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탈북 외교관·현직 검사… 현장은 이론보다 강렬했다

조선일보
입력 2018.12.08 03:00

[2018 올해의 책 10]

[올해의 책 어떻게 선정했나]

2018년 독서계는 저자의 체험을 피력한 에세이가 강세를 보였다.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쓴 '골든 아워'(흐름출판), 김웅 현직 검사가 쓴 '검사내전'(부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을유문화사) 등이 선정위원의 고른 지지를 받아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소설가·작가, 학자·교수, 출판사 대표·편집자, 출판 평론가·연구자 등 조선일보 Books팀이 위촉한 선정위원 50인이 3권씩 추천했다. 자사(自社) 또는 자신이 저자인 책은 추천에서 제외했다. 선정위원 5명 이상이 추천한 책 7권과 Books팀이 고른 책 3권을 더해 '2018 올해의 책' 10권을 최종 선정했다. 소설은 김금희 장편 '경애의 마음'(창비)이 유일하게 선정 기준(5인 이상 추천)을 넘었다. ㅡBooks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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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기자
메스 대신 펜을 든 이국종… 생사의 최전선을 그리다
골든아워 / 이국종


메스 대신 펜을 든 외과 의사 이국종이 40대 여심(女心)을 잡았다. 10월 출간 이래 1·2권 합쳐 24만부 넘게 팔린 이 책 주독자는 40대 여성이다. 김수진 흐름출판 과장은 "오직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이국종 교수가 '정의로운 남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여성 독자를 사로잡았다"고 했다.

'2018 올해의 책' 선정위원이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책이기도 하다. 박영규 교보문고 대표는 "가벼운 에세이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요즘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라고 평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당해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경험, 사선(死線)을 넘어온 북한군 귀순 병사를 살려낸 에피소드 등을 그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훈을 연상시키는 비장한 문체로 그려냈다.


詩와 소설 그리고 영화로… 당신의 슬픔을 파고드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깊고 따뜻한 성찰의 문장으로 팬덤이 두터운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슬픔'이라는 주제로 묶인 글들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한번 공부해보려는 시도의 결과다. 시와 소설뿐 아니라 영화·노래·사진 등 다양한 작품과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까지 찬찬히 파고든다. 슬픔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던 탓일까. 평론집으로는 이례적으로 출간 석 달여 만에 4만부가 팔렸다.

좋은 소설의 요건이나 비평에 대한 관점도 엿볼 수 있다. 어떤 비평가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가 되고 싶다고 답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인 칭찬이 아닌 "작품의 육체에 가장 깊숙이 새겨지는 문신"처럼 정확한 칭찬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북한은 현대판 노예사회" 고위 탈북자가 쓴 진실
3층 서기실의 암호 / 태영호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이 쓴 이 책은 지난 5월 출간 후 15만부가 팔렸다. 남북 및 미·북 회담이 잇달아 열리면서 북한 사정이 궁금한 독자들이 책을 집어들었다. 최근엔 김정은 서울 답방을 환영하는 단체가 저자를 협박해 책에 대한 관심이 더 올랐다. 태영호씨는 "김정은이 꼭 답방해 자유민주주의를 배우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응수했다.

'3층 서기실'이란 북한의 최고 실세 조직이다. 김정은 집무실이 있는 3층 건물 노동당 중앙청사에서 '최고 존엄'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는다. 모든 정보와 권력을 장악하고 막후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저자는 "북 주민에겐 의사 표시의 자유, 이동의 자유, 생산수단을 보유할 자유 같은 인간의 기본 권리가 없다. 오늘의 북한은 현대판 노예사회"라고 했다.


흑인 차별·'여성'을 넘어선 미셸 오바마의 성장담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출간 전부터 화제였다. 내년 나올 남편 버락 오바마 회고록 선인세까지 합쳐 부부가 6500만달러(약 730억원) 이상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지난달 13일 전 세계 31개 언어로 동시 출간된 이래 500만부 넘게 팔렸다. 국내 판매량은 약 5만부.

시카고 노동자 동네에서 자란 흑인 소녀가 똑똑한 머리와 근면함을 바탕으로 명문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고, 일하던 로펌 인턴으로 온 남자와 사랑에 빠져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차분한 어조로 그려냈다.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두 겹의 마이너리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의 진지한 성실함이 감동을 준다. 책을 추천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성장담의 전범(典範)"이라 평했다.


비판적 언론의 입을 막는 자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하라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대통령제를 낳은 민주주의 나라 미국에서 이런 경고가 나오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두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은 '최근 미국 정치인들은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있다'면서 '미국 사회는 지금 민주주의의 쇠퇴와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고 썼다.

세계적으로 파시즘, 공산주의, 군부 통치 같은 노골적 형태의 독재는 사라지고 있지만 선출된 권력이 포퓰리즘 정책을 펴면서 민주주의 파괴 행태를 보이는 나라가 꽤 있다. 경쟁자를 반(反)국가 세력으로 낙인 찍고, 비판적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일이 벌어진다. 민주적 규범을 파괴하면서 불법이 아니라고 정당화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하는 법도 서술했다.


검사가 정의의 사도라고? 회사원이랑 다를 거 없어요
검사내전 / 김웅


거대 악(惡)이거나 정의의 사도거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사는 대개 극단으로 그려진다. 18년차 검사인 저자는 이런 환상을 깨부순다. "특별한 소명 의식이나 야망은 없고 그저 직업으로서 밥벌이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가 엮어내는 사기꾼·도박꾼과 같은 범죄자의 이야기도 꽤 재밌지만, 이 책의 압권은 검사 김웅의 조직 생활 분투기다.

술자리에 불러내는 차장검사의 지시를 거부한 뒤 "제가 불러도 나오실 거냐?"고 되묻다 '또라이'라는 낙인을 얻거나 굳이 자기 고향에서 체육대회를 연 검사장을 비꼬다가 행사장에서 쫓겨난 일을 냉소적으로 풀어낸다. '검사도 일반 회사원들과 별반 다를 건 없네'라는 생각과 함께 멀리 있을 것만 같던 검사라는 직업이 왠지 모르게 가깝게 느껴진다.


부서진 마음을 위로하는 김금희의 다정한 첫 장편
경애의 마음 / 김금희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로 독자의 사랑을 받은 소설가 김금희의 첫 장편 소설. 1999년 일어난 호프집 화재사건에서 친구를 잃은 경애와 상수는 어른이 되어 '반도미싱'이라는 회사의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다. 삐걱거리던 두 남녀는 서로를 통해 누군가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경애(敬愛)의 마음을 배워간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다정한 문체와 경쾌한 유머로 사회의 아픔과 개인의 부서진 마음을 엮었다. 회사에서 겉도는 팀장 상수가 퇴근 후 '언니'가 되어 운영하는 페이스북 연애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도 읽는 재미를 더했다. '언니'는 연애상담을 보내온 경애에게 충고한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지렁이부터 인간의 뇌까지… 과학의 미스터리를 밝히다
의식의 강 / 올리버 색스


지렁이에게도 인간과 같은 정신세계가 있을까? 다른 사람의 기억이 내 기억이 될 수 있을까? 프로 운동선수와 생활 체육인의 인지 속도는 같을까? 답은 모두 'YES(예).' 2015년 8월 별세한 미국의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과학적 궁금증을 풀어낸 마지막 에세이집이다. 세상을 떠나기 2주 전, 뉴욕타임스 등에 기고했던 글 열 편을 직접 골랐다.

자신의 전문 분야인 의학, 신경과학을 넘어 진화론, 생물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담았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으로 동경했던 과학자 찰스 다윈, 프로이트, 윌리엄 제임스 등의 저서와 연구 업적도 끄집어내지만 어렵지는 않다. 올리버 색스의 유년 경험, 직접 돌봤던 환자들의 이야기처럼 자전적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내 글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 같다.


"학교 건축은 교도소다" 삶을 바꿀 도시에 대하여
어디서 살 것인가 / 유현준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이어 낸 책이다. 5월 출간된 뒤 지금까지 10만부가 팔리는 등 건축 책으로선 드물게 인기를 끌었다. 건축물이 모여 만드는 도시와 그 배경을 음악, TV 프로그램, 영화에 빗대어가며 논한다. 고층건물과 권력의 관계, 한국의 근대화가 일본보다 늦은 이유 등 정치·사회·문화적 현상들을 건축을 통해 설명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앞으로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의견도 적극적으로 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교도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학교 건축의 변화를 재촉하는 부분이다. 건축사(史)나 역사적 사실 등을 설명하는 대목에선 학문적 엄밀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건축에 전혀 관심 없던 이들도 술술 읽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


뇌 과학자의 안내를 따라 인간이란 숲으로 한발짝
열두 발자국 / 정재승


그간 수많은 책과 강연, TV 프로그램에서 흥미롭고 명쾌한 과학적 통찰을 대중에게 전해온 뇌 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신작. 정 교수의 강연 중 가장 열띤 호응을 얻은 12개를 선별해 정리했다. 출간 5개월 만에 20만부 가까이 판매량을 올리며 명불허전 베스트셀러 저자임을 입증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란 영원한 탐구 대상이자 '미지의 숲'이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뇌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의사 결정, 창의성, 놀이, 습관 등을 두고 뇌 과학자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매번 계획은 세우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선택의 순간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결정 장애'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왜 우리가 미신을 믿는지 등 일상에서 겪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끔 한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 50인]

강맑실(사계절 대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일우(창비 대표)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금희(소설가) 김기중(더숲 대표) 김동녕(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 김민섭(작가) 김소영(문학동네 편집국장) 김수진(푸른숲 부사장) 김시덕(서울대 교수) 김은경(문학수첩 대표) 김인호(바다출판사 대표) 김현종(메디치미디어 대표)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남정욱(작가)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선영(21세기북스 대표) 박소령(퍼블리 대표) 박영규(교보문고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송영석(해냄 대표) 신경렬(더난 대표) 신동해(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 편집주간) 안대회(성균관대 교수) 양원석(알에이치코리아 대표) 우석훈(경제학자) 유정연(흐름출판 대표) 윤철호(사회평론 대표) 이기호(소설가) 장강명(소설가) 장동선(뇌과학자) 장석주(시인)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과리(문학평론가) 정민(한양대 교수) 정상준(을유문화사 편집주간)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종주(뿌리와이파리 대표) 정중모(열림원 대표) 조미현(현암사 대표) 조유식(알라딘 대표)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주일우(이음 대표) 최재천(이화여대 교수) 표정훈(출판평론가)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한은형(소설가) 황서현(휴머니스트 편집주간)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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