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에도 세월호 유가족 있었는데 사찰이라니..." 이재수가 남긴 15장짜리 문건

입력 2018.12.10 16:19

아들과 함께 만든 문건, 변호인 등에 전달
수사받는 부대원 지켜보는 ‘사령관의 소회’
"부대원들에 힘 못되는 현실, 자괴감 든다"

2013년 10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참석한 이 전 기무사령관./조선DB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지난 7일 투신 사망한 이재수(60) 전 기무사령관이 유서 이외에도 이 사건과 관련한 입장이 담긴 문건을 작성했던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이 전 사령관의 변호인과 지인 등에 따르면, 이 전 사령관은 지난 7월 세월호 유족 사찰에 대한 국방부 특별수사단 수사가 시작된 이후 지휘관으로서의 입장과 심경, 사건 의혹에 대한 해명 등을 끊임없이 정리해 왔다고 한다. 이 문건은 총 A4용지 15장 분량으로, 지난달 6일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이 사건 관련 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변호인 등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사령관 측 관계자는 "수차례에 걸쳐 자신이 말하는 것을 아들(31)이 받아 쳐서 문건을 만들어 놨다고 들었다"면서 "이 전 사령관은 부하들이 구속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을 위한 변명이 아닌 기무사와 부하들을 위한 해명과 입장을 정리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이 전 사령관 측이 생전에 작성한 문건 중 일부를 입수했다. ‘세월호 관련 수사 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을 달아 두 가지 주제로 쓴 글이다. 이 전 사령관은 글에서 "(세월호 참사라는) 최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대와 부대원을 이렇게까지 질책하는 것은 당시의 사령관으로서 너무 과도한 처사"라고 밝혔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관련 수사 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 부분에서는 유족 사찰 의혹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사고 당시 기무사 활동은) 일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사령관 재임기간에 수행했던 업무 중 가장 힘들고 보람 있었던 업무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다"면서 "국가위기시 불철주야 고생한 부대와 부대원들에게 (수사당국이) 너무나 가혹하게 질책하는 것을 보며 정말 안타깝고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다"고 썼다.

이 전 사령관은 이어 "야전부대 원복조치 등 불이익을 받은 부대원들에게 사령관으로서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스스로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어 오랜 기간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면서 "아직도 마음이 편치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썼다.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라는 부분에는 10가지 이유를 들어 당시 기무사의 활동이 민간사찰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사령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의 부름에 의해 투입된 군의 현장구조요원에게 유가족의 여망을 전달하고, 현장의 상황을 가감 없이 상급기관에 보고함으로써 (정부가) 보다 정확한 정책적 판단을 하는 데 (기무사의 역할이) 있었다"고 썼다.

이 전 사령관은 또 "기무부대 활동은 민간선박 침몰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투입되어 민간인인 희생자 유가족과 투입된 군을 지원하는 부대 고유의 임무와 관련된 것"이라면서 "당시에도 기무부대원 활동에 대해 희생자 유가족 및 언론 등에서 어떠한 문제도 제기된 바 없으며 오히려 적시적절한 조치에 크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주장했다.

7일 오후 8시쯤 고인의 시신이 임시로 안치된 경찰병원에 동기들이 모여서 유족을 기다리고 있다./ 손덕호 기자

다음은 이 전 사령관이 변호인과 지인들에게 남긴 문건의 주요 내용.

세월호 관련 수사개시 이후 개인적 소회
1) 일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사령관 재임기간에 수행했던 업무 중 가장 힘들고 보람 있었던 업무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으나 5년이 되어가는 지금, 국가위기시 불철주야 고생한 부대와 부대원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질책하는 것을 보며 정말 안타깝고 허탈한 생각마저 들었음.

2) 오래전 일이어서 거의 잊고 있었지만 참사발생 직후인 4.19일 부터 CIA 등 미국, 캐나다 정보기관 방문을 위해 계획된 공무 출장도 급거 취소하고 구조 활동 지원에 전념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려볼 때 이런 마음은 더욱 심해지는 것이었음.

3) 또한 이로 인해 야전부대 원복조치 등 불이익을 받은 부대원들에게 사령관으로서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스스로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어 오랜 기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아직도 마음이 편치않은 것이 사실임.

4) 오랜 야전생활을 하다가 사령관으로서 잠시 재직했던 기무사 문제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워지고 본인이 재임 시 있었던 일까지 문제가 제기되니까 전역 이후 군(軍)과는 거의 담을 쌓고 생활해 오다가 이번 일로 인해 과거의 일로 다시 되돌아 가봐야 하는 것도 견디기 힘든 괴로운 일이었음.

5) 무엇보다 정확한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재임 시 참모 및 관련 부대장들에게 사실여부를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한데도 사건 관련 공모 및 증거인멸 의혹 우려 때문에 연락도 여의치 않아 어떤 도움을 받을 곳도 없어 답답하고 안타까웠음.

세월호 민간사찰 의혹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
1) 전대미문의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이후 희생자 구조 등 사고 수습을 위해 민‧관‧군‧경이 투입되어 총력을 다했고 특히, 해난사고에 경험이 많은 해군을 중심으로 육 해 공군 해병대 등 군 병력이 대거 투입되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이때 기무부대원들은 투입된 군과 희생자 유가족 지원을 위해 오랜 기간동안 불철주야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던 시기임.

2) 사고 당시 국가 초유의 대형 재난사고를 맞아 사고 수습을 위해 갈피를 못 잡고 있을때라 이 분야에 정통한 지식과 경험인력, 장비를 갖고 있는 해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으며 따라서 정부 각 부서에서 파견되어 운영된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 구조작업 포함 사고후속조치 토의시 다른 어느 부서보다 국방부 및 해군 담당자들과 유가족들간에 심각한 의견교환과 토의가 많이 이루어졌던 것은 주지의 사실임.

3) 따라서 이때 기무사의 역할은 초유의 국가적 재난사태를 맞아 국가가 보유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는 국가의 부름에 의해 투입된 군의 현장구조요원에게 유가족의 여망을 전달하고 국방부 차원에서 파견된 대표들에게 정책적 대안을 제공하며 이러한 현장의 상황을 가감 없이 상급기관에 보고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정책적 판단을 하는데 있었음.

4) 특히 범대본의 통제를 받는 구조요원들과 졸지에 사고를 당한 희생자 유가족들이 매일 탐색구조방법과 사후 수습대책을 놓고 동일한 공간에서 격렬하게 대립하는 분위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사고 관련 모든 정보는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실시간 공유 될 수밖에 없어서 의도적인 사찰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는 주장은 사실을 왜곡, 또는 확대 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음.

5) 일부에서 제기된, 당시 정부·여당에 비판적 여론이 증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기무사가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불법 사찰행위를 계획, 실행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립될 수 없는 주장임.

6) 기무사는 당시 사고와 관련 현장부대의 편성인원 고려시 백서에 기록된 모든 활동 등을 직접 파악하여 사령부에 보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당시 범대본에 파견된 모든 요원들이 매일 발생하는 상황을 상호 공유하면서 각자의 소속기관에 보고했던 내용과 국가 위기상황에서 사태의 조기수습을 위한 정책적 제언의 일부가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가 됐던 것임.

7) 더구나 사고 발생 이후 투입된 군(軍)의 활동상황과 우리 부대의 지원내용을 세부적으로 기록해 향후 유사한 국가재난 발생시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백서 형태로 남긴 기무사 자체 기록을 문제삼아 사찰 의혹을 제기했는 바, 의도적인 사찰을 시행한 부대라면 이러한 기록을 스스로 남겼을 리 만무한 것임.
△먼저 기무사도 부대원 중에서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가 2명이나 있었던 유가족 당사자였으며,
△사령관인 본인도 세월호와 동일한 코스로 수학여행을 인솔해서 다니는 고교 교사인 아내가 있어서 누구보다 유가족의 아픔을 공감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고,
△특히, 사령관 재임 중 단 한 번도 대통령 독대는 물론이고 어떠한 대면보고도 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도 관심 갖거나 연루될 필요가 없었던 위치에 있었으며,
△또한 대통령 친동생과 고교, 육사 동기라는 이유로 부임 초부터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고, 세월호 사고를 전후해 시사저널 잡지에 소위 대통령 동생에 대한 정윤회 미행설이 보도되고 이어서 민정수석실의 조응천 비서관 등 실무자들이 대거 교체되는 등 매우 어수선했던 시기여서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관계자들과 서먹서먹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터라 더욱 더 이런 역할을 할 이유가 없었음.
△그리고 무엇보다 기무사는 과거부터 민간 사찰에 대한 반복적인 사건 발생과 이에 따른 문책으로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을 누구나 갖고 있어 세월호 사고 당시에도 이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누차 강조하며 활동을 하였음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사찰 의혹은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음.

6) 그리고 이번 일은 MB정부 시절의 정치적 사안에 대한 댓글 행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획득한 자료를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댓글수사에 대한 최종 수사결과 발표 시 언론에 발표하면서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서 법적인 절차면에서도 아쉬운 측면이 많다고 봄.

7) 또한 세월호 사고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해 구성된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는 해수부장관을 본부장으로 하여 투입된 국방부 및 軍병력 외에도 정부 및 지자체 산하 16개 이상의 기관 및 부서가 참가했으며, 국정원, 경찰 등을 포함 모든 정보기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파견된 모든 요원들이 원소속 기관에 당시의 현장 상황을 일일보고 형태로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유독 기무사의 활동만 문제 삼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임.

8) 기무부대가 사찰 의혹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 여건
△ 우선 기무사는 국방부 직할부대로서 장관을 보좌하는 동시에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입장에서 늘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하는 조직임.
△ 또한 기무사 본연의 임무인 軍관련 첩보수집·처리에 있어 활동영역 면에서 군과 민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활동대상 면에서도 군인과 민간인 구분에 애로를 겪는 등 임무수행간 항상 딜레마를 안고 있는 부대임.
△ 더욱이 정보기관 특유의 보고서 형태 및 용어 사용에 대한 자부심 등으로 사찰의 의혹을 야기할 수 있는 소위 「…동향」, 「…동정」 등의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외부인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음.
△ 통상 정보기관의 보고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 부대원들의 수집활동을 통해 보고된 첩보를 토대로 유가치 또는 무가치 여부를 판단, 정보사용권자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최종보고에 포함되는 첩보는 극소수에 불과하나, 보고된 첩보가 모두 정보로 제공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음.

9) 따라서 세월호 사고 당시 희생자 구조와 후속조치와 관련한 기무부대 활동은 민간선박 침몰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투입되어 민간인인 희생자 유가족과 투입된 軍을 지원하는 부대 고유의 임무와 관련된 것이었으며, 당시에도 기무부대원 활동에 대해 희생자 유가족 및 언론 등에서 어떠한 문제도 제기된 바 없으며 오히려 적시적절한 조치에 크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함.

10) 결론적으로 사고 당시 상황은 현장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최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부대와 부대원을 이렇게까지 질책하는 것은 당시의 사령관으로서 너무 과도한 처사라고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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