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빙상연맹 나몰라라… 선수만 뛰는 한국 피겨

입력 2018.12.11 03:01

이순흥 스포츠부 기자
이순흥 스포츠부 기자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ISU(국제빙상연맹)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파이널을 현장 취재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남자 싱글 은메달리스트 우노 쇼마(일본)가 경기나 연습을 앞두고 링크 한쪽에서 트레이너와 농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한 일본 기자는 "국제대회마다 일본빙상연맹이 트레이너를 파견해 선수 관리를 한다. 뭉친 근육 풀어주기부터 심리적 케어까지 트레이너가 많은 부분을 책임진다"고 했다.

반면 한국의 차준환·김예림은 이 대회에 코치 1명씩만 대동했다. 종목 특성상 부상 관리가 중요한데도 연습 후 혼자서 얼음찜질을 하고, 몸을 추슬렀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하 빙상연맹)이 이들에게 지원한 것은 항공·숙박비 등이 전부였다.

세계선수권과 함께 가장 큰 대회인 그랑프리 파이널에 한국 선수가 2명 이상 출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빙상연맹 관계자는 한 명도 대회장을 찾지 않았다. 개막에 앞서 지난 6일 열린 팀 리더 미팅(대표자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지 교통부터 의료진·도핑 등 각종 대회 정보를 알리는 자리였지만, 아무도 우리 선수를 챙기지 않았다.

대회 내내 경기장 한편엔 VIP 라운지가 운영됐다. ISU와 각국 연맹, 후원사 관계자가 자유롭게 만나는 이곳에선 미국과 러시아·일본 등 주요 국가 인사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곳에도 한국 관계자는 없었다. 한 국내 피겨 인사는 "피겨는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데 한국이 좋은 '스포츠 외교'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꼴"이라고 말했다.

차준환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한국 남자 사상 첫 메달(동)이란 새 역사를 썼다. 한국 여자 선수론 '피겨 여왕' 김연아 이후 13년 만에 주니어 여자 싱글에 나선 김예림도 5명의 러시아 경쟁자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얼음을 탔다. 김연아가 등장해 '피겨 불모지'에 씨앗을 뿌린 다음 많은 어린 선수가 한국 피겨의 지형을 넓히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체계적인 선수 관리나 스포츠 외교 활동은 아직 꿈도 못 꾼다. 현재 빙상연맹은 후원사인 삼성이 손을 뗀 데다 지난 9월 대한체육회로부터 관리단체로 지정돼 '식물' 상태다.

한 피겨 지도자는 "피겨 선수에 대한 지원은 원래 거의 없었다"며 "평창 동계올림픽이란 축제 때문에 잠시 잊었던 거지 예전으로 돌아간 것뿐"이라고 말했다. 차준환과 김예림의 고군분투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웠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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