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박병대·고영한 구속영장…사상 초유 대법관 영장 청구

입력 2018.12.03 11:23 | 수정 2018.12.03 11:46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왼쪽), 고영한(63·11기·오른쪽)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헌정 사상 전직 대법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이들의 구속영장에 양승태(70·2기)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해 조만간 양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3일 오전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에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공전자기록 등 위작·행사 혐의가 적용됐다. 고 전 대법관은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를 받는다. 구속영장은 박 전 대법관이 158쪽, 고 전 대법관이 108쪽 분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휘감독에 따른 범죄 행위"라며 "이미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두 사람 몰래 자기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범행한 것이 아니라 두 전직 대법관이 상급자로서 더 큰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 임 전 차장 이상의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재판의 독립이나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헌법적 가치"라며 "그것을 훼손한 범행은 한 건 한 건이 매우 중대한 구속 사안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이 혐의를 부인하고, 일부 하급자들의 진술과 상당히 다른 진술을 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2014년 10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이른바 ‘공관 회동’에 참석해 강제징용 소송의 처리 방향을 논의하는 등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던 재상고심의 최종 결론을 미루고 전원합의체에서 뒤집어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받아 대법원 수뇌부에 이를 보고했고, 각급 법원의 유사 소송을 취합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 관계자들과 피고 측 대리인들이 수시로 접촉하면서 전원합의체 회부와 관련해 은밀히 협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은 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형사재판 △통합진보당 국회·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상고법원 반대 판사 뒷조사 지시 등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관 평의 내용과 내부 동향을 수집하고, 판사 사찰을 지시하는 등 불법행위를 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의 예산 3억 5000만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박 전 대법관의 후임 법원행정처장이다. 그는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면서 이른바 '부산 판사 비리' 의혹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2016년 문모 당시 부산고법판사가 부산 지역 건설업자 정모씨에게 향응·접대를 받은 뒤 정씨의 뇌물 사건 항소심 재판 정보를 정씨 측에 유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이후 고 전 대법관이 문 판사 비위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윤인태 당시 부산고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선고 기일을 미루고 변론 재개를 해 정씨 재판이 제대로 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며 재판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1심에서 무죄였던 정씨는 항소심에선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관들을 상대로 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장 전담 판사를 통해 수사기밀을 빼내고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일선 법원에 내려 보낸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조사도 점차 가시화될 전망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일제 강제징용 소송 재판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한모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전범기업 측 변호를 맡고 있던 한 변호사와 수차례 독대한 정황을 검찰은 포착했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도 당연히 필요하고, 점점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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