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화가 오스카 무리조(32)가 한국 무당집에 찾아가 함께 무복을 입고 접신을 위한 신장대까지 흔들어대며 굿판을 벌인 이유는 캔버스 때문이었다. "2년 전 경기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참석차 삼성산에 들렀을 때였다. 거기서 만난 무당과 곧장 영적 교감이 발생해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까맣게 물들인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오방색 실을 꿰매고, 푸닥거리를 했다. 무의식의 기운과 존재감을 깃들게 하는 것, 그것이 내 작업 방식이다."
떠오르는 세계적 스타 작가 무리조가 국내 첫 개인전을 내년 1월 6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연다. 먼저 관람객을 압도하는 건 '검은 캔버스' 시리즈. 흙먼지와 얼룩을 묻힌 새까만 캔버스를 바느질로 기워내 몸피를 키운 일련의 작품은 도축된 짐승의 몸처럼 천장에 걸려 있거나 바닥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캔버스 표피에 동전을 꿰매고, 내부에 구운 점토를 쑤셔넣은 작품도 있다. "공간과의 협업, 무한히 변형 가능한 에너지를 상징한다." '검은 캔버스'는 비매품이지만, 그는 올해 미국 미술 전문 매체 아트넷이 발표한 지난 5년간 경매 낙찰가 합계에서 전 세계 20~30대 작가 중 3위(약 720만달러)를 차지했다.
그를 대표하는 건 무의식의 자동기술에 바탕한 파괴적인 에너지. 2012년 뉴욕 인디펜던트 아트페어에 출품된 그림을 본 미국 거물 컬렉터 돈 루벨이 "바스키아 이후 이런 에너지는 처음"이라고 격찬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번 전시작 10여 점도 마찬가지. "내 작업은 회화라기보다 흔적이고 드로잉이다. 신체를 활성화해 에너지를 소모하는 노동에 가깝다. 처음 미술을 시작했을 때 느낀 불만은 그림이 너무 신체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 덜 소모적이란 점이었다." 붓으로 그리지 않는다. "내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붓은 너무 약하고 흐물거리는 도구다. 그래서 나무막대기 끝에 쇠를 끼운 일종의 작살을 만들었다. 이걸로 캔버스를 휘젓는다."
노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의 가장 중요한 테마다. 1997년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학비를 벌기 위해 3년간 새벽마다 런던의 빌딩 청소부로 일한 적도 있다. "투명 인간 같았지만 화실 조수보다는 내 작업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건물이 높아서 창 밖 경치도 훌륭했고." 그는 2014년 첫 뉴욕 개인전 당시, 부모가 일했던 콜롬비아 과자공장 '콜롬비나'를 재현하고, 고용된 13명의 인부가 일하는 장면을 인터넷 생중계해 이름을 날렸다. "가족의 일터를 뉴욕에 되살려 돈과 노동에 대한 담론을 낳고자 했다." 이민자 출신, 파격과 센세이션을 활용할 줄 아는 이 젊은 작가에게 '21세기 바스키아'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바스키아(1960~1988)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거침없는 낙서를 예술화한 미국의 전설적 거리 화가다. 정작 그는 "바스키아를 만나본 적도 없고 내 에너지와 어디가 비슷한지 모르겠다"며 시큰둥했다.
데뷔 6년 만에 세계 유수의 화랑 데이비드 즈워너 소속 작가,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사랑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해외 초청이 빗발쳐 한 달에 40시간 이상을 비행기에서 보낸다. "내 유명도에는 작품과 무관한 부분도 있다. 2년 전 비행기에서 여권을 찢어 변기에 넣었던 퍼포먼스, 캔버스를 접어서 국제 우편으로 부치는 간편한 운송 방식…." 대한적십자 우표가 그려진 전시작 'Pulsating Frequencies'가 전시장 입구에 걸려 있다. "나는 한국과 별 관련없이 살아왔지만, 그림 속 이 우표 한 장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련성이 제기된다. 재밌지 않나? 그러니 이것은 하나의 촉매다." 이번 개인전 제목이 바로 '촉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