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그림자劇 "생큐, 코리아"… 내전 후 48년만에 마을축제로 공연

입력 2018.12.14 03:02 | 수정 2018.12.14 21:13

한국문화재재단이 기획·후원

"그림자극이라고요? 아빠는 보신 적 있나요?" "나도 처음인데…."

지난 7일 저녁 7시(현지 시각), 평소 같으면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을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옛 앙코르 왕조의 도성 '앙코르 톰' 한복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명 관광지인 코끼리 테라스 근처 프레아피투 사원 앞 공터. 오토바이와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교통수단) 50여 대가 주차돼 있고, 가설 무대 앞에는 남녀노소 300여 명이 앉아 기대에 찬 표정으로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캄보디아의 전통 그림자극 '스벡 톰(Sbek Thom)' 공연. 스벡 톰이 이 정도 규모의 캄보디아인 앞에서 공연되는 것은 1970년 캄보디아 내전이 본격화된 이후 4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7일 저녁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프레아피투 사원 앞 무대에서 전통 그림자극인 스벡 톰 공연이 열리고 있다.
지난 7일 저녁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프레아피투 사원 앞 무대에서 전통 그림자극인 스벡 톰 공연이 열리고 있다. /유석재 기자
스벡 톰은 소가죽을 투각 기법으로 정교하게 잘라 만든 넓적한 꼭두각시 인형을 배우들이 들고 스크린 앞과 뒤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공연으로, 음악·문학·공예·영상기법 등이 총동원된 종합예술이다. 1975년 크메르 루주 집권 이후에는 공연이 금지됐고, '킬링 필드' 시절 굶주린 사람들은 소가죽 꼭두각시를 삶아 먹었다. 폴 포트 정권이 무너진 이후 몇몇 장인이 스벡 톰을 되살렸지만, 주로 프랑스나 일본 같은 외국 관광객 앞에서였다.

스벡 톰에 사용되는 소가죽 꼭두각시.
스벡 톰에 사용되는 소가죽 꼭두각시.
최근 이 문화유산의 활성화를 고민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문화재재단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2015년부터 3년 동안 12세기 유적인 프레아피투 사원의 복원 정비 사업을 맡아 무너져 있던 십자형 테라스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티타늄 봉으로 석재를 잇는 익산 미륵사지석탑 복원 기법이 활용됐다. 1차 사업을 끝내는 축하 행사를 좀 더 의미 있게 가져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크메르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관객 앞에서 스벡 톰을 보여주는 자리를 열면 살아있는 공연이 될 텐데!" 진옥섭(53)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이 스벡 톰의 대표적 극단 중 하나인 '띠 찌엔 극단'을 찾아가 소가죽 무두질에 열중하던 찌엔 소판(41) 대표를 설득했다.

7일 공연은 많은 캄보디아 관객에게 새로운 체험이었다. 건장한 남자 배우들이 꼭두각시를 연결한 장대를 들고 큰 동작으로 싸우는 시늉을 했다. 스크린 뒤에서 코코넛 껍질을 태운 불이 활활 타올라 힌두교 서사시 '라마야나' 속 인물과 장면을 표현한 꼭두각시를 비췄다. 불빛과 스크린, 꼭두각시 사이의 거리에 따라 영화 같은 줌인·줌아웃 장면이 전통 음악, 낭랑한 해설과 함께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웃음과 환호가 터졌다.

3㎞ 떨어진 마을에서 툭툭을 타고 왔다는 관객 쯔어 프이(59)씨는 "전쟁 전 어렸을 때 마을에서 온 가족이 함께 스벡 톰 공연을 봤는데, 50년 만에 다시 보니 뭉클하다"고 했다. 스벡 톰에 이어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 연희단팔산대 등이 참여한 한국의 아리랑 공연(연희감독 김운태)이 펼쳐지자 캄보디아인들은 일어나 손뼉을 치며 열광했다. 전통예술이 한국과 캄보디아를 찰떡같이 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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