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모으고, 사기치고...청소년 '범죄 통로'된 오픈채팅방

입력 2018.12.06 16:29

"오카방(오픈채팅 카카오톡방) 사기에 당했어요."

지난달 30일 오후, 김모(19)양이 울먹이며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았다. 올해 수능을 치른 김양은 명품 핸드백을 사고 싶었다. 때 마침 친척들한테 받은 용돈이 있었다. 김양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오픈채팅 검색창에 '중고 핸드백'을 검색해 익명의 판매자를 접촉했다.

판매자는 김양이 원하던 ‘마이클 코어스’ 브랜드의 핸드백을 시가(時價)보다 싸게 팔고 있었다. 물건이 몇 개 남지 않았다는 판매자의 재촉에 김양은 애가 탔다. 전송 받은 핸드백 실물 사진 한 장만 믿고 카카오 송금 기능을 이용해 13만원을 보냈다.

"돈이 입금됐다는 안내 메시지가 뜨자마자 채팅방이 사라졌어요. 익명 채팅방이라서 판매자에 대한 정보도 남은 게 없었어요." 김양의 하소연이다.

◇청소년 '범죄 통로'된 오픈채팅방
익명으로 대화할 수 있는 '오픈 채팅방’이 범죄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오픈 채팅은 대화방 개설자 참여자가 모두 익명이다. 주제 역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이 같은 철저한 익명성 보장은 갑질·'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반대로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범죄를 끌어당기는 역(逆)기능도 생기는 것이다.

모바일 메신저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오픈채팅 범죄’의 주요 타깃이다. 경찰 관계자는 "기성세대와 달리 익명 거래나 서비스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10대들이 속이기 쉬운 먹잇감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처럼 ‘단순 사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오픈채팅으로 조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오픈채팅 검색창에 ‘고액 알바’ ‘간단 알바’라고 적으면, 구인(求人) 게시물 수십 개가 한꺼번에 뜬다. ‘남녀 가능한 단기 아르바이트’ ‘일당 최하 50만원’ 같은 제목의 채팅방이다.

카카오 오픈채팅이 범죄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 /조선일보DB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조직은 오픈채팅으로 고용한 청소년들에게 돈을 찾는 ‘인출책’이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는 ‘수금책’을 맡긴다. 모두 검거될 위험이 높은 역할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기사건 가해자로 연루된 미성년자는 2011년 4910명에서 2016년 7435명으로 크게 늘었다.

청소년들이 성범죄에서 쉽게 노출된다. 별도의 성인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오픈채팅방에는 입장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매매 피해자 가운데 59%가 채팅 앱을 통해 처음 성매매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를 조장하는 모바일 앱 317개 가운데 본인 인증 등을 요구하지 않는 종류가 278개(87.7%)나 됐다. 단순히 별명과 성별, 나이를 설정하면 바로 채팅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오픈채팅은 인증 없이 진행돼 추적이 어렵고 복원도 어려워 증거물 확보가 쉽지 않다"며 "최소한의 본인 인증을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업체 측에 이를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범죄도구 거래, 위조 주민증 거래도
범죄도구를 구하는 창구에도 오픈채팅이 활용된다. 범죄자들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할 목적으로 쓰는 대포폰(차명폰)도 손쉽게 거래된다.

기자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대포폰 구매를 시도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대포’로 검색하자, 차명폰 판매를 원하는 업자들이 주르륵 나왔다. 대포폰 판매업자 가운데 하나는 "(대포)폰은 3만원, 유심칩은 13만원"이라면서 흥정을 시도했다. 유심칩 거래는 엄연한 불법으로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미성년자들이 술·담배 구매용도로 위조 주민등록증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오픈채팅방에서 위조 주민등록증 시가는 장 당 5만원 안팎이었다.

오픈채팅방에서 위조 주민등록증이 장당 4만~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한동희 기자
메신저 업체들은 뾰족한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사용자나 채팅방 이름에 ‘조건만남’ ‘성매매’ 등 ‘금칙어’를 설정하거나 ‘신고’ 기능을 넣었지만, 채팅 내용까지는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300여명의 모니터링 인력이 24시간 내내 신고 정보를 기반으로 유해한 콘텐츠 유통을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익명성이 핵심인 서비스이다 보니 대화 내용을 전부 제재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송옥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우리나라에서 채팅앱에 대한 종합적 통계와 감시·감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유관기관과 협의를 통해 아이들로부터 유해한 채팅앱을 차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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