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과 3년을 싸우고 '불수능'도 뛰어넘은 소년

조선일보
  • 주희연 기자
    입력 2018.12.05 03:01

    서울 선덕고 김지명군 수능 만점… 좌절을 모르는 추어탕집 아들

    서울 강북구 조그만 추어탕집 외아들이 올해 수능에서 만점을 맞았다.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로 태어나 열두 살 때부터 3년간 백혈병을 앓고 일어선 소년이자 올해 전국 재학생 수능 만점자 네 명 중 한 명이다. 서울 도봉구 선덕고 3학년 김지명(18)군은 4일 오전 머리를 긁으며 "수능시험 본 날보다 최종 통지표 기다리는 지금이 더 떨린다"고 했다. 김군은 이날 오후 만점으로 최종 확인됐다.

    ◇추어탕집 외아들이 일 냈다

    김군은 강북구 인수동 토박이다. 어머니가 선덕고 10분 거리에서 10년 넘게 추어탕 가게를 했다. 다세대주택과 아파트, 상가가 뒤섞인 서민 동네에서 자라나 초등학교 때 1년간 영어·수학학원 다닌 걸 빼면 학원과 담쌓고 인터넷 강의 들으며 공부했다. '불수능'이라는 이번 수능에서 국·영·수·한국사·화학Ⅰ·생물Ⅱ 등 전 영역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올해 수능 전 영역 만점을 받은 서울 선덕고 김지명(18)군이 4일 학교 도서관 책꽂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올해 수능 전 영역 만점을 받은 서울 선덕고 김지명(18)군이 4일 학교 도서관 책꽂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김군은“도서관은 시험 끝나고 해리포터 읽으러 오는 곳인데… 익숙지가 않다”며 웃었다. /장련성 객원기자
    이날 선덕고 도서관에서 만난 김군은 스마트폰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10대였다. 그는 "거창한 전략 같은 거 없었다"고 했다. "그냥 시간 날 때마다 공부했다. 자습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배운 내용을 '내 것'으로 체화시키려 했다"고 했다.

    시험 때는 공부에 몰두하고 시험 끝나면 바로 해리포터 전집을 몰아서 읽곤 했다. 또래 친구 스마트폰을 빌려 몰래 게임을 하다가 엄마에게 들켜 뺏긴 적도 있다. "엄마가 스마트폰을 안 사줬어요."

    열두 살에 암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와 함께 걸어가다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차 엄마 걸음을 못 따라갔다. 같은 일이 반복돼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급성임파구성백혈병'이라고 했다. 김군은 "그때 저는 백혈병이 무슨 병인지 정확히 몰랐다"면서 "그런데도 어감만으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처음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이후 중학교 3년 내내 병과 싸웠다. 학교 간 날보다 병원 간 날이 많았던 해도 있다. 항암 치료하느라 주기적으로 머리가 빠졌다. 늘 토할 듯 메스꺼웠다. 척추에 대형 바늘을 찔러넣는 골수 검사가 특히 고통스러웠다. 아프면 누워 있다 괜찮으면 공부했다. 김군은 "사실 암보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공부에는 더 방해가 많이 되더라"고 했다. "눈 가려운 게 백혈병보다 더 힘들더라고요. 제가 성격이 원래 이것저것 생각에 빠지거나 고민을 깊게 하지 않아요."

    ◇"공부? 혼자 하는 게 편했어요"

    김군은 치료받으며 공부해 자사고인 선덕고에 입학했다. 면역 수치가 떨어진 아들을 위해 엄마는 남들이 그냥 먹는 과일도 일일이 물에 씻어 삶아 먹였다. 김군 어머니는 "맛이 없을 텐데 그마저 잘 먹어 더 안쓰러웠다"고 했다.

    서울 선덕고 3학년 김지명군이 4일 오전 학교 도서관 책꽂이 사이에 앉아 씩 웃고 있다.
    서울 선덕고 3학년 김지명군이 4일 오전 학교 도서관 책꽂이 사이에 앉아 씩 웃고 있다. 김군은 백혈병을 딛고‘불수능’이라는 이번 수능 전 영역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전국 재학생 만점자 4명 중 한 명이다. /장련성 객원기자
    고등학교 1학년 3월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고교 입시 준비할 때나 이후 수능 준비할 때나 "가장 고마운 사람이 엄마"라고 했다. 어머니가 공부에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프린트하고, 인터넷 강의도 일일이 '맛보기 무료 강좌'를 보고 권해줬다. 김군은 고교 3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김군은 고교 3년 내내 오전 8시에 등교해 오후 10시 30분에 집에 왔다. 하루 15시간을 학교에서 보냈고, 수능 일주일 전까지도 오후 9시까지 남아 야간 자율 학습을 했다. 야자 때는 주로 학교 수업을 복습하고, 인터넷 강의는 집에 가서 들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좋을 때 공부한 내용을 내 것으로 체화하기 위해서였다. "남들은 유명 학원 찾아다니는데, 불안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공부는 혼자 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혹시 천재가 아니냐"고 했더니 "저, 아이큐(IQ) 110인데요" 했다. "제가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천재는 절대 아닌 것 같아요."

    늘 '톱'을 달리진 못했다. 2학년 1학기 미적분 과목에서 3등급이 나오고, 2학기 영어에서 3등급이 나왔다. 금방 털어버렸다. "내신 포기하고 정시에 몰두하려다 그냥 둘다 노력하자고 생각했어요." 김군의 최종 내신은 전교 3등이다.

    ◇"지명이의 강점은 순진한 성격"

    담임 최정호 교사는 "지명이는 학교 수업 위주로 공부하고, 모르는 것은 꼭 해결하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라면서 "공부에 재능도 있지만, 순진한 성격도 중요한 자질"이라고 했다.

    이날 평가원은 올해 수능 만점자가 김군을 포함해 재학생 4명, 졸업생 5명이라고 밝혔다. 시험이 어려워 만점자가 작년(15명)보다 적었다.

    수능 당일 김군은 길을 헤매느라 시험 끝난 지 2시간 지나 집에 왔다. 와보니 어머니가 "시험 좀 못 보면 어때? 네가 이렇게 건강한데…"하고 다짜고짜 펑펑 울었다. 아들이 혹시라도 시험을 망쳐 어딘가 배회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김군이 "엄마는 제가 백혈병 진단받았을 때도 울고, 항암 치료받을 때도 택시에서 울었다"면서 "수능 날까지 엄마가 그렇게 걱정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날 밤 모자는 '수능 끝나면 같이 술 마시자'는 약속대로 맥주 두 병을 나눠 마셨다. 김군은 "맛있을 줄 알았는데…. 오줌 맛인데 왜 먹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군을 3년간 지켜본 선덕고 교장·교감과 담임교사가 5일 난 화분 사 들고 김군 어머니가 하는 추어탕집에 축하 인사 가기로 했다. 김군은 올해 정시에서 서울대 의대(가군)에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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