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나고 열 받을 땐 나한테 맡겨!

조선일보
  • 김상윤 기자
    입력 2018.12.13 03:00

    감정 표현 대신하는 캐릭터 디자인 인기
    술 강요하는 상사·개처럼 만취된 사람·바람피우는 애인… 대리 응징, 위로도

    캐릭터 브랜드 '사탄가게'의 열쇠고리는 해괴하다. 정장 입은 남자, 배낭 멘 학생 등이 검은 띠로 눈을 가린 채 쇠사슬에 꽁꽁 묶여 걸려 있다. 디자이너 임동수(34)는 생활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민폐들을 '사탄'이라 칭하고, 이들을 응징하는 모습을 캐릭터 소품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각각의 캐릭터는 민폐 혹은 범죄자의 행위를 상징한다. 재작년 발표한 시즌 1 애니메이션은 지하철 민폐족을 소재로 했는데, 서울교통공사 국제지하철영화제 특별상을 받아 서울과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하철에서 상영됐다. 다리를 벌리고 앉는 '쩍벌남', 다리를 꼬고 앉는 '다꼬녀', 뒤로 멘 가방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백팩맨'이 등장한다. 사탄가게가 호응을 얻은 건 '대리 만족'을 안겨주기 때문.

    캐릭터 브랜드 '사탄가게'의 열쇠고리(왼쪽). 지하철, 술자리 민폐족을 쇠사슬로 매달아 놓은 모양이다. 가운데는 '미스터두낫띵', 오른쪽은 '아임 굿 이너프'.
    캐릭터 브랜드 '사탄가게'의 열쇠고리(왼쪽). 지하철, 술자리 민폐족을 쇠사슬로 매달아 놓은 모양이다. 가운데는 '미스터두낫띵', 오른쪽은 '아임 굿 이너프'. /사탄가게·미스터두낫띵·20세기 컬처픽션

    임씨 같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최근 내놓는 캐릭터 브랜드들의 키워드가 바로 '감정 대리'다. 감정 표현을 대리인에게 맡기는 요즘 성향을 가리킨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내년 소비 흐름으로 예상한 키워드 중 하나다. 오는 16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선 사탄가게의 두 번째 시리즈 '술자리'가 전시된다. 술을 강요하는 직장 상사, 늘 개처럼 만취된 사람, 바람피우는 애인 등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응징도 이뤄진다.

    그 외에도 '미스터두낫띵' '아임 굿 이너프' 등이 주목받는다. 미스터두낫띵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아랫배 나온 캐릭터가 힘없이 널브러진 모습. 디자이너 심영민(29)씨는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의 뜻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홍콩 한 쇼핑몰에 전시되고 대만·필리핀의 의류 브랜드와 협업했다. 디자인 스튜디오 '20세기 컬처픽션'이 최근 공개한 아임 굿 이너프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갇힌 소녀들을 겨냥했다. '조금 살쪄도 괜찮아'란 메시지. 몸을 조이지 않는 속옷도 내놨다.

    이미 대중적 인기를 누린 캐릭터도 있다. '옴팡이'가 대표적.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사랑이 많다는 설정이 공감을 얻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관계자는 "감정을 말 대신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듯 일상의 감정을 대신 드러내 주는 캐릭터 디자인이 2030세대에 인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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