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기… 아빠가 평생 지켜줄게"

조선일보
  • 이기호 소설가·2018 동인문학상 수상자
    입력 2018.12.01 03:00

    [누가 봐도 연애소설] 산책 길 그 여자

    [누가 봐도 연애소설]
    일러스트= 박상훈
    남수는 살고 있는 원룸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호수 공원에 나가 종종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곤 했는데, 그러다가 그만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상대는 남수와 마찬가지로 주말 오후에 호수 공원으로 나와 산책을 하는 포니테일 머리를 한 여자였다. 그녀의 어떤 점이 남수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든 것일까? 물론 그녀의 외모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늘 완벽한 화장을 한 얼굴이었는데, 그래서 호수 공원에 나와 있는 다른 여자들, 일테면 야구 모자를 쓰거나 후드 티 모자를 뒤집어쓴 여자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속눈썹에 립스틱, 그리고 작은 귀걸이까지. 그대로 출근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입고 나오는 트레이닝복도 매주 달랐다. 검은색 레깅스에 흰색 면 티 차림으로 나온 적도 있었고, 핑크색 벨벳 소재의 상하 맞춤 트레이닝복 차림일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짧은 트레이닝 반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신고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남수는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뛰다가 스텝이 꼬여 그 자리에 넘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는 군살이 없었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외모보다도 남수로 하여금 일주일 내내 그녀 생각에 빠지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목소리였다. 지난 초가을이었던가, 호수 공원 중간 무렵 공터에 있는 체육 시설에서 오금 펴기를 하던 남수는 그녀의 목소리를 가까운 거리에서 듣게 되었다.

    "몽이야, 발! 몽이 발 주세요, 얼른 주세요."

    여자는 산책을 나올 때마다 매번 토끼보다 조금 큰 흰색 몰티즈 한 마리와 동행하곤 했는데, 그 강아지에게 하는 말을, 그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었다. 그 목소리는 뭐랄까, 한겨울 아침 문을 나섰을 때 비로소 보게 된 간밤의 눈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 목소리가 남수의 마음속에 남았다. 그날 남수는 힐끔힐끔 벤치 쪽을 쳐다보면서 쉬지 않고 계속 무릎을 폈다 구부리길 반복했다. 나중엔 허벅지 쪽에 경련이 일어나고 종아리에 쥐가 났지만, 오금 펴기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몽이야, 발을 주지 마렴. 계속 거기 앉아 있으렴. 남수는 자신의 허벅지를 주무르면서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남수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애견숍에 들러 작은 비숑 한 마리를 샀다. 이제 막 생후 3개월이 지난 수놈이었는데, 남수가 몇 번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턱, 작은 앞발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남수는 다른 강아지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카드 결제로 비숑의 값을 치렀다.

    "바로 산책해도 되나요?"

    남수는 딱 그 말만 물었다. 애견숍 주인은 5차 접종이 모두 끝나는 한 달 후면 가능하다고, 카드 영수증을 내주면서 대답했다. 한 달, 한 달 후. 남수는 오직 그 말만 기억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애완견을 키워본 적 없던 남수는 그러나 그 한 달 동안 끔찍한 육체노동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다. 원룸이 작아서 플라스틱 울타리를 제대로 설치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강아지 자체가 너무 활달했다. 출근할 땐 혼자 방에 남는 강아지가 애처로워 자주 뒤돌아보았지만, 퇴근해서 돌아와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원룸 안은 매일매일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침대 위 이불 위에 쉬를 하지 않나, 멀쩡한 남수의 바지 밑단을 다 뜯어놓질 않나, 책장에 꽂아 놓은 책을 다 찢어놓지 않나. 남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퇴근 후 가만히 침대에 누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TV를 보면서 시체처럼 누워 있던 남수였는데, 그런 패턴이 모두 바뀌게 된 것이었다. 사흘에 한 번씩 목욕을 시키고, 배변 패드 옆에서 기다렸다가 제대로 쉬를 하면 간식을 주고, 하루에 두 번씩 원룸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했다. 이게 뭔가? 왜 내가 이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가? 남수는 헤어드라이어로 강아지의 털을 말려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일을 멈추진 않았다. 가만히 강아지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는 일 또한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밥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일.

    한 달이 지나고, 5차 접종까지 끝낸 바로 그 주말. 남수는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첫 산책이어서 그랬는지 강아지는 자주 멈칫했고, 사람들이 다가오면 바로 남수의 다리 뒤로 숨었다. 그때마다 남수는 제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강아지를 기다려주었다.

    남수는 호수 공원 중간 무렵에서 그녀, 몽이의 주인을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완벽한 메이크업을 한 얼굴이었고, 허리선이 잘록 들어간 아웃도어 점퍼를 입고 있었다. 오랜만에 그녀를 보자, 남수의 가슴도 다시 뛰었다.

    "어머, 얜 완전 아기네요. 아이고, 귀여워라."

    그녀는 남수의 강아지를 보자마자 마치 잘 알고 지내던 아이를 만난 것처럼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남수는 강아지 끈을 손에 쥔 채 그녀 옆에 섰다. 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처음부터 너무 살가운 척을 하면 티가 나려나… 남수가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강아지 몽이가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남수가 재빠르게 제지하지 않았다면, 아마 남수의 강아지는 물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남수는 버럭,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게 성질을 냈다.

    "조심하셔야 할 거 아니에요! 가뜩이나 어린애인데!"

    남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남수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여자 쪽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무안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강아지 몽이를 안아 올렸다. 그러곤 아무 말 없이 짧은 묵례만 남긴 채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남수가 아차, 후회를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남수는 품에 안긴 강아지를 계속 쓰다듬으면서 작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너 평생 지켜줄게."

    남수는 자신이 왜 이렇게 됐는지 알 길 없었으나, 자신에게 안긴 강아지가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밥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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