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재즈 가수, 엄마… 전부 내 이름이죠"

입력 2018.12.01 03:00

심장내과전문의 겸 싱어송라이터 재일교포 3세 안사리씨
"아픈 환자들 마음 잘 알기 때문에 내 노래엔 치유의 느낌 묻어있어"

일본 도쿄서 그녀의 노래를 우연히 듣다가 "혹시 한국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팝송을 부르는데도 뭔가 애절함이 묻어나고, 엇박자 비슷하게 감기는 구절이 우리 타령 소절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재일교포 3세 재즈 가수 안사리(46)다. 게다가 심장내과 전문의다. 가수·의사·엄마·아내 4역을 하며 살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인데도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하면 그렇게 좋았어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의사인 아버지가 가수는 의사가 되고 나서 해도 된다며 의대에 가라고 간곡히 권했죠." 안씨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서 일본 나고야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했다. 재일교포 2세 아버지는 소아과 의사가 됐고, 공부를 제법 잘하는 큰딸이 의사가 되길 바랐다. 일본서 자식이 차별 없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게 부모의 심정일 터.

그렇게 해서 안씨는 도쿄여자의과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힘든 의학 공부를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끼는 잠재울 수 없었다. 블루스 재즈 뮤직 대학생 연합 서클에서 활동하며 거의 매일 노래를 불렀다. "의사가 되어 병원 레지던트를 할 때도 구석진 방에서 몰래 노래를 부르곤 했죠."

재일교포 3세 재즈 가수 안사리씨가 남편이 운영하는 음악 카페 피아노 앞에 앉아있다. 심장내과 전문의인 그는 “병원 레지던트를 할 때도 구석진 방에서 몰래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재일교포 3세 재즈 가수 안사리씨가 남편이 운영하는 음악 카페 피아노 앞에 앉아있다. 심장내과 전문의인 그는 “병원 레지던트를 할 때도 구석진 방에서 몰래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김철중 기자

의사 생활하다 우연히 들른 라이브 뮤직 하우스에서 노래를 하게 됐고, 거기에 있던 음반 프로듀서에게 발탁됐다. 29세에 'voyage(항해)'라는 CD를 내며 가수로 처음 출항했다. 그 무렵 그녀는 이미 미국 뉴올리언스 심장병 연구소로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었다. "선배 의사가 권유한 곳인데, 재즈로 유명한 도시이기에 무작정 간다고 했죠." 안씨는 뉴올리언스 재즈 클럽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재즈 밴드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트럼펫 연주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2년 유학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와 가수와 의사 생활을 병행했다. 지방 공연을 갈 때는 젖먹이 딸도 데리고 가서, 휴식 시간에 분장실서 수유를 했다. "그렇게 큰 중학생, 초등학생 두 딸은 요즘 엄마 노래보다 BTS(방탄소년단)를 더 좋아해요(웃음)."

안씨는 일주일에 두 번 도쿄건강장수의료센터 등에서 청진기를 든다. 그녀는 "의사 생활을 하면 아픈 환자의 마음을 알 수 있기에 내 노래에 치유의 느낌이 반영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싱어송 라이터다. 지난해 낸 음반에도 4곡의 자작곡을 담았다. 쉬는 날 악상이 떠오르면 피아노를 치며 악보에 담아 놓는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장구 장단에 맞춰 춤을 췄는데, '둥두둥~' 감아치는 걸 잘하셨어요. 그 장단이 몸에 남아 있는지 내 노래 운율에 가끔 그런 게 나와요. 그러면 일본인 연주자들이 잘 못 따라 하고 신기해해요. 고생도 안 했으면서 노래에 애환이 묻어 나온다고 하고요."

안씨는 공연할 때마다 김민기의 '가을 편지'나 '도라지 타령' 등 한국 노래를 한두 곡 부른다. 음반에도 담았다. 이제 안씨가 후쿠오카·삿포로 등 일본 도시를 돌며 공연할 때마다 매번 찾아오는 일본 팬도 생겼다.

안씨는 재일 조선학교를 초등학교 때까지만 다녔다. 요즘 다시 한국어 공부를 한다. "서울과 경주에 4번 정도 여행 갔는데, 사람들이 일본서 왔다면서 왜 경상도 사투리를 쓰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안씨는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 행복하기에 노래를 한다"며 "언젠가 한국에 가서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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