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빌딩도 쇼핑몰도 맛집 모셔야 뜬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콘텐추"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입력 2018.12.08 03:00

    복합 외식 공간 맛집 유치전

    퀴즈 하나. 디타워, SFC(서울파이낸스센터), 여의도 IFC몰, 스타필드 하남, 판교 현대백화점, 신세계 강남…. 이 건물의 공통점은 뭘까. 동네도 다르고, 업종도 다른데. 정답은 검색 창에 이름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맛집'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뜬다는 사실.

    오피스빌딩은 뜨는 식당 넣어 건물 값 올리고, 백화점은 온라인으로 발길 돌린 고객을 맛집으로 호객한다. 대형 건물로 진격한 맛집들. '오피스=업무 공간' '백화점=쇼핑 공간'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피스가 특명…30대 언니 입맛을 잡아라

    고급 오피스 빌딩이 모여 있는 광화문·종로는 맛집 격전지. 주요 빌딩마다 맛집 편집숍 개념의 '셀렉 다이닝'이 들어가 있다. 톱3로 꼽히는 곳이 디타워, 그랑서울, SFC. 전통적인 도심으로 양복 입은 직장인 이미지부터 떠오르는 동네지만 음식점 구성은 '아재 입맛' 아닌 '30대 언니 입맛'에 맞췄다. 그랑서울 리테일 입점을 담당하는 김동삼 GS건설 부장은 "40~50대 입주사 직원도 주요 고객이지만 빌딩 가치를 높이는 데는 SNS로 정보를 공유하는 30대 여성의 힘이 크다"고 했다. 2014년 오픈한 그랑서울은 최근 리뉴얼 때 함박스테이크집 '경성함바그', 미국 음식 전문점 '미쿡식당' 등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좋은 맛집을 넣었다.

    2016년 문 연 디타워는 공격적으로 유행 맛집을 유치하는 편. 2년 사이 입점 음식점 44개 중 14개가 바뀌었다. 광화문 한복판에 가로수길 일본가정식집 '후와후와', 신촌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펠트커피'처럼 마니아들에게 알려진 숨은 맛집을 새로 입점시켰다. 지하 2층 계단 아래 있는 펠트커피엔 카페 투어에 나선 20대 커피 마니아도 많다. 이 음식점들을 들여온 강석호 대림산업 차장은 "업무용 빌딩의 아케이드는 대개 평일 점심 장사로 끝나는데 20~30대 여성을 겨냥한 맛집을 넣으면서 저녁과 주말에도 찾아오는 건물이 됐다"고 했다.

    2001년 오픈한 SFC는 고급 맛집으로 아케이드를 구성한 첫 사례. 애초 유진관광이 특급호텔로 지었지만 2000년 싱가포르 투자청에서 인수하면서 오피스빌딩으로 용도를 바꿨다. 지하 매장 관리는 영국계 부동산 자산관리 전문업체 세빌스코리아에서 담당하고 있다. 양미아 세빌스 리테일 담당 전무는 "싱가포르 투자청에서 원래 면세점으로 설계한 지하 공간에 당시로선 생소했던 리테일 아케이드를 넣자고 했다"며 "미세스마이, 리틀타이 등 각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매장을 넣었다"고 했다. 한동안 상권이 침체했다가 몇 년 사이 순차적으로 리뉴얼해 젊어졌다. 원년 멤버는 인도음식점 '강가', 중식당 '싱카이'딱 두 곳뿐. 1년 사이 베트남 음식점 '띤띤' '일도씨 닭갈비' 등 가성비 좋은 집들이 문 열면서 중후한 느낌을 벗고 있다.

    맛집, 건물 이미지를 바꾸다

    요즘은 식당가가 건물 이미지 자체를 바꾸는 강력한 촉매다. 준공 23년 만에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4월 오픈한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식당가가 대표적 사례. 1·2층을 터 입점시킨 커피숍 테라로사 덕에 SNS를 달구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테헤란로에 있는 대형 건물 대부분이 지어진 지 20년 넘으면서 노후화되고 경기가 나빠지면서 1층에 입점했던 은행들이 빠져나갔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공간에 인테리어가 강점인 테라로사를 입점시켜 고민을 해결했다"고 말했다. 애매했던 지하는 닭볶음탕집 '유림' 등 식음료 매장 18개를 넣어 확 바꿨다.

    지난달 을지로입구 부영을지빌딩 지하엔 '디스트릭트C'라는 복합 다이닝공간이 들어갔다. 서점 '아크앤북', 장충동 빵집 명가 '태극당' 분점까지 들어가면서 명소로 급부상했다. 디타워 '파워플랜트' 등 2014년부터 '셀렉 다이닝'을 선보인 'OTD 코퍼레이션'의 야심작이다. 손창현 대표는 "이제는 셀렉 다이닝이 맛집만 들이는 개념이 아니라 서점 등 매력적인 콘텐츠를 같이 넣어 구도심을 재생하는 관점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 공간 디자인 전문가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콘텐추(콘텐츠 소유주)'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의 파워가 커졌다"고 했다.

    '우래옥' 잡아라…사활 건 유통업체

    백화점·쇼핑몰 등 유통업체의 맛집 모시기는 더 치열하다. 2012년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식당가 '고메이 494'를 시작으로 2014년 반포 센트럴시티 '파미에 스테이션', 2015년 판교 현대백화점, 2016년 스타필드 하남 오픈을 거치면서 맛집 유치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한 유통업체 F&B(식음료) MD는 "포크, 접시까지 다 사주고 인테리어비 몇 억원을 지원해 모시고 오는 건 예사"라고 했다.

    김갑준 롯데백화점 식품부문 다이닝팀장은 "소문난 지방 노포들을 찾아가면 현 상태로도 사는 데 문제가 없는데 굳이 고생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지 않다며 대부분 '전국구 맛집'을 거부한다"고 했다. "잠실점에 들어간 인천차이나타운 중식당 만다복은 8번쯤 찾아가 한군데만 한다는 조건으로 겨우 승낙받았다"고 했다. 절충안을 찾기도 한다. 대전의 유명 빵집 '성심당'은 수차례 러브콜을 받은 끝에 "대전은 떠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어 2014년 롯데백화점 대전점에 입점했다. 전주의 화심순두부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지역에만 열겠다"는 주인의 뜻에 따라 지난 6월 말 롯데백화점 전주점에 입점했다.

    박소영 현대백화점 식품사업부 바이어는 "강릉 인절미빵 전문점 '빵다방'도 다섯 번 찾아간 끝에 10월 판교점에 입점시켰다"고 했다. 앙꼬절편으로 유명한 대구 돌쇠떡집은 팝업 매장을 열기 위해 인맥을 동원하고 사투리까지 구사하면서 부딪쳐 따냈다고 한다.

    스타필드 식음 매장을 담당하는 정동현 신세계 프라퍼티 과장은 "최근 이슈는 노포(老鋪) 입점"이라며 "그중 최고봉은 평양냉면"이라고 했다. 스타필드 하남점 개장 당시 제1 미션이 평양냉면 명가를 모셔오는 것이었다. 손꼽히는 냉면 명가에 몇 년간 공을 들인 결과 그중 의정부 평양면옥을 들이게 됐다. 하남점 개점 때는 의정부 평양면옥과 일가인 을지면옥, 필동면옥 사장까지 총출동해 세팅 작업을 했다. 신세계 강남점도 수년간 공들여 2년 전 장충동 평양면옥 계열인 분당 평양면옥의 분점을 유치했다.

    냉면집 중 난공불락이 있으니 을지로 우래옥. 정기적으로 가서 회식하며 회유하기도 하고 부사장까지 나서 유치전을 치른 곳도 있다. 한 백화점 MD는 "우래옥, 명동교자, 토속촌은 수십 년째 두드리고 있지만 끄떡 않는다"며 "우래옥 입점시키면 특진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신입사원에게 말할 정도"라고 했다.

    입점 기준은 뭘까. 용산 태국음식점 '콘타이'(2016년 신세계 센텀시티점 첫 입점), 가로수길 떡볶이집 '빌라드스파이시'(2014년 반포 파미에 스테이션 첫 입점) 등을 발굴한 박대업 신세계 부장은 "희소성, 맛, 위생, 주방 풍경을 유념해 본다"고 했다. 그는 "매장 특유의 온도, 습도 등이 음식 맛에 중요하기 때문에 본점의 맛을 100% 그대로 재현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며 "대신 오너 셰프가 직접 세팅 작업을 하고 이후에도 최소 일주일에 한두 번 와서 맛을 체크할 수 있는 조건으로 들여온다"고 했다. 최근엔 마라탕(왕푸징마라탕), 완탕면(청키면가) 등 자장면, 탕수육을 넘어선 덜 알려진 중식이 이슈다.

    주차, 미세먼지, 폭염…복합 외식공간에 빛

    맛집의 몰개성화란 비판이 늘 따르지만 주차 쉽고 찾기 쉽다는 이유로 복합 외식공간을 찾아가는 사람은 점차 늘고 있다. 세빌스코리아 이지선 대리는 "지난여름 폭염 때나 미세 먼지가 심할 때 로드숍보다는 실내 몰이나 아케이드 맛집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 했다.

    '골목의 전쟁' 저자 김영준씨는 "유통업체들은 전자 상거래 때문에 매장 유치가 어려워졌고, 사무용 건물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1층 임대가 어려워졌다. 결국 온라인으로 대체 안 되는 아이템이 들어가야 한다. 온라인보다 저렴하거나, 급하게 사야 하거나, 직접 경험해야 하는 비즈니스 셋 중 하나다. F&B는 마지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매력을 지닌 이들이 30대 여성인데 20대 시절 이태원 경리단길, 성수동, 가로수길 등을 드나들며 미식 소비를 체화한 세대"라며 "자연스럽게 이들이 좋아하는 취향의 맛집이 F&B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 조재원씨는 "지역 맛집이 특정한 공간에서 떨어져 전혀 다른 맥락으로 들어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라며 "벽화가 원래 놓였던 공간에서 떼어져 화이트 큐브로 들어가 철저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맛집 사냥꾼의 pick―쇼핑몰·오피스 식당가 맛집

    오피스 빌딩이나 쇼핑 공간의 음식점 입점을 책임지는 F&B(식음료) MD는 누구보다 발품 많이 파는 맛집 사냥꾼. 베테랑 F&B MD 10명에게 쇼핑몰·백화점 식당가, 오피스 아케이드에 입점한 최고의 맛집을 물었다. 대부분 원조 맛집에서 직영하는 분점.

    ※설문에 참여하신 분

    강석호(대림산업 건축개발사업팀 차장)
    김갑준(롯데백화점 식품부문 다이닝팀장)
    김동삼(GS건설 상업시설 PM팀 부장)
    문대건(인버스 에프앤비 차장)
    박대업(신세계 식품담당 F&B팀 부장)
    박소영(현대백화점 식품사업부 바이어)
    손창현(OTD코퍼레이션 대표)
    양미아(세빌스 리테일 담당 전무)
    박영민(갤러리아 F&B 바이어)
    정동현(신세계 프라퍼티 리징2팀 과장)

    ☞ [맛집 사냥꾼의 pick] 쇼핑몰·오피스 식당가 맛집 확대 이미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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