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얼마짜리 관계일까 축의금은 알고있다

입력 2018.12.15 03:01

축의금 사회학

2050 남녀 4085명 설문조사

또 청첩장을 받았다. 11월부터 일곱 번째다. 한 살이라도 젊게 식을 올리고 싶은 신랑·신부가 몰리는 결혼 막차 시즌. 직장 동료, 친구, 친척으로부터 '청구서'가 날아온다. 문구는 정중하다.

'사소한 일상을 설레게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더없이 순수한 열정을 품고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려 합니다. 뜻깊은 순간 귀한 걸음으로 함께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신랑·신부 이름 아래 날짜와 장소가 이어진다. 예식장 약도와 대중교통편을 훑으면 한숨이 나온다. 2018년 마지막 달 주말마다 청첩장이 겁나게 밀고 들어온다. 가까운 사람도 있고 좀 멀지 싶은 사람도 있다. 어느 토요일엔 두 탕을 뛰었다.

아슬아슬 식장에 도착하면 늘어선 화환 뒤로 축의금 접수대가 보인다. ATM 기기로 가 현금을 뽑는다. '얼마짜리 관계인지' 늘 애매하다. 불온한 고민이 담긴 봉투를 건네고 식권을 받으며 입장. 예식이 끝나자마자 눈도장 찍고 사진을 촬영한다. 우르르 또 식당으로 직행한다. 금쪽같은 주말마다 결혼식 뷔페를 먹으며 상상한다. 나중에 돌려받게 될 '축화혼(祝華婚)' 봉투를. 사회적 관계를 가늠해줄 액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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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김의균·안병현

▲재미로 해보는 축의금 계산법

30대, 50대는 봉투에 더 넣는다

축의금 봉투에는 평균적으로 얼마가 담겨 있을까. 내가 남보다 더 내거나 덜 내는 건 아닐까. '아무튼, 주말'은 SM C&C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20~50대 남녀 4085명이 응답했다. 이 빅데이터로 뽑아낸 답은 6만400원. 축의금 평균은 1994년에 2만8000원, 2005년엔 4만2000원이었다(한국갤럽 조사). 물가보다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하객 연령대에 따라 축의금 봉투 두께가 다르다. 20대는 평균 5만5100원, 30대는 6만1700원, 40대는 5만9300원, 50대는 6만3800원을 낸다. 30대와 50대에서 봉우리가 나타나는 쌍봉 낙타 모양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수정 연구위원은 "30대는 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많이 하는 시기이고 50대는 사회적 지위(체면)도 있고 친구 자식이 결혼하는 시기"라며 "친밀도에 따라 축의금을 더 넣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20대는 소득이 적고 40대는 지출은 많은데 직장 후배 결혼식이 대부분이라 액수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축의금 시장은 한 해 4조~5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애경사를 함께 거드는 상부상조가 한국인이 가져온 삶의 불문율이다. 특히 결혼식은 신랑·신부보다는 부모 세대가 친구를 초대하고 과시하며 접대하는 자리였다. 한 시간도 안 돼 크고 작은 돈 봉투가 모인다. 신사임당(5만원권 등장)이 축의금 액수 상승에 가속도를 붙였다는 주장도 있다. 1만원권으로 쪼개면 지질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축의금으로 얼마를 내는 게 적당한가' 묻자 평균 5만4200원이라는 답이 나왔다. 실제로 내는 6만400원에 비해 6200원이 낮았다. 작아 보이지만 큰 격차일 수 있다. 지난해 26만4000쌍이 결혼했고 평균 하객을 300명으로 어림잡으면 약 5000억원이 과다 지출된 셈이다. 체면 또는 불안 때문에.

우리는 누구의 결혼식을 가장 부담스러워할까. 으뜸은 '직장 상사(선배)'(34%)였다. '직장 동료'(22%) '친척'(15%) '학교 선후배나 동기'(14%) '친구'(12%)보다 축의금을 산정하기 복잡한 관계라는 뜻이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선배가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불안감에 조금 더 넣고 싶지만 형편은 그렇지 않으니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한국 사회가 수직 문화에서 수평 문화로 옮겨가고 있지만 매일 마주하는 직장에서 상하 관계는 여전하다. 축의금 앞에서도 여간해선 자유로울 수 없다.

“의례적으로 돈 내러 간다”

‘아무튼, 주말’은 공무원 부부의 자녀(중소기업 직원)가 최근 결혼할 때 작성한 축의금 명부를 입수했다. 양가를 합쳐 하객은 345명. 약 2000만원이 들어왔다. 1인당 5만8000원꼴이다.

청첩장은 사회적 관계에 바탕을 둔 채무증서다. ‘친하면 10만원, 안 친한데 자주 보면 5만원, 안 친한데 잘 안 보면 3만원’이라고도 한다. 얼굴에 철판 깔고 애매한 관계까지 청첩장을 돌리면 “축의금 장사한다”는 힐난이 돌아온다. “10년간 열심히 냈는데 나는 결혼 못 하면 기부천사 꼴이네”라는 푸념도 들린다.

이번 설문에서는 축의금을 정하는 기준을 물었다. ‘친밀도’가 80%를 차지했고 ‘체면’이 11%였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체면의 비중도 올라갔다. 액수에 어떤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 ‘친분의 깊이’(35%)가 1위였다. ‘예의의 차원’도 24%에 달했다. ‘축하하는 의미’는 17%, ‘본인의 경제력’은 10%였다.

축하하러 간다는 느낌은 점점 약해진다. 유모(30)씨는 “결혼 성수기엔 한 달에 10곳을 갈 때도 있었고, 하루에 세 탕도 뛰어봤다”며 “얼굴 내밀고 축의금 건네고 다른 식장으로 이동하다 보니 의례적으로 돈을 내러 간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어느 결혼식까지 참석해야 하나. 하객 범위도 물었다. 친척의 경우는 ‘4촌 결혼식까지 간다’(56%), 친구인 경우는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 이상이면 간다’(48%), 직장 동료의 경우는 ‘부서가 달라도 친하면 간다’(34%)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결혼식 장소도 축의금을 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조사됐다. 5만원 봉투를 내고 호텔에서 8만원어치 식사를 하면 미안해진다. 가족까지 한두 명 동반할 경우 ‘결례’로 비친다.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축의금은 깐깐하게 손익을 셈하는 청구서로 변질되고 있다.

비혼식 열고 축의금 ‘회수’도

우정사업본부 경조금 배달 서비스는 전달 방식과 액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0년 전인 2008년에는 3만원 초과 5만원 이하가 93만2000건(46억원)으로 건수로도 액수로도 가장 많았다. 지난해엔 5만원 초과 10만원 이하가 134억원으로 으뜸이었지만 건수로는 여전히 3만원 초과 5만원 이하(23만5000건)가 더 많았다. 3만원 이하는 44만5000건(133억원)에서 1만5000건(4억5000만원)으로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인 박수홍은 꿈이 결혼이다. 여태껏 낸 축의금이 집 한 채 값이라고 한다. 그는 “(결혼은) 한 번만 하지 왜 두 번을 하냐”며 “내가 끝내 결혼을 못 한다면 비혼식이라도 열어 축의금을 ‘회수’할 예정”이라고 했다. 혹시 결혼을 못 하더라도 축하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김슬기(남·36)씨는 지난해 5월 비혼식(非婚式)을 열었다. 화장품 회사 러쉬코리아에는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 결혼할 때 받는 복지 혜택(축의금과 유급휴가)을 똑같이 지원한다. 아이가 없어도 반려동물이 있다면 수당을 준다. 김씨는 “살면서 결혼이 반드시 필요한지 자문하게 됐다. 그게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 않으냐”며 “동시에 ‘저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참 안정되고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직장 동료와 지인으로부터 축의금과 선물을 받았다. 그는 “많은 사람 앞에서 독신 선언을 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여주인공 캐리(세라 제시카 파커)도 이런 비혼식을 열었다. 변수정 연구위원은 “그동안 베풀기만 했는데 이번엔 내가 파티를 할 테니 와서 선물을 쏘라는 뜻이고 정정당당한 기회를 스스로 찾은 셈”이라며 “한국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젊은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장차 결혼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경우 축의금 액수에 영향을 미치는가’ 묻자 ‘매우 그렇다’(15%)와 ‘그런 편이다’(40%)는 응답이 과반이었다. 지난 15년 동안 축의금을 1500만원쯤 냈고 아직 미혼인 최모(여·41)씨는 “앞으로 받을 테니까 킵(keep)해두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찰수록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지 점점 더 고민한다”면서 “한두 해 전부터는 장례식장에는 가도 예식장엔 잘 안 가게 된다”고 했다.

바람직한 방향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몇 년 전 ‘고비용 혼례 문화 개선을 위한 작은 결혼식 국민 인식 및 실태’를 조사했다. 결혼식에 가까운 친척·친구만 오면 초라해 보일까. 이런 문항에 대해 ‘매우 그렇다’와 ‘대체로 그렇다’는 응답을 합치면 50.8%였다. 부모 세대(53.3%)가 자녀 세대(46.3%)에 비해 그렇게 응답한 비율이 다소 높았다.

각 집단의 남성(시아버지·친정아버지·신랑)이 여성보다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형식을 중시하고 대세를 추종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소영 연구위원은 “그럼에도 결혼 비용 중 가장 아까운 것은 ‘결혼식’(30%) ‘예단’(18.5%) ‘예물’(11.5%) 순이었다”며 “결혼식 규모의 폐해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담스러운 축의금은 이런 정황과 얽혀 있다. 친분에 대한 불안이나 업무적 관계 때문에 결혼식장에 간다면 축하도 노동이다. 적어도 미운털 박히면 안 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서양인에게 축의금은 낯설다. 작은 결혼식이 일반적인 영미권에서는 신랑·신부에게 선물을 줄 뿐, 돈을 건네지 않는다. 일본엔 축의금 문화가 있지만 선택과 집중이 강하다. 초대받아 가면 친구나 직장 동료는 최소 3만엔(약 30만원), 친척은 5만엔을 낸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한 언론인 알파고는 “터키에선 결혼식 비용은 부모가 감당하고 하객은 신랑·신부에게 축의금을 공개적으로 준다”고 했다.

5만원권은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으로 모인다. 호텔 예식장이면 5만원을 한 장 더 넣는다. 축하한다는 뜻은 그 순간 퇴색한다. 전문가들은 “결혼식은 외국처럼 규모를 줄여야 의미가 커질 수 있다”고 말한다. 홍석철 교수는 “작은 결혼식일 경우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축의금을 안 받거나 받더라도 기부 등으로 뜻깊게 쓸 수 있다”며 “결혼식이 부모 중심이라 당장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허례허식을 걷어내려는 움직임이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AI(인공지능)도 모르는 축의금 산정법. 서울에서 일하는 30대 미혼 직장인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잡지 ‘싱글즈’ב아무튼, 주말’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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