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김정은 禁忌' 깨는 사람들

입력 2018.12.13 03:13

신동흔 문화부 차장
신동흔 문화부 차장

지난 4일 밤 KBS 시사 프로 '오늘밤 김제동'에 나온 '위인맞이환영단' 대표는 2분 분량 녹화물에서 "(김정은은) 겸손하고 지도자의 능력과 실력이 있고 (중략) 팬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쇄도하자 KBS 제작진은 예상했다는 듯 '(야당 주장은) 왜곡이며 비판적 내용의 방송이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김정은 칭송 발언이 KBS 전파를 탔다는 점에서 파장이 작지 않다.

곳곳에서 금기(禁忌)가 깨지고 있다. 얼마 전 핼러윈 데이를 맞아 아이 학원 파티용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가면을 주문했다. 며칠 뒤 판매자가 연락해 "트럼프는 다 팔렸고, 김정은은 재고가 남았는데 바꿀 의향 있느냐"고 했다. 아이가 3대 세습 독재자 가면을 쓴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어 취소했다. 그나마 "김정은은 잘 안 팔린다"는 말에 위안이 됐다. EBS미디어 명의로 교구(敎具)를 만드는 회사에서 김정은 만들기 퍼즐을 출시했다가 회수하는 일도 있었다. 회사 측 담당자는 "남북 화해 분위기를 맞아 출시했는데, 시기가 일렀던 것 같다"고 했다.

세상 흐름에 따라 돈 벌 기회를 찾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이가 김정은 퍼즐 조립하는 모습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 부모도 있고, 서울 이태원이나 홍대 입구에 김정은 분장으로 돌아다니는 이도 있었다. 서울 강남 한 쇼핑몰에선 '김정은 마스크팩'까지 팔린다고 한다.

이는 정말 '자연스러운' 흐름인지 의심하게 된다. 순수한 청년처럼 KBS에 나왔던 위인맞이환영단장은 알고 보니 2014년 이적(利敵) 단체 판결을 받아 해산된 통합진보당 후보로 서울시의원 선거와 총선 등에 나온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친북 활동 이력은 밝히지 않은 채 평범한 젊은이인 것처럼 "금기를 깨고 싶다" 운운했다. 마스크팩 업체는 "남북 철도 연결 기금에 기부하겠다"는 고도의 상술(商術)까지 활용했다.

일부러 색안경을 끼고 볼 생각은 없지만, 남북 평화 무드를 활용해 어떤 의도를 갖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 한 해 자주 접하면서 익숙해진 '김정은'을 재미(fun) 요소로 등장시켜 더 이상 아무도 거론하지 않거나 별 문제의식 없게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사상이 허용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우리 사회와 달리 북한은 금기를 깨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집단이다. '최고 존엄' 얼굴이 그려진 가면이나 퍼즐, 마스크팩을 북한에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들 앞에서 우리만 먼저 빗장을 풀고 있다. 북의 전체주의에 맞서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금기를 깨자는 이들에 대해 한 번 더 검증하고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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