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자 인종 화합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1918~2013)가 타계한 날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사학자인 월리스 디레이니 교수는 그를 기리며 "인류 역사상 죽은 후 그리워할 첫 정치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정말 탁견이었다. 갈래갈래 분열된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그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가 추앙하는 만델라의 '도덕적 권위'는 그가 27년간 옥고를 치르고, 노벨 평화상을 받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다. 고난을 딛고 당선되거나 노벨상을 받은 지도자들은 지구상에 많다. 만델라가 특별한 것은 오히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보여준 용서와 화합의 리더십이 세계에 준 울림이 크기 때문이다.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로 오랜 기간 핍박을 받은 흑인들은 마침내 흑인 세상이 도래하자 큰 변화를 원했다. 백인들을 몰아내고 응징하고 복수하는 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만델라는 자신의 지지층인 흑인들을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남아공을 흑인 세상으로 바꾼다는) 그런 생각은 이기적인 것이다. 우리의 관대함과 자제력으로 백인들을 놀라게 하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 말을 접한 감동을 '놀람, 놀람, 놀람(surprise, surprise, surprise)'이라는 제목의 칼럼에 썼다. 만델라가 죽은 후 전 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일자 프리드먼은 또 다른 칼럼에서 그의 특별함을 이렇게 분석했다. "지지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며 나라를 이끄는 것은 쉽다. 뭔가 나눠주며 이끄는 것도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사회 전체를 향해 더 크고 어려운 일을 하자고 하는 일이다. 특히 자신의 지지층에게 어려운 일을 하자고 도전하는 일이다. 도덕적 권위는 그럴 때 생성되는 것이다."
천막과 휘장과 확성기와 만성 교통 체증으로 누더기로 변해가는 도심을 지나며 평화는 한반도가 아니라 남쪽에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부는 모든 가난하고 아픈 것을 끌어안겠다며 '포용 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데, 아무도 포용받지 못하는 사회의 아우성이 거리에 넘친다. 그 누구도 어떤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극심한 이해사회에서 '상생'이라고 덧칠된 이기심과 정부 주도의 분배가 시장과 자유의 기둥을 흔든다. 기둥이 무너지면 집도 무너진다. 그런데 집이야 무너지든 말든 창문을 크게 내달라, 방을 더 만들어 달라 요구가 빗발친다. 집이 허물어지면 창문이 무슨 소용일까.
한때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웠다가 '포용 정부'로 간판만 바꾼 정부는 날아드는 청구서 앞의 빚쟁이처럼 작아져 있다. 다문화 국가에서 흔히 쓰이는 '포용(inclusive)'이라는 말은 자기와 다른 것을 품는 너그러운 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다름'을 끌어안기는커녕 지지층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모습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애스모글루와 로빈슨은 "포용적 정치의 기초 위에 포용적 경제를 실현한 나라는 번영했고, 그 반대로 간 나라는 실패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포용 국가'의 개념적 기초를 다지기 위해 성경륭 교수 등이 집필한 책에도 인용된 구절이다. 좋은 뜻으로 노력하는 정부가 감동 대신 갈등을 생성하는 이유는 아마도 포용적 경제의 실천에 몰두한 나머지 '포용적 정치의 기초 위에'라는 구절을 간과한 때문이 아닐까. 화합을 위한 희생과 절제 없이 경제적 포용만 외치는 것은 그들만의 분배 정책에 붙인 그럴듯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분배는 아무리 해도 언제나 배고프다(still hungry).
만델라는 27년간 옥고를 치르고도 백인들을 용서했는데, 핍박을 받은 적도 없는 우리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입에 달고 다닌다. 만델라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지지 세력을 설득했는데, 지금 정부는 '촛불 정부'로 스스로를 명명하고 지지층 명(命) 받들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적 관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옥소에 가둬두고 전 세계를 다니며 자신들이 '포용 정부'라고 선전한다. 한반도를 갈라놓은 뿌리 깊은 이념의 골을 좁히기는커녕 이 땅의 자유 보수 세력을 바퀴벌레 보듯 '궤멸'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분열된 대한민국의 복잡한 심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정은 답방에 정성을 쏟는다.
너무나 뻔한 경제 정책,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북 정책, 거기에 좁디좁은 정치적 도량까지…. 도무지 놀랄 일이 없는 현실이 겨울 한파보다 우리를 더 웅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