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市民'의 서울, '臣民'의 평양

조선일보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입력 2018.12.01 03:12

    겉치레·개인숭배 없는 서울은 근대적 문명국가의 首都
    평양은 特權적 선민만 사는 김일성 왕조의 개국 王都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평양이 성큼성큼 서울로 들어오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는 초대형 현수막이 서울시 청사 벽면에 한참 걸려 있더니, 서울시가 시내 20곳에 설치한 '세계 도시 이정표'에 최근 평양이 추가됐다. 서울의 정식 자매 도시도, 우호 도시도 아닌데 말이다. 광화문 일대에는 '백두칭송위원회'나 '꽃물결대학생실천단' '위인맞이환영단' 등의 단체들이 김정은 찬양에 나서고 있으며, '김정은 피규어'와 '으니 굿즈'를 파는 곳도 여럿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연내 서울 답방'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평양 방문-서울 답방'이라는 평면적 혹은 기계적 공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 국제 관계에서 정상회담이 양국 수도를 오가며 열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분단체제하 남북한을 각각 대표하는 '수도'로서 서울과 평양은 결코 대등한 맞수가 아니다. 평양을 여느 근대국가의 수도 보듯이 하거나 여느 문명국가의 대도시 보듯이 한다면 이는 착각이요, 착시다. 평양을 정상 국가의 일반 도시로 보기는 어렵다.

    서울과 평양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너무나 달랐다. 서울은 '관습상의 수도'일 뿐 법적으로는 아직까지 아무런 지위가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과정에서 '독재자'로 평가받는 이승만과 박정희는 화려하고 과시적인 수도 건설을 자제했다. 국가 안보와 경제개발에 집중하느라 겉치레 수도 계획에 낭비하지 않은 점은 좋았다. 개인숭배와 도시계획을 결합하지 않은 점은 더욱 좋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늘날 서울은 대한민국이 성취한 근대화의 기적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함에 있어서 너무 약소하고 빈약한 편이다. 게다가 요새 서울은 지방분권이라는 미명하에 툭하면 천도론에 휘둘린다.

    한편 평양은 1948년 북한의 초기 헌법에서 '임시 수도'로 지정됐다가 1972년 헌법 개정 과정에서 수도로 공식화됐다. 이에 따라 평양은 철두철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징성과 정체성을 담아내는 도시 공간으로 기획되고 조성됐다. '조선 인민의 심장, 사회주의 조국의 수도, 우리 혁명의 발원지' 등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평양은 사실상 김일성 왕조의 개국 왕도(王都)다. 도시 경관을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만경대혁명사적지 등이 압도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식 수도 계획의 특성은 북한이 '극장 국가'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인류학자 기어츠는 네덜란드 식민시대 이전 발리섬의 고전적 국가 '느가라'의 경우 통치 권력이 상징적 표상과 의례 및 과시적 스펙터클을 통해 발현하고 유지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북한 체제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북한이 극장 국가라면 평양은 그것의 상설 무대다. 김일성 사후(死後) 권력 세습 과정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이 기량을 발휘한 것도 극장 국가의 무대 설계자 내지 연출자로서였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 영국의 건축비평가 웨인라이트는 평양을 "거대한 연극 세트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양이 서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평양은 특권적 선민(選民)만 살 수 있는 요새(要塞) 도시이다. 같은 북한이라지만 평양과 평양 밖 지방의 생활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만약 평양 사람들에게 여유와 활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으로 표백되고 이념적으로 살균된 폐쇄 공간 안에서다. 무엇보다 그들은 상시적 동원 체제 속에 살아간다. 국가 의례나 군중대회, 집체 예술 등 각종 극장 정치를 위한 '살아 있는 인형' 혹은 엑스트라가 평양 사람들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방북 시 무엇을 보고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에 감동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김정은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면서였는데, 참고로 올해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5%로 전망되고 있다. 능라도 5·1경기장을 찾은 15만 군중을 '평양시민 여러분'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때 그는 시민과 신민(臣民)의 개념 차이를 알고 있었을까? 일반적으로 시민은 서울의 경우처럼 민주 정치 공동체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구성원을 의미한다.

    필요하면 김정은이 서울을 열두 번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평양을 서울과 같은 반열에 놓는 발상은 결코 온당치 않다. 아무리 남북 교류 협력 시대라 해도 평양의 실상과 진실은 그것대로 정직하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서울의 자긍심과 서울 시민의 자부심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서울에는 김정은 답방을 고대하며 '평양 띄우기'에 열심인 '눈뜬장님'들이 보란 듯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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