 장가갈 밑천을 벌어 돌아올 수 있다고들 한다. 운 좋게도 나는 중학교 때 유학을 가면서 군대를 면제받았다.

    북한에선 2030년이 되면 입대할 젊은 남자가 확 줄어 군 복무 기간이 현재 10년에서 더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 벌써 나온다. 결혼 후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젊은 부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야 인구 고령화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북한은 1만달러도 넘지 못했는데 출생률이 급감하고 있다. 젊은 부부들은 자녀를 1명 이상 낳지 않는다. 북한에 상주하는 유엔인구기금 등도 북한처럼 저소득 국가에서 출생률이 낮은 것은 처음 본다고 한다. 북한의 부부당 출생률이 1.67 정도라고 하는데 사실 내 생각에는 1.00 정도일 것이다.

    남북 인구가 이리 줄고 있는데 남북한 남자 100여만명이 매년 군대에 묶여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 이런 낭비를 줄이고 국력을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남자들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없어지지 않을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