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설익은 답방'은 비핵화 촉진 못 한다

조선일보
  • 김창균 논설주간
    입력 2018.12.06 03:17

    北은 답방을 對南 시혜로 보고 그만한 대가와 맞바꾸려 할 것
    비핵화 않고 버티겠다는 金, 무리하게 오게 만들려면
    "제재 해제" 대변하면서 비핵화에 부담만 주게 될 뿐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문재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까지 날아가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난 건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답방이 이뤄져도 괜찮다'는 양해를 얻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이 뉴질랜드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진 건 "김정은 답방을 온 국민이 쌍수를 들고 환영해 줄 것으로 믿는다"는 국내용 메시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결과적으로 이번 순방 주제는 '김정은 답방길 다지기'였다.

    정부가 12월 중순 답방을 1차 제안했을 때 북측은 "어렵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미국의 견제'와 '국내 보수층의 거부감'이라는 두 가지 걸림돌을 손보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연내 답방을 재촉구한 것이다. 상대방이 일단 거절한 회담 일정을 다시, 그것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외교 관례에 벗어난다. "제발 와 달라"는 구걸이거나 반대로 "이래도 안 올 거냐"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전자 눈에는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답방을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비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율이 50% 선까지 내려앉았다. 일부 조사에서는 40%대 숫자까지 나온다. 40% 지지율은 레임덕 입구에 해당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딱 1년 전인 2016년 3월 지지율이 47%였다. 문재인 정부가 펼치는 경제정책은 파탄 상황에 빠져 있다. 잘못 짠 정책 틀을 지금처럼 고집하는 한 점점 더 나빠질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지율을 반등시킬 카드가 좀처럼 안 보인다. 9월 말 평양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 지지율이 20%포인트나 급등했던 '김정은 효과'가 다시 아쉬워진다. 청와대는 '이벤트의 신(神)'이라는 탁현민 비서관을 "첫눈이 오면 내보내겠다"고 했는데 진짜 첫눈이 오자 "서울 답방 끝나고 보자"며 다시 주저앉혔다. 북측은 남측 대통령의 지지율을 자기 일처럼 들여다보며 챙긴다. 그래서 거듭되는 답방 요청을 남측에서 발신한 구조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SOS에 응할 것인가.

    1차 북핵 위기를 제네바 기본 합의로 봉합했던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는 북한과 하는 협상을 '매번 동전을 넣어야 물건이 나오는 자동판매기'에 비유했다. 북한은 뭔가 대가를 받지 않고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무성 부상과 벌이는 협상이 이럴진대 북한의 '최고 존엄'을 움직이게 하려면 말할 것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 자체는 앞서 2000년, 2007년 두 차례 있었지만 북한 최고 지도자가 서울 한복판에 나타나는 것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예상되는 파장만큼이나 흥행성이 보장된다. 앞으로도 김정은의 답방을 뛰어넘는 남북 이벤트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김정은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답방을 약속하자 김정은의 측근들은 "우리는 모두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지도자 혼자서 결단하셨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북측 역시 김정은 답방을 대단한 대남 시혜로 인식하면서 생색을 낸 것이다.

    김정은이 서울에 온다면 올 들어 문 대통령과 세 차례 만나면서 쌓은 '형제애'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번 쓰고 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답방 카드인 만큼 걸맞은 대가와 맞바꾸려 할 것이다. 예전 햇볕정부 같으면 남북협력기금 우물에서 아낌없이 퍼주겠지만 지금은 대북 제재 그물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대신 기업들의 등을 떠밀려 해도 미국의 서슬 퍼런 '세컨더리 보이콧'에 막혀있다. 이런 상황에선 미국의 비핵화 압박을 앞장서 막아주는 방패 역할, 그러면서 제재 완화 필요성을 외쳐주는 대변인 역할 정도밖에 없다. 실제 문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해왔다. 지난 유럽 순방 때 문 대통령이 메아리 없는 대북 제재 해제를 외쳤던 건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다"는 대북(對北) 진정성을 보이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북을 일방적으로 감싸고 도는 문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비핵화에 부담을 준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김정은의 답방은 비핵화가 가시화됐을 때, 그래서 대북 제재 해제 여건이 무르익고 남북 경협의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을 때 두 정상이 그 결실을 함께 기뻐하는 자리로 마련하는 것이 제대로 된 모양새다. 그러나 김정은은 여전히 비핵화를 않고 버텨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김정은에게 답방을 재촉하려면 '비핵화를 않고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답방은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설익은 답방' 밀어붙이기는 비핵화를 촉진하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태양 아래 공짜는 없다. 북한과 하는 거래는 더욱이나 그렇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