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은박지에 싼 버찌씨 여섯 개로 사탕값을 치렀다

조선일보
  • 김현진 작가
    입력 2018.12.01 03:00

    [김현진의 순간속으로]

    이미지 크게보기
    폴 빌라드의 소설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에서 가게 주인 위그든씨는 매번 버찌씨 여섯 개를 받고 네 살배기 소년에게 사탕을 내준다. “돈이 남는다”며 2센트를 거슬러주기까지 한다. 소년은 한참 뒤에야 동심을 깨지 않으려는 어른의 마음이었음을 깨닫는다. 세파가 나를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이 사탕 가게를 생각한다. /픽사베이
    중학교 때 교과서에 '이해의 선물'이라는 짧은 소설이 실린 적이 있다. 폴 빌라드 작품으로,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은 네 살배기 소년으로, 위그든씨 사탕 가게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알록달록하고 향기로운 사탕으로 만들어진 천국에 온 것처럼 황홀경에 빠진다. 그 달콤한 순간의 기억은 소년이 자라 중년이 된 오십 년 후에도 뚜렷하게 환상적이다. 희고 고운 백발을 한 위그든씨는 호전적으로 영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방울이 울리면 그저 카운터 뒤에 조용히 나타나 서 있기만 했다. 소년은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에 올 때마다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토록 마음을 사로잡는 맛있는 것이 사방에 펼쳐져 있으니!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소년에게는 고문이었다. 머릿속으로 한참 맛을 상상해 보지 않고는 선택이 불가능했다. 사탕 하나를 골라 위그든씨가 포장해 줄 때 소년에게는 아쉬움과 괴로움이 교차했다. 다른 걸 고를 걸 그랬나? 더 맛있는 게 있으려나? 더 오래 먹을 수 있는 게 있었을까? 하지만 이미 사탕을 산 다음이었다. 말이 없는 위그든씨는 손님이 고른 사탕을 하얀 봉지에 넣은 다음 말없이 잠깐 기다리는 버릇이 있었다. 손님이 사탕값을 치르면 비로소 사탕을 건네고, 짧은 거래는 끝이 나는 것이었다. 소년에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 때 언제나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를 지나쳐야 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년을 데리고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에 들어갔다. 어머니가 위그든씨와 잠시 담소하는 동안, 소년은 커다란 유리 진열장 앞에서 그야말로 정신을 못 차리고 이 사탕을 보고 저 과자를 보고 있었다. 소년을 위해 몇 가지 사탕을 고른 어머니는 위그든씨에게 사탕값을 치렀다. 어머니는 매주 한두 번 시내에 나갔는데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 언제나 소년과 동행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돌아오는 길에 위그든씨 사탕 가게에 들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고, 어머니는 소년이 먹고 싶은 사탕을 직접 고르도록 해 주곤 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아직 너무 어려서 '돈'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상인들에게 뭔가를 주면, 그 사람은 그걸 받고 뭔가를 내주는 것을 보고 그것이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라는 것이라고 그 나름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소년은 커다란 모험을 떠나기로 한다. 한 번도 혼자 가 본 적 없는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로 홀로 출정을 떠난 것이다. 고생고생 끝에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 문을 열자 '짤랑' 하고 종소리가 났다. 소년은 쿵쿵대는 마음을 조심스레 누르며 진열대를 보았다. 이쪽에는 납작한 박하사탕, 저쪽에는 초콜릿 알사탕, 그 뒤에는 뺨이 불룩해질 정도로 커다란 눈깔사탕, 설탕을 입힌 땅콩, 오랫동안 입안에서 녹여서 먹을 수 있는 감초 과자…. 모두가 어린 소년 마음을 매혹하는 것이었다. 실컷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잔뜩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자, 위그든씨는 꼬마가 혼자 와서 사탕을 잔뜩 사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보니 소년에게 이만큼 살 돈이 있는지 물었다. 소년은 돈이 있다고 대답하고, 위그든씨 손에 은박지로 정성스럽게 싼 버찌씨 여섯 개를 조심스레 건넨다. 위그든씨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소년은 근심스럽게 모자라느냐고 묻는다. 위그든씨는 한숨을 쉬고는 말한다. "돈이 좀 남는구나. 거슬러 주어야겠는데…."

    소년은 영문을 모르지만, 위그든씨는 금고를 열어 소년에게 2센트를 건네준다. 나중에 소년이 두 블록이나 되는 거리를 혼자 걸어가 위그든씨 가게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안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을 매우 꾸중했지만,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묻지 않았다. 단, 다시는 허락 없이 사탕 가게에 가서는 안 되었다. 소년은 얌전히 어머니 말을 들었는데, 버찌씨로 계산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조금씩 사탕값을 주셨으리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곧 동부로 이사 가게 되면서, 소년은 이 일을 금세 잊었다. 거기서 그는 어른이 되었고, 자신만의 가정도 갖게 된다. 그리고 아내와 외국산 열대어를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한 쌍에 5달러 이하는 없을 만큼 비쌌는데, 어느 날 예닐곱 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 하나가 누이를 데리고 왔다. 아름다운 열대어들을 본 소년은 물고기를 사겠다며 자신 있게 돈은 많다고 대답한다. 물고기를 건네주자, 소녀는 조심스럽게 5센트짜리 백동화 두 개와 10센트짜리 은화 한 개를 내놓았다. 그 순간 소년, 아니 열대어 가게 주인은 먼 옛날 위그든씨를 떠올렸다. 그는 돈이 남는다며 2센트를 건넨다. 한참 동안 사라져 가는 남매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내가 도대체 30달러어치나 되는 물고기를 왜 주었냐고 묻자 그는 위그든씨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항을 닦으면서 그는 위그든씨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듣는다.

    반 친구들은 모두들 이 이야기를 좋아했다. 나만 빼고! 친구들은 물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뭐가 문제야?" 나는 대답했다. "위그든씨는 파산했을걸." "왜 파산해? " "생각을 해 봐. 당장 다음 날부터 저 가게는 먹다 뱉은 버찌씨를 사탕이랑 바꿔준다고 애들 사이에 소문이 쫙 났겠지! 분명히 먹고 남은 버찌씨니 숲에서 주운 도토리니 하는 것들을 가지고 애들이 저 물러터진 위그든씨에게 몰려갔을 거라고. 그리고 온갖 최고급 사탕을 잔뜩 고른 다음 위그든씨에게 '돈'을 내놓았겠지. 그리고 왜 거슬러 주지 않느냐고 따졌을 거라고. 그 사탕 가게가 오래갔을 것 같아? 주인공이 위그든씨를 파산시킨 거라고! 착한 위그든씨는 낙엽 몇 장이니 데이지꽃 몇 송이니 하는 걸로 사탕값을 치르려는 아이들과, 다른 아이는 버찌씨에 사탕을 준다면서 우리 아이가 가져온 조개껍데기로는 왜 사탕을 주지 않느냐는 뻔뻔한 부모들에게 시달렸을 거야. 그리고 결국 사탕 가게를 닫을 수밖에 없었겠지! 마지막에 주인공에게 들려온 위그든씨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는 이런 거야. 너도 당해 봐라!"

    나는 여전히 위그든씨의 노후가 걱정된다.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나를 '추억 파괴자'라고 비난하지만, 작금에 위그든씨가 사탕 가게를 열었다면 모두 먹고 남은 과일 씨앗 따위를 가지고 몰려가서 위그든씨는 순식간에 파산하지 않았을까. 가끔 세파가 나를 할퀴고 지나가면, 나는 위그든씨의 사탕 가게를 생각한다. 부디 그 사탕 가게가 망하지 않았기를. 가끔 꿈속에서 나는 사탕을 사러 가곤 한다. 그 꿈에서는 진열대에 놓인 아몬드 초콜릿, 파베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아직 먹어 보지 못한 사탕이 많으니 더 열심히 살자고 속삭이곤 한다.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머물수록 우울" 다리 쭉 못 뻗는 '닭장' 같은 고시원 삶 김은중 기자
    [아무튼, 주말]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기… 아빠가 평생 지켜줄게" 이기호 소설가·2018 동인문학상 수상자
    일제 시대, 교장 선생님 신사참배후 뺨에 눈물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아무튼, 주말] '지·옥·고'부터 월세 100만원 넘는 오피스텔까지… 540만명 1인 가구 '나 혼자 산다' 김은중 기자
    이상률 항공우주硏 부원장 "지체 장애도 꿈을 막지 못 했다" 박돈규 기자
    "우병우가 산업 스파이 혐의 씌워 날 사표 쓰게 해" 소송 김아사 기자
    [아무튼, 주말] 숯불 뚝배기, 위장을 뜨겁게 훑어내리는 시원함이란… 정동현
    [아무튼, 주말] 달성 소구레, 담양 암뽕, 통영 시락… 지역마다 별별국밥 다있네 대구·담양·통영·천안=강정미 기자
    [아무튼, 주말] 쇼미더라면 2018
    영화·공연·웹 드라마… 이번 주말 이 작품 김경은 기자
    "우리는 위당을 '조선의 國寶'라고 하였다"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이산 가족 상봉 100일 할머니를 찾아갔다 오종찬 기자
    방송인 타일러 "예능에서 내 외모 지적하는데 이해 안 돼" 안영 기자
    100년 넘게 이어온 '국밥' 내공 강정미 기자
    [아무튼, 주말] "책 속에 진짜 금맥이… 북 클럽 판 벌려, 돈 법니다" 권승준 기자
    [아무튼, 주말] 사람들은 내 작은 진실이 전체인 줄 아네 어수웅·주말뉴스부장
    태영호 "스웨덴 대사, 쌓인 눈 치우는 평양 시민에 감동"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