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29일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에서는 올해 수시 전형 1차 서류를 통과한 수험생 1700여 명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2차 면접을 봤다. 카이스트는 매년 신입생 750명 가운데 690명을 수시로 뽑는다. 서류와 면접을 7대3으로 반영한다.
카이스트는 면접 질문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주어진 수학·과학·영어 문제를 35분간 읽고 답변을 준비한 다음 20분간 교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진짜 공부 영재만 풀 수 있다"는 얘기도 많다. 그런데 올해부터 이런 카이스트 면접 방식이 달라졌다. '공부만 잘하는 범생이'가 아니라 '남과 협력하고 도전정신·배려심 있는 학생'을 뽑기 위해서다.
◇국내 첫 '동문 입학사정관' 도입
우선, 면접 시간이 약 두 배가 됐다. 작년까진 면접 시간 20분간 거의 수학·과학·영어 지식만 물었다. 올해부턴 지식을 묻는 면접에다 인성(人性)을 보기 위한 '학업 외 역량' 면접 15분이 추가됐다.
종전엔 카이스트 교수들만 면접했지만, 새로 도입된 '학업 외 역량'에 특별한 면접관을 투입했다. 일부 전형(학교장 추천·고른 기회)에 카이스트를 졸업한 동문들이 '동문 명예 입학사정관'으로 참여해 교수와 함께 2인 1조로 면접을 본 것이다. 국내에서 동문들이 입시 면접관으로 참여해 점수를 매기는 것은 카이스트가 처음이다. 미국 대학은 동문들이 그 지역 입학 지원자들을 인터뷰하게 하고 그 결과를 입시에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카이스트 측은 "카이스트 출신들이 매우 똑똑하긴 한데, 남과 어울려 협력하는 부분이 부족하다"면서 "사회 경험이 풍부한 동문들이야말로 교수들이 못 보는 다양한 인성과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문 입학사정관 "생각하는 힘 보겠다"
카이스트는 지난 5월 50세 이상 동문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내 "후배를 선발하는 명예 입학사정관에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1976년 2회 석사 졸업생부터 1994년 19회 졸업생까지 33명이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대기업 임원부터 공기업 사장, 국립 연구소장 등 경력이 화려한 동문들이다.
이들은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간 온라인으로 입시 제도와 입학 전형에 대해 공부했다. 지난달 22일엔 카이스트에 모여 임명장을 받고 연수도 받았다.
이날 수십 년 만에 모교를 방문한 동문들은 "평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대기업 연구소에서 37년간 근무한 A씨는 "기업에서 일하면서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대학 교육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교수님들은 학업 능력을 보겠지만, 우리는 산업계에서 진짜 필요한 '일하는 자세' '생각하는 힘'을 보겠다"고 했다.
20년 전 창업해 매출 수백억대 기업을 일군 B씨는 "동문들은 신입 사원 수천 명을 면접한 '면접의 달인'이기 때문에 다양한 잠재력을 볼 수 있고, 후배 뽑는 일이라 더 애정을 쏟는다"고 했다. 동문 사정관들은 공정성을 위해 외부에 인적 사항을 드러내지 않았다. '친·인척, 지인 등 관계인이 올해 카이스트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서약서도 썼다.
카이스트 신하용 입학처장은 "올해 선발 방법 변화로 성적은 낮더라도 우리 인재상(창의·도전·배려)에 맞는 학생이 많이 합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올해 동문 사정관이 뽑은 학생들의 대학 생활을 본 뒤 이를 다른 전형에도 퍼뜨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