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 서울 답방, 비핵화 없는 '이벤트' 안 된다

조선일보
입력 2018.12.03 03:20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공동 노력에 추가적 모멘텀(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문 대통령이 먼저 김정은 답방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자기 차원에서 말한 것들은 안 지킨 것이 없다"며 답방이 올해는 아닐 수 있지만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 협상 교착 등으로 꺼져가던 김정은 서울 답방에 정부가 다시 불씨를 지피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때 판문점 우리 측 지역으로 넘어와 12시간 머물며 회담했다. 그에 이어 서울 답방까지 한다면 북의 최고 지도자가 분단 후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자기 눈으로 서울의 발전상을 보고 진정한 개혁·개방의 길로 나온다면 모두가 반길 일이다. 남북 정상이 자주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면 신뢰 구축과 긴장 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을 말살할 수도 있는 핵을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김정은이 내려온다면 우리 내부에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저항과 반발이 일어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남북, 남남 갈등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 북핵을 용인하려 한다는 국제사회의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결국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북은 비핵화 시늉만 하고 있다. 진짜 핵 폐기로 가는 첫걸음인 신고·검증 등을 조율하기 위한 미·북 실무 회담은 전부 거부하며 핵·미사일 무기고를 계속 늘리고 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만나는 '이벤트'에 목을 매고 있다.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때처럼 북핵 협상의 구체적 내용에 어두운 트럼프와 알맹이 없는 합의문을 만들어 놓고 한·미 연합 훈련 중단 같은 선물을 챙기려는 속셈일 것이다. 깜짝 이벤트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언론에 "2차 미·북 정상회담이 1월이나 2월 열릴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유지'를 계속 강조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싱가포르의 실패'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답방이나 2차 미·북 정상회담은 북이 이미 수십 기를 확보한 핵탄두와 핵물질, 고농축우라늄 시설 등을 없애는 계기가 될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종전처럼 '비핵화 의지' 운운하는 말뿐의 합의문을 또 내고 평화가 왔다고 만세 부르는 쇼는 중지해야 한다. '북핵 이벤트'에 치중하다 시간을 허비하면 북은 정말 핵보유국이 된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다 그랬다. 북핵 인질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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