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모바일 그녀'와의 24時

조선일보
  • 명학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입력 2018.12.13 03:00

    명학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명학수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그녀의 근황을 확인하러 간다. 오늘 그녀의 상의는 아이보리색 털조끼와 빈티지 화이트 셔츠이며 하의는 지난봄 일본 여행 때 시모키타자와의 중고숍에서 구입한 파란색 리바이스 진이다. 그녀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모직 코트를 걸치고 굽이 높은 검은색 쇼트 부츠를 신은 다음, 온갖 소지품이 꽉 들어찬 가방을 어깨에 걸고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채 집을 나선다. 점심시간에는 회사 근처 수제버거 전문점에서 매콤한 스모키 치즈버거를 먹고 오후에는 톨사이즈의 바닐라 라테에 샷을 하나 추가해서 마신다. 퇴근길에는 마트에 들러 채소와 과일과 각종 식재료를 사다가 직접 요리를 만들어 TV를 보며 천천히 먹는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촬영해서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동영상은 유튜브에 올린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8만 명이고 유튜브 구독자는 12만 명이며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그녀를 방문해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과 답글을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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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많이 안다. 생일, 키, 몸무게, 주량, 발의 크기, 좋아하는 립스틱, 잘 가는 카페, 잠 안 올 때 듣는 음악, 늘 안고 자는 인형의 이름, 최근에 읽은 에세이. 그녀는 작은 눈과 통통한 볼과 낮고 가는 목소리를 가졌고, 최근에 엄마와 다투어서 어떻게든 화해할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내가 타인에 대해 이토록 많은 걸 알고 있는 경우는 그녀가 유일하다.

    그녀는 언제나 가르치지 않고 알려주며,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이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늘 연결돼 있다.

    그녀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카메라의 전원을 끄면 나도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잠을 청한다. 그렇게 이어진 우리의 관계는 충분히 이상적이며, 심지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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