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7 對 1만… 韓·日 100년 기업

입력 2018.12.12 03:13

이위재 산업1부 차장
이위재 산업1부 차장

프랑스 파리에 '에노키안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200년 이상 지속한 장수(長壽)기업들이 모인 곳이다. '에노키안'은 성경 속 인물 '에녹'에서 따왔다. 에녹은 365세를 살았다고 나와 있다. 에녹이 오래 산 데다가 죽지 않고 천국에 갔다고 해서, 기업도 영속(永續)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 단체의 가입 조건은 까다롭다. 창업자 자손이 현재 경영자이거나 임원·대주주여야 한다. 신청 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덕분에 전 세계 장수기업 중 48곳만 회원사다. 이 에노키안협회 회장에 일본 기업 오카야코우키(岡谷鋼機)의 오카야 도쿠이치 사장이 올해 취임했다. 1669년 철물점에서 시작해 449년째 명맥을 이어가는 회사다.

일본은 장수기업 천국이다. 에노키안협회에 가입만 안 했지 일본에서 200년 넘은 기업은 3000곳에 이른다. 100년 넘은 곳은 1만개 이상. 578년 창업한 곤고구미(金剛組)라는 목조건축물 건설·유지·보수 전문회사가 가장 오래됐다. 이 곤고구미를 세운 게 백제에서 넘어간 유중광(일본 이름 곤고 시게미츠·金剛重光)이라는 사실이 얄궂다. 그가 한국에 있었다면 곤고구미 같은 회사를 지금껏 남길 수 있었을까. 창립 100년은 지나야 '장수기업'명함을 내밀 수 있는데, 한국엔 두산(1896년 설립)과 동화약품(1897년)·몽고식품(1905년) 등 7곳 정도다. 일본의 0.1%에도 못 미친다.

바로 옆 동네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공업과 상업을 천대하는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를 주범으로 많이 꼽는다. 문제는 요즘도 그런 인식이 한국에 팽배해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기업을 '사회의 공기(公器)'로 대우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부의 밑천을 댄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한국에선 기업을 사리사욕의 소굴인 양 매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사회 탓만 할 일도 아니다. 전 세계 200년 이상 기업의 70%가 몰려 있는 일본·독일 장수기업의 특징 중 하나는 에노키안협회 회원사처럼 '가족 기업'이란 점이다. 그래야 사명감과 노하우가 단단하게 전승돼 기업 수명이 길어진다고 경영학자들은 분석한다. 일본·독일 정부는 그것이 결국 국가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일정 기간(5~7년) 이상 기업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면 상속세를 80~100% 감면하고 유예해준다.

가업(家業)을 물려주고 싶은 한국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고민거리도 승계(承繼)와 관련된 세금 부담이다. 한국은 일본·독일과 비슷한 상속세 감면 제도를 2014년 도입했지만 조건이 너무 빡빡해 하나마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기업 가운데서도 에노키안협회 회원사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러려면 사회 전체적으로 기업에 대해 더 과감한 발상의 '전향(轉向)'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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