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사회] 서울대 공대·자연대 대학원이 무너진다

조선일보
  • 박상욱 서울대 교수·과학정책
    입력 2018.12.07 03:12

    개교 후 처음 이공계 대학원 석사·박사·통합 모두 定員 미달
    인건비만 重視 분위기 판쳐… 연구 몰입 위한 특단 조치 필요

    박상욱 서울대 교수·과학정책
    박상욱 서울대 교수·과학정책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 총액은 69조4000억원(2016년)으로 세계 5위 규모다. 이 중 9.1%인 6조3000억원이 대학에서 쓰인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출로만 보면 약 23%가 대학에 투입된다. 내년도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학은 이처럼 우리나라 국가 혁신 시스템에서 연구개발(R&D)의 중요 주체다. 대학이 지식의 전파·재생산을 넘어 지식의 생산과 혁신의 창출에까지 나서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기초연구 수행과 연구 인력 양성에서도 독보적 역할을 한다. 특히 대학원생은 핵심적인 연구 수행자이다. 그래서 이공계 대학원이 흔들리면 대학 연구가, 나아가 국가 연구개발 전체가 휘청거린다.

    안타깝게도 국내 이공계 대학원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취업난 탓에 이공계 학부가 선호되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라진 양 착각에 빠진 사이, 진짜 위험한 '이공계 대학원 기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2018학년도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 대학원 석사, 박사, 석·박사 통합 과정이 모두 미달(未達)된 게 이를 보여준다. 최근 수년간 경쟁률이 내리막이었지만 '동시 미달'은 서울대 개교 후 처음 있는 사태다. 기초과학을 하는 자연대의 박사과정 경쟁률은 0.58대1에 그쳤고 본교 학부 졸업생이 대학원을 외면한 지는 오래됐다. 그나마 대학원생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 좋고 전문연구요원 병역 대체복무가 어느 정도 보장된 전국 5개 과기원에만 지원자가 있다. 지역 대학은 중국·베트남·몽골 유학생 한 명을 아쉬워한다.

    대학 내 연구 문화도 무너지고 있다.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를 선택할 때, 예전에는 연구 분야의 관심과 전망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건비'가 가장 중요하고 출퇴근 시간 등 '근무 여건'을 따진다. 대학원 입학을 상담한다며 찾아온 학생들은 대부분 "얼마 주실 건데요?"라고 묻는다. 최근에는 교수 비교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교수를 5개 지표로 평가하는데, 그중 핵심은 '실질 인건비'이다. 소위 '갑질 교수'로 불리지 않으려면 '인건비'가 후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 확산에는 제도 탓도 있다. 정부가 연구비를 용역 대금으로 여기니 학생들이 스스로를 용역 노동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제(師弟) 관계가 아닌 노사(勞使) 관계가 되고 있다. 대학 연구의 역사가 긴 선진국에서도 이런 현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선망하는 직장인 정부출연연구소에서는 연구직의 특수성을 간과한 일방통행식 정규직 전환이 남긴 상처가 깊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묵묵히 일해 실력과 실적으로 인정받는 과학기술계의 신뢰 구조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로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이공계 대학원의 몰락에는 조선해양·자동차 등 기간제조업의 실적 저조와 탈(脫)원전으로 혼란스러운 에너지 산업 등 산업계 전반의 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관리와 효율만 강조하는 기존의 R&D에서 벗어나 연구자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연구 몰입 환경을 조성하는 '연구자 중심 R&D'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대학원생 연구원에게 기본 지원금을 제공하고,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도 정책 사업 기반에서 묶음 예산(블록펀딩)으로 바꾸어야 한다. 박사과정 수료 후 3년간 연구 현장에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존속·확대해야 한다. 현 정부는 기초연구 강화와 청년 과학기술인 육성을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피부에 와닿는 지원책 하나 나온 게 없다. 당장 최악의 위기에 빠진 '이공계 대학원 살리기'부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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