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답방, 해도 해도 너무 한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김정은 답방 문제가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결단을 기다린다고 했다. 온다는 것인지 못 온다는 것인지, 대중가요 ‘안동역에서’ 같은 무슨 유행가 가사도 아니고, 이건 분명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전무후무한 폐쇄 국가요, 그쪽 ‘최고 존엄’이 국경선 밖으로 나갈 때는 미국 대통령 저리 가라 할 만큼 초특급 경호가 필요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는 너무 목을 매는 듯하다. 문재인 정권은 국민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 국민 자존감은 국가 생존과 국가 정체성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13일 온다, 아니다 18일 온다, 말은 왔다 갔다 하는데,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지금까지 진척된 상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재촉하지 않겠다"는 말로 변했다. 매달리지 않겠다, 조르지 않겠다, 그런 뜻으로 들린다. 지지율 하락의 반등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비난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이제 북한 선발대가 올 가능성도 없다고 한다. 남북은 핫라인이 있다. 수화기만 들면 저쪽에서 응답하라는 전화가 핫라인이다. 그런데 이럴 때 핫라인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응답이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김정은 답방 날짜가 갑자기 결정된다면 프레스센터를 설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김정은, 안 온다, 못 온다, 연막이다, 셋 중 뭘까

김정은 안 오거나, 못 오거나, 연막전술이거나, 셋 중 하나다. 김정은이 안 온다면, 이유가 뭘까. 미국이 입에 넣어주는 떡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원하고 있는 그것은 ‘부분적인 제재 완화’다. 문 대통령은 그런 북한의 입장을 여러 번 대변하는 발언을 유럽에서 하고 다녔다. 그러다 막판에 문 대통령도 제재 유지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태도가 바뀌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김정은은 안 오는 것일 수 있다.

둘째 김정은이 못 오는 것이라면, 경호와 인변 안전에 대해 100%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최룡해, 리선권, 이용호 같은 충성파들이 끝까지 김정은의 답방을 만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태영호 전 주영 공사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다. 충성파들에게는 서울에서 김정은 탑승 차량을 향한 ‘계란 투척’ 정도가 벌어져도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대형 사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민망한 일이 벌어질까 끝까지 김정은 답방을 만류하고 있을 수 있다.

게다가 KTX 탈선 사고까지 터졌다. 남북 철도 경협이 지금 가장 상징적인 이벤트가 되고 있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김정은 답방의 모양새가 구겨지고 말았다.
셋째는, 연막전술일 가능성이다. 점차 그 가능성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그럴 수는 있다. 내일 모레 서울과 평양에서 깜짝 발표가 있는 것이다. 김정은 서울 답방, 혹은 제주도 직접 방문, 같은, 중국 방문식 발표가 나올 수 있다.


◆ 김정은 숙소는 워커힐, 반얀트리, 총리공관, 셋 중 하나 가능성
김정은 위원장이 오면 어디에 묵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계속 거론된다. 영순위는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지난 2월 평창 올림픽 때 김여정 김영남 김영철 리선권 현송월이 묵었던 호텔이다. 그 이전에도 북한 고위급들은 워커힐에 묵었다. 서울 도심과 떨어져 있고, 반대 시위와 충돌할 일도 적고, 경호에 아주 유리하다. 그런데 워커힐 호텔에 워커힐이 무슨 뜻인가. 워커 장군의 언덕, '워커 힐'인데, 워커 장군은 6.25 때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으며,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다.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한국에서 숨졌다. 바로 워커 장군의 영혼이 깃든 곳이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정은이 직접 머무르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다른 서울 시내 호텔로는 현대건설이 최근 수리를 끝낸 남산의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거론된다. 마이크를 동원한 함성을 차단할 수 있고, 방음시설이 돼 있는 곳이며, 이곳도 경호에 유리하다. 정상급 인사가 종종 머물렀던 신라호텔과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있다. 신라호텔은 도심 중심에 있어서 경호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하얏트 호텔은 미국 대통령이 주로 묵었던 단골집이라는 점에서 북측에 부담이 크다. 국무총리 서울 공관을 빌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국립 현충원 참배 가능성

또 하나,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같은 초대형 이벤트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정상국가화에 공을 들이는 만큼 외국 정상들의 현충원 참배 관례에 따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가는 일정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유족 및 보수층 반대 여론을 진정시키는 효과까지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 답방, ‘찬성(贊成)’과 ‘환영(歡迎)’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올 경우 "경호 안전으로 생기는 불편은 국민이 양해 해달라"고 했다. "국민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해 줄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 비핵화에 한 발짝이라도 진전을 이루기 위해 김정은이 서울에 오는 것을 ‘찬성’하는 것과, 김정은의 답방을 두 손 치켜들고 ‘환영’하는 것은 다르다. 문 대통령은 찬성과 환영을 구별해야 한다.

나라 예산이 통과되고, KTX가 탈선하고, 굵직한 이슈가 한둘이 아닌데, 김정은 답방 문제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모든 정부 부처가 오로지 김정은 답방 때문에 긴장하고 있고, 또 당연히 우리 군도 긴장하고 있다. 온다는 것인지, 안 온다는 것인지, 온다면 언제 온다는 것인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경호를 위해 연막을 치는 게 아니냐", 이런 지적도 나온다. 이미 서울 평양 사이에 답방 날짜가 합의 됐으나 방문 당일까지 마치 아무런 합의도 없는 것처럼 연기를 피우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부인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는 국민이다. 우리 국민은 중국 인민도 아니고 북한 주민도 아니다. 중국과 북한 지도자들이 서로 오갈 때 하는 ‘깜깜이 방문’, 우리에게 그런 관례를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