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베네수엘라에도 우파 야당은 있었다

입력 2018.12.12 03:15

분열해 제구실 못 한 野黨 덕에 차베스 집권 후 나라 거덜 나
중심 없이 내분 겪는 한국 야당 '민주당 20년 집권' 도와주는 꼴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아무 데나 땅만 파면 석유가 나온다는 베네수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실패한 국가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이 20년이다. 1998년 차베스가 집권해 마두로로 이어진 좌파 정권은 한때 남미에서 손꼽던 부국(富國)을 '다 함께 못사는 나라'로 결딴냈다. 문재인 정권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하는 '세금 퍼주기' 실험을 차베스가 20년 전 그곳에서 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 아래 반(反)기업·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했다. 이른바 개념 연예인, 좌파 언론의 찬양 속에 정권은 반미(反美)의 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한 정권이 실패한다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정권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국민은 바꾸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나라 경영에 실패한 차베스는 신화가 됐는데 반대편 우파 야당은 국민의 기피와 혐오 대상이 됐다. 2013년 암으로 사망한 차베스가 측근 마두로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유언하자, 베네수엘라 국민은 그렇게 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마두로는 병색이 완연하던 나라를 기어코 중환자실로 보냈다. 국민을 굶겨 성인 평균 체중을 10㎏이나 줄였고, 평균 미모 수준이 높다는 그 나라 여인들을 옆 나라 매춘부로 만들었다. 그러고도 마두로는 지난 5월 대통령 선거에서 68% 득표로 다시 뽑혔다. 선거날 투표장을 찾은 베네수엘라 40대 유권자의 말이 선거 결과를 미리 보여줬다. "나는 가난하고 직업도 없지만 마두로를 찍겠다. 경제가 어려워진 건 우익 부자들이 물자와 자본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해도 우파 야당만은 찍지 않겠다고 그 유권자는 말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야당은 차베스 시절 군사 쿠데타에 연루됐다가 적폐로 찍혔다. 국정 불참, 선거 보이콧 전략을 구사했지만 성공 못 했고, 정권과 좌파 언론에 공격 빌미만 줬다. 베네수엘라 전문가 부산외대 안태환 교수에 따르면 민주연합회의(MUD)란 이름의 베네수엘라 야당은 내분이 심각한 데다 리더십도 없다. 이념 스펙트럼이 넓어 극단적 대(對)정부 투쟁에서 타협론까지 갈피 못 잡고 오락가락한다. 마두로를 싫어하는 베네수엘라 유권자도 야당은 찍지 않는다. 야당이 제 구실 못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걸 베네수엘라가 제대로 보여줬다.

대한민국에도 우파 야당은 있다. 지금 그들도 리더십 부재 속에 내분 중이다. 문재인 정권이 철 지난 남미식 좌파 정책으로 나라를 망가뜨리는데 우파는 탄핵 늪에서 허우적댄다. 대통령이 친북으로만 내달려도 야당은 갈 길을 못 찾고 우왕좌왕한다. 탄핵 때 비겁했던 친박들은 이제 와 '남 탓'만 하고, 그때 비열했던 비박들은 '불가피'를 말하며 서로 멱살 잡고 있다. 국민 눈에는 둘 다 혐오 대상일 뿐이다.

최근엔 'TK 친박 신당'을 따로 만들겠다는 자들도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탄핵에 찬성한 사람들과는 같이할 수 없는 것 아니에요"란 메시지를 유모 변호사를 통해 전했다는 얘기도 흘린다. 지금의 사분오열도 모자라 더 쪼개고 더 나누겠단다. 이대로라면 문 정권이 아무리 실정을 거듭해도 우파 야당은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집권 세력이 실패해도 야당은 찍지 않는다'는 베네수엘라 공식이 조만간 대한민국에서도 실현될 수 있겠다. 베네수엘라 실패의 20년은 따지고 보면 좌우 합작품이다. 이해찬 대표도 그걸 믿고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말하는 모양이다. 20년 뒤, '이해찬의 꿈'이 실현되고, 그래서 폐허가 된 한국 역사에 이런 문구가 남을지 모르겠다. '그때 우파 야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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