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2018 뜨거웠던 단어 '옹고집 통치'

조선일보
  •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18.12.11 03:15

    내 편과 내 사람만 챙기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향 커져
    非核化 잊고 제재 완화만 외치면 그게 한국판 '옹고집 통치'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연말이다. 위키백과와 연결된 자유 사전 윅셔너리(wiktionary)가 지난 1년 가장 뜨거웠던 단어 스물일곱 개를 영국·유럽·북미 중심으로 뽑았다. 필자가 셋을 다시 추렸다. 첫 단어는 '다크 키친'이다. 홀 서빙 없이 오직 배달만 하기에 창문 없이 '어두운 부엌'을 운영한다.

    올해 여러 나라에 식당 파산이 많았다. 주방 인력 부족, 식자재 문제에 임금 인상까지 겹쳤다. 스트라다, 제이미스 이탈리안, 바이런 같은 식당이 상당수 체인점을 닫았다고 했다. '다크 키친'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다크 키친' 산업은 한국도 앞서 있다. 피자나 중국 음식 배달은 옛일이다. 이제 집에서 '셰프의 요리'까지 배달시켜 먹는다. 국내 배달앱 시장은 규모가 3조원, 이용자는 2500만명을 넘어섰다. 어떤 신개념 음식 배달 업체는 문을 연 지 6개월 만에 매출 10배를 달성했다고 한다. 주문 수가 작년보다 400% 증가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배달 업체가 조리 공간을 만들어 주고, 조리 업체는 주방을 공유한다. 소비자는 5년 만에 2773%나 폭증했다. 한 동료도 지난밤 강추위에 유명 떡볶이와 눈꽃빙수를 배달시켜 먹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이 현상이 시내 '중심가 식당'은 물론 '아파트 주방'까지 잠식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둘째 뜨거웠던 표현은 '와인스틴 현상'이다. 작년 10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여기에 '미투'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촉발된 세계적 고발 운동이 한국 사회에도 엄청난 진통과 변화를 몰고 왔다. 트위터가 2018년 결산 키워드를 발표했는데, 사회 부문에서는 '스쿨 미투'가 1위로 꼽혔다. 성희롱·성추행 고발이 학교 안으로 이어진 결과다.

    올 1월 현직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실상을 실명 인터뷰로 고발하면서 불이 붙었다. 문화 권력의 꼭짓점을 차지하고 있던 연극연출가, 원로시인, 극작가, 배우, 가수들이 줄줄이 심판대로 불려 나왔고, 대권 주자로 꼽히던 현직 지사가 옷을 벗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 인사만 20명이 넘었다. 배우와 교수 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셋째 단어는 '비고토크라시'란 합성어다. '비고트(bigot)'는 종교적·인종적으로 '편견이 심한 사람', '크라시(cracy)'는 '통치'라는 뜻인데, 옮기면 '편견 통치', '옹고집 통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난하는 표현이다. 작년 8월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시(市) 폭동을 계기로 널리 퍼졌다.

    대안 우파, 백인 우월주의자, 네오 나치, KKK 같은 세력이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반대해 폭력 시위를 했는데, 차량 돌진 사건으로 한 명이 죽고 스무 명 가까이 부상을 입었다. 그때 트럼프는 백인 극단주의를 비난하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대안 우파, 대안 좌파, 양쪽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 여러 진영을 싸잡아 욕하는 다비론(多非論)을 펼쳤고, 그러자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가 아니라 백인 제일주의(White America First)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도 비슷하다. 자신의 선입견과 옹고집을 확인하는 정보만 탐색하고 전파한다. '내 편'과 '내 사람'만 챙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도전적인 정보는 꺼린다. 한국 대통령이 소득 주도의 긍정 효과가 90%라고 아직도 믿는다면 한국판(版) 비고토크라시가 된다. 대통령이 세계 무대 파티장에 갔을 때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는 상대의 발언은 기억 못 하고, 대신 제재 완화를 주장한 자신의 발언만 기억하려 한다면, 그게 비고토크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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