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496] 이입도원 (移入桃源)

조선일보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8.12.06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송나라 때 정위(丁謂)가 "아홉 겹 대궐 문이 활짝 열리니, 마침내 팔 저으며 들어가리라(天門九重開, 終當掉臂入)"라는 시를 지었다. 왕우칭(王禹 )이 말했다. "나라 문에 들어갈 때는 몸을 숙이고 들어가야 하거늘, 대궐 문의 안쪽을 어찌 팔뚝을 휘두르며 들어간단 말인가? 이 사람은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충성스럽지 못할 것이다." 정위는 당당한 포부로 호기롭게 들어간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지만, 무심코 한 말 속에 평소의 본심이 드러났다. 그는 재상에 올랐으나 간신으로 이름을 남겼다. '언행휘찬(言行彙纂)'에 보인다.

    지사(知事) 벼슬을 지낸 김원이 춘천에 살 때 일이다. 살림이 가난해 세금을 날짜에 맞춰 낼 형편이 못 되었다. 춘천부사에게 글을 올려 납기를 늦춰달라고 청했다. 글을 본 부사가 장난으로 답글을 써 보냈다. "나라에 내야 할 세금을 못 내겠거든, 무릉도원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若欲不納王稅, 移入桃源可也)." '파적(破寂)'에 나온다.

    한나라 때 어부는 물 위로 떠내려 온 복사꽃을 따라 무릉도원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진나라의 학정(虐政)을 피해 숨어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들은 진나라가 오래전에 망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후 무릉도원은 유토피아의 한 상징이 되었다.

    부사의 답장을 본 김원은 분노했다. 그는 다시 종의 이름을 빌려서 소장을 올렸다. 거기에 이렇게 썼다. "지금은 태평성대라 격양가(擊壤歌)의 가락이 있으니, 진나라 백성처럼 포학한 정사를 피해 달아날 뜻이 없는데, 성명(聖明)한 세상에서 무릉도원의 이야기가 어찌하여 나온단 말인가?"

    "부사는 지금이 진시황의 학정에 못 견딘 백성들이 무릉도원을 찾아들던 그 시절과 같다는 얘기인가?" 하고 힐난한 것이다. 자신의 망발을 깨달은 부사가 정신이 번쩍 들어 직접 김원의 집까지 찾아가서 정식으로 사과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사람의 말이다. 무심코 하는 말에 그 사람의 값과 무게가 드러난다. 위치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언행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내키는 대로 말하고, 생각 없이 얘기하면 자신이 욕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까지 망신스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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