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인생의 門, 자기 책임으로 열고… 내 눈물은 내 손등으로 닦아야"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12.03 03:11

    마크롱 佛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국인 남매… 그 아버지 오영석씨

    10월 15일 엘리제궁에서 문재인 대통령 일행을 위한 국빈 만찬이 열렸다. 프랑스 코스 요리에 예정된 시간보다 더 길게 진행됐다. 청와대 측은 "여태껏 없었던 최고의 환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날 밤 톱뉴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만찬사였다. 대북 제재 완화를 도와달라는 문 대통령의 부탁에 대한 답변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의 대북 제재를 존중하고…." 이는 분명한 거절이었다.

    문 대통령은 외교적 망신을 샀지만 그날 밤 우리 국민의 자부심을 채워준 사건도 있었다. 식사 코스가 끝난 뒤 마크롱이 젊은 한국인을 헤드테이블로 불러 문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그는 세드리크 오(36·한국명 오영택)로 마크롱의 최측근 참모(디지털 경제 보좌관)였다. 마크롱이 몇 달 전 발표한 '인공지능 최강국 정책'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2011년 사회당의 올랑드 대선 캠프에 참여했을 때 같은 보좌진이었던 마크롱을 처음 만났다.

    그러다가 작년에 마크롱 대선 캠프의 회계 총책임자로 활약했다. 사실상 그의 팀이 마크롱 대통령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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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석씨는 “인생에서 독서 경험은 망루와 같아, 높을수록 멀리 본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문 대통령에게 세드리크 오를 소개한 마크롱은 이어 젊은 여성 한 명을 불렀다. 그녀는 하원의원 델핀 오(33·한국명 오수련)였다. 프랑스-이란 의원친선협회장이며 중동 정책 전문가인 그녀는 세드리크 오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미국 오바마재단에서 뽑은 유럽의 차세대 지도자 10명 속에 들어 있다.

    마크롱이 이 남매를 문 대통령에게 소개한 것은 "당신의 부탁은 거절했지만 나는 이렇게 한국을 중시한다"는 외교적 달래기였을 것이다. 마크롱은 직접 휴대폰으로 문 대통령 내외와 이 남매의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프랑스에서 한국 입양아의 정계 진출 사례는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남매가 정계의 최고 엘리트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발견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다. 남매의 아버지 오영석(70)씨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중절모에 나비넥타이, 붉은 목도리와 행커치프로 멋을 낸 채 나타났다.

    그는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국방과학연구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수류탄 개발을 맡다가 미사일 개발로 옮겨 갔다. 미국 나이키 미사일을 망치로 분해해 내부 구조와 작동 시스템을 익히는 방식으로 국산 미사일이 개발됐다. 그는 3000도 이상의 고온에 견딜 수 있는 미사일 추진체의 내열제 연구를 담당했다.

    "미국에서는 미사일 기술을 안 주니까 우리 정부는 프랑스에 공을 들였어요. 이런 목적으로 우리 연구원 6명이 프랑스 문화원에서 불어를 배웠어요. 우리를 가르친 프랑스인 여강사와 사랑에 빠졌어요. 1976년 말 프랑스에 출장 가 있을 때도 그녀가 찾아왔어요. 물론 출장에서는 많은 성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프랑스 여강사와의 연애로 그는 보안대에 불려 가 '왜 외국을 자주 다니는 프랑스 여성과 사귀느냐' '국방과학연구소의 정보가 유출된 게 없나' 등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국방과학연구소를 그만두고 삼성정밀에 입사했다가 프랑스 유학을 이유로 여섯 달 만에 사표를 썼다. 삼성 측에서 "회사를 떠나지 말고 장학금을 대줄 테니 다녀오라"고 붙잡자 "장학금 때문에 얽매이는 것은 싫다"고 답변했다.

    그는 1978년 프랑스 리옹의 한 대학으로 갔다. 고분자와 신소재 연구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중간에 프랑스 여강사가 합류해 1980년 결혼했다. 앞서 말한 세드리크 오와 델핀 오를 낳았다.

    "우리는 TV를 사지 않았습니다. TV가 없으면 가족이 함께 얘기하는 저녁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저는 아이에게 날마다 책을 읽어줬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이 페이지는 내가 읽고 저 페이지는 네가 읽어볼래' 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아이는 재미를 느껴 '다음부터 아빠는 읽지 마. 내가 다 읽을 거야' 합니다. 쉬는 날에는 빠지지 않고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어요."

    ―집 안에 TV가 없는 것에 대해 프랑스 부인도 동의했습니까?

    "당연히 상의했지요. 우리는 여름휴가도 한 해는 아내를 위해 유럽에서, 다음 해는 한국에서 보냈어요. 이 때문에 아이들이 한국 사회를 잘 이해합니다."

    ―책 얘기를 더 나눌까 하는데, 요즘 세대는 활자보다 영상에 익숙하지요.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으로 바깥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는 것 같습니다.

    "읽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책은 자기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언어 구사력과 생각 능력을 높여줍니다. 제 딸은 10국 언어를 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는 게 좋겠다. 인생에서 독서 경험은 망루의 높이와 같다. 망루가 높을수록 멀리 볼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지요."

    ―젊은 친구들에게 '깊은 사고를 하려면 어려운 책을 읽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게 묘지 근처로 이사 가니 맹자가 곡(哭)하는 놀이를 하고 시장 근처로 이사 가니 장사꾼 놀이를 해 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하자 글 읽는 흉내를 내더라는 것이지요. 이런 맹자 어머니를 교육의 귀감이라고 여기는데 저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봅니다. 집에서 맹자 어머니는 뭘 했나요. 부모가 먼저 본을 보이면 자녀는 따라 합니다. 부모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자녀에게 '방에 들어가 책 보라'고 하면 될 리 없지요."

    사진 찍어주는 마크롱 대통령(위). 왼쪽부터 세드리크 오, 김정숙 여사, 문 대통령, 델핀 오(아래).
    사진 찍어주는 마크롱 대통령(위). 왼쪽부터 세드리크 오, 김정숙 여사, 문 대통령, 델핀 오(아래). /오영석씨 제공
    ―제 경험으론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더군요. 자녀의 취향과 적성이 다를 수도 있고. 어쨌든 우리 연배의 남자는 대부분 일을 이유로 밤늦게 귀가했지요.

    "한국 남자는 집 안에서 소외됩니다. 돈 벌어주려고 일을 많이 해야 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위합니다. 자녀가 아빠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아빠는 곁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장성한 자녀에게 무슨 말을 하면 집에 없던 사람이 와서 귀찮게 하는 것처럼 비치지요."

    ―자녀가 정치 쪽으로 갔는데, 이도 선생의 가정교육에 영향을 받은 겁니까?

    "아이들 스스로 선택한 겁니다. 저는 자식에 대해 책임진다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아이를 책임진다는 것은 제가 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 자신도 불완전한 인간인데 어떻게 아이 인생을 결정합니까."

    ―자녀가 인생 진로 문제를 상의해 오지 않았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방향으로 문이 있는데 나가야 할 문은 네 손으로 열어야 한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어떤 문을 여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지만 그 선택은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지요. 남이 열어주는 문은 딱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관 뚜껑입니다(웃음). 아이에게 '네 눈물은 네 손등으로 닦아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어떤 좌절을 겪었을 때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는 국립응용과학원(INSA) 교수로 재직하며 프랑스 국적 취득 없이 영주권자로 25년 넘게 살았다. 2004년 KAIST 초빙교수로 한국에 되돌아왔고 프랑스 아내와는 이혼했다. 현재 그는 한 민간 업체의 기술 고문으로 있다.

    "프랑스에 살면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알게 됐습니다. 한국인은 '내가 자기를 언제 봤다고…'라는 말을 합니다. 한국은 '아는 사람끼리의 문화'입니다. 동네 골목길에서 자동차가 서로 마주칠 때 상대 차의 운전자가 아는 사람이면 '먼저 가시라'고 양보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면 내가 먼저 갑니다. 한국에서는 학연·지연·혈연을 알아야 편하지 모르면 불안해지는 거죠."

    ―한국 사람들의 심성도 과거와 많이 바뀐 것 같지 않습니까?

    "제가 떠나올 때는 한국 사람들은 너무 가난해 비굴한 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가 좋아지자 사람들이 아주 자신감 있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아주 매력적인 나라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부터 또 달라졌습니다. 사회 전반에서 욕구가 분출하면서 사람들이 몹시 거칠어졌습니다. 약간씩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길에서 서있는 제 어깨를 부딪고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좁은 나라여서 그럴 수밖에 없다 해도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 하는 말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말이 인간관계의 윤활유인데…."

    ―좌파로서 정치 인생을 시작한 마크롱은 대통령이 된 뒤 우파 개혁의 선봉에 섰는데, 지금 문재인 정부를 보면 어떤가요?

    "왜 뜻대로 안 돌아가는지도 문재인 정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理想的) 상황은 경제가 받쳐줘야만 구현할 수 있는 겁니다. 심장은 왼쪽에 있고 지갑은 오른쪽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자유시장주의를 채택해야 합니다."

    ―대단한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 자녀가 대단하다고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자기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면 대단한 것이지, 직책이 그렇기 때문에 대단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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