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2m 얇디얇은 집…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답니다

조선일보
  • 김상윤 기자
    입력 2018.12.13 03:00

    서울 잠원동 자투리땅에 서초건축상 받은 이색집
    1층과 지하는 작업실, 2층 양쪽 끝에 부엌·거실, 3층 양쪽 끝에 안방·아이방

    집을 짓기 좋은 땅이 있고, 짓기 어려운 땅도 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얇디얇은 집'은 집을 도저히 지을 수 없을 듯한 땅에 지은 집이다. 책꽂이에 꽂은 책을 보듯 얇고 기다란 모습이 눈길을 붙잡는다. 건물 일부만 과장되게 드러낸 것도 아니다. 이름 그대로 얇디얇게 지었을 뿐이다.

    올 초 완공된 이곳은 2016년 젊은건축가상 수상자인 신민재(42) 에이앤엘스튜디오(AnLstudio) 소장과 안기현(42) 한양대 교수가 설계했다. 지상 4층, 지하 1층에 대지 면적 67.7㎡, 연면적 140.7㎡로 규모 자체는 서울 도심 단독주택치곤 작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골목에 면한 부분의 좌우 폭이 1.4m에 불과하고, 안쪽으로 갈수록 넓어지지만 가장 넓은 곳의 너비도 2m 조금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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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잠원동 ‘얇디얇은 집’을 골목에서 바라본 모습(왼쪽). 골목에 면한 부분의 좌우 폭이 약 1.4m밖에 안 되고, 가장 넓은 부분도 2m 조금 넘는다. 건물 옆면(오른쪽)의 일부는 탄화(炭化) 코르크로 마감해 단조로움을 덜어냈다. /사진가 이한울
    불편하진 않을까? 건축주인 안휘만(41)·오은미(38) 부부는 뜻밖의 답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그럴 수 있을 텐데, 저희는 계단 자주 오르내리는 것 말고는 전혀 문제없어요. 생활 방식이 워낙 단순해서요." 집을 둘러보니 그 흔한 소파나 서랍장, 화장대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미니멀리즘'이었다.

    땅은 원래 서울시 소유였다. 고속도로 옆에 완충녹지를 만들고 남은 자투리땅이다. 결코 좁진 않지만 길쭉한 모양 탓에 써먹기 어려운 곳이었다. 지하철 논현역과 반포역이 근처에 있고 반포자이아파트가 바로 옆이지만 땅값은 인근의 절반 수준. 공매(公賣)에서 수차례 유찰된 끝에 한 사업가가 낙찰받았다. 협소 주택을 지으려 했으나 생각보다 공사비가 많이 들어 다시 내놨고, 안씨가 이를 발견해 사들였다. "근처에 사무실이 있어 7년 동안 오가며 보던 곳이에요. '여기에도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땅을 판다'는 방(榜)이 붙었더라고요." 전세로 여러 아파트를 떠돌던 부부는 일사천리로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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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내부 사진들. 왼쪽부터 건물 옥상, 3층 부부 침실, 3층 아이 침실, 3층 복도, 2층 부엌, 2층 복도. /사진가 이한울

    외양은 특이하나 내부 구조는 평범하다. 신 소장은 "복잡하고 재밌는 공간을 만들기엔 제약이 많았다"고 했다. 1층 절반과 지하 1층은 영상 촬영 및 편집 일을 하는 안씨의 작업실이고, 1층 나머지 절반은 집 현관이다. 2층 양쪽 끝에 부엌과 거실이 있고, 3층 양쪽 끝에 침대를 놨다. 전체적으로 석고보드와 벽지로 내부를 마감해 무난하면서 실용적이다. 눈에 띄는 소재가 두 곳에 쓰였는데, 하나는 외벽 마감재로 쓴 코르크다. 와인 마개로 쓰는 그 코르크로 아내 오씨가 '외관에 포인트를 주자'며 제안했다. 다른 하나는 계단 옆 창에 쓰인 '폴리카보네이트'. 불투명한 유리 같은데, 가볍고 견고하며 단열과 채광도 잘된다는 게 장점이다. 신 소장은 "두께가 얇고, 옆집과 시야는 차단하면서 빛을 들일 수 있는 소재"라고 했다.

    안씨는 "발걸음을 멈추고 집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행인이 많다"고 했다. 이곳은 올해 서초구가 주최한 '서초건축상'을 받았다. 신 소장은 "구청장과 직원들이 '인상 깊게 봤다'고 거듭 말했다"고 했다. '고속도로 주변이라 시끄럽진 않을까' 싶었지만 집 안은 고요했다. "창을 고르면서 방음에 신경 썼거든요. 게다가 이 앞이 1년 내내 막히는 길이라 차 달리는 소리가 잘 안 들려요." 집을 나서니 바로 앞에 거주자 우선 주차장이 보였고, 옆에 있는 완충녹지는 정원 같았다. 얇디얇은 공간에 있을 건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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