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싸우고 있으니..." 두 전직 대법관 영장기각에 검찰 수사 제동

입력 2018.12.07 14:11 | 수정 2018.12.07 14:19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구속영장 기각 직후인 7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뉴시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7일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이날 오전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고영한(63·11기)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양승태(70·2기) 전 대법원장 을 겨냥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 기각 직후 수사팀 관계자는 "우리는 심판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직권남용, 검찰의 무리수였나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에게 적용한 핵심 범죄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옛 통진당 의원 지위확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등 각종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 헌법재판소에 파견한 판사에게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부산 스폰서 판사' 사건 당시 부산고법원장에게 압력을 넣어 의혹을 무마한 혐의와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수사 정보를 빼내고 영장 재판의 방향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전직 대법관은 또 법원행정처가 주도한 상고법원 추진에 반대하는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 위해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을 만들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타인에게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 처벌되는 범죄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돼 있다. 검찰은 이들이 앞서 구속된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상급자로서, 지시나 보고를 받으며 부당하게 권한을 행사했다고 봤다.

하지만 검찰의 법 적용이 애초에 무리였다는 지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 이후 법리적으로 논쟁이 적지 않은 조항이고, 인사와 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으로서의 권한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 사안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구속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사유로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주 우려가 있을 때로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등도 고려 대상이다. 검찰의 소환에 서너차례 응하고 압수수색도 당한 전직 대법관들이 이 같은 요건에 맞느냐는 것이다.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이 수사에 임하는 태도와 현재까지 수사 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비슷한 이유를 제시했다.

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각자 차량을 이용해 귀가하고 있다. /뉴시스
◇"反헌법적 중범죄"라는 檢, 강력 반발
검찰은 법원의 결정에 거세게 반발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직적인 범죄 행위'로 보고 있다. 법원은 그러나 이 같은 검찰 논리에 ‘영장 기각’이라는 답을 내놓으면서 ‘윗선’의 책임은 제한적이라고 답했다. 검찰은 하급자(임 전 차장)가 구속된 상황에서 직속상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며 "법원이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했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자신들(법원)이 작성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을 팩트로 공소장이나 영장에 넣어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깨버린다"고 했다. 그는 "두 전직 대법관들은 이른바 ‘법 기술자’다. ‘잘못했다’는 한 마디면 될 문제도 ‘잘못이란 무엇인가’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며 "법원이 이들이 펼치는 논리를 받아주는 것이 더 문제"라고 했다. 또 다른 한 관계자는 "골을 넣어도(혐의를 입증해도) 그것이 골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까지 그들 스스로가 마음대로 정의내리고 있다"며 "(검찰이) 심판과 싸우고 있는 꼴이나 뭐가 다르냐"고 했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 기각사유를 상세하게 분석하는 등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수사 일정을 재조정하는 것도 불가피해졌다. 두 전직 대법관은 임 전 차장과 양 전 대법원장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다. 하지만 두 전직 대법관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서 보강 수사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

‘기소 이후’가 더 큰 문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수사가 양 전 대법원장을 끝으로 마무리 수순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선배·동료 법관’들을 심리하게 될 재판부의 불편부당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 ‘정점’ 수사를 목전에 두고 엎어졌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기소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재경지검 부장검사는 "지난 2년간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종국에는 유야무야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검사들도 많다"고 했다.

검찰은 관련 증거를 추가로 정리한 뒤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부담도 만만찮다. 재청구한 영장이 재차 기각될 경우 '무리한 수사'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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