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률 부원장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자파환경시험실에서 오는 5일 발사할 천리안 2A호 모형을 들고 서 있다. 피라미드형 뿔들은 전파 흡수체다. 그는 “위성 발사가 임박하면 심호흡을 하고 아득한 우주를 상상하며 긴장을 푼다”고 했다. 그럴 때 외는 주문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사방이 온통 뾰족했다. 피라미드형 뿔들이 벽면을 파랗게 뒤덮고 있었다.

지난 20일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방진복 차림에 에어샤워를 하고 들어간 전자파환경시험실은 영화 세트장 같았다. 뾰족한 뿔들은 탄소 재질의 전파 흡수체였다. 오는 5일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발사할 정지궤도 위성 천리안 2A호(무게 3.5t)는 이곳에서 다양한 전자파를 견디는 테스트를 받았다.

한국 '인공위성 역사의 산증인'에겐 이번이 일곱 번째 위성 발사다. 이상률(58) 항우연 부원장. 1999년 다목적 실용 위성(아리랑) 1호부터 2010년 천리안 1호까지 항우연이 쏘아 올린 위성 6기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한국형 달 탐사 프로그램을 설계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시험실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보였다.

"다목적 실용 위성을 처음 개발할 땐 미국 회사를 '선생으로 끼고' 배웠어요. 모든 기술에 접근할 순 없었지요. 영문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서러웠죠. '인공위성 기술 독립'을 꿈꾸며 일터마다 태극기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위성을 쏘러 외국 발사장에 갈 때도 태극기부터 겁니다."

천리안 2A호는 한국이 책임지고 만든 첫 번째 정지궤도 위성이다. 천리안 1호 때는 프랑스와 공동 개발하며 기술 이전을 받았다. 적도 상공에 올리는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 자전 속도와 같아 마치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천리안 2A호는 동경 128.2도, 고도 3만6000㎞에 머물며 한반도 주변과 우주의 기상을 관측한다. 이상률 부원장은 "띄울 자리를 마련하려고 (수명이 끝나가는) 천리안 1호는 동경 128.15도로 옮겼다"며 "방을 뺀 셈인데 두 위성이 70㎞쯤 떨어져 있어 충돌 위험은 없다"고 했다.

우주공학자도 때론 미신을 믿는다

내년이면 인간을 달에 보낸 지 50년이 된다. 최첨단을 질주하는 과학자조차 때로는 미신(迷信)에 기댄다. 우주 비행사들은 한 줌 불꽃이 돼 객사할지 모르는 출정을 앞두고 묵념한다. 얼굴에 성수를 뿌리고 기저귀를 찬다. 발사장으로 데려가는 버스 타이어에 오줌을 누는 것도 유리 가가린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과학자도 미신을 믿나요?

"사람마다 달라요. 돼지머리 놓고 고사를 지낸 적도 있지요(웃음).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집니다."(우리나라 위성 시리즈는 불길한 숫자를 피하려고 '4호'를 건너뛴다.)

―발사는 순간이지요. 10년 준비한 일이 5분 안팎에 성패가 갈리고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발사 전까지는 긴장도 되고 시간이 더디게 가는데 카운트다운이 임박하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라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시간이 평소와 달라지는 느낌을 받아요."

―공상과학 영화를 좋아하나요.

"우주를 다룬 영화를 보는 편입니다. '마션'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그래비티'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더 끌렸어요. 아무래도 영화 자체로 즐기긴 어렵고요."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옥에 티라면.

"'마션'에 강력한 모래 폭풍 장면이 있잖아요. 화성은 지구보다 대기압이 낮아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공위성이란 쉽게 말해 뭔가요.

"지구에 있는 자연 위성이 달이잖아요. 인공위성은 사람이 달 같은 물체를 만들어 띄운 겁니다. 달은 지구에서 38만4400㎞ 떨어져 돌고 있지만, 인공위성은 지상 450㎞ 저궤도부터 정지궤도까지 다양한 높이로 올릴 수 있어요. 통신·관측·항법 등 임무는 여러 가지고요."

―인류가 쏘아 올린 위성이 1만기쯤 될까요?

"6000~7000기로 알고 있어요. 절반은 러시아가 쐈지요. 현재 작동 중인 인공위성은 1000여 기일 거예요. 수명이 다한 게 그만큼 많아요. 우주 쓰레기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요."

―한국 인공위성은 1992년 우리별 1호 이후 모두 몇 기인가요.

"크고 작은 걸 다 합치면 30기 가까이 됩니다. 과학기술 위성 1~3호를 비롯해 대부분은 죽었고요. 항우연이 올린 다목적 실용 위성 5기 중 4기는 아직 살아 있고 천리안1호도 정지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알게 모르게 인공위성 도움을 받고 삽니다만.

"GPS(위성 항법 장치)를 공짜로 쓰고 있지요. 위치 정보와 함께 시각 정보도 위성에서 옵니다. 숱한 네트워크가 위성 시각에 동기화돼 있기 때문에 인공위성이 없으면 문제가 심각해지죠. 세상이 몇 십 년 전으로 후퇴할 거예요. 5G(5세대 이동통신)를 이야기하는데,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중계소나 케이블을 깔면 되지만 사막과 정글·아프리카는 어떻게 합니까. 현대사회에서 위성은 생활의 일부라 그게 없다면 안 돌아갑니다."

그를 만나고 온 주말에 서울에서 KT 통신선이 불타는 바람에 큰 혼란이 빚어졌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서비스가 끊기고 공중전화 앞에 긴 줄이 생겼다.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이런 사태를 겪었다고 해서 편의를 포기하고 과거처럼 살 순 없다"며 "인공위성은 재난 상황에서 통신을 보장하는 좋은 수단"이라고 했다.

이상률 항우연 부원장이 조립 중인 위성체를 들여다보고 있다. 가운데 동그란 부분이 연료 탱크다. 천리안 2A호는 태양전지판이 하나뿐이다. “위성에 생긴 열을 우주 공간으로 뽑아내면서 관측을 최적화하기 위한 설계”라고 했다.

"발사 실패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어라"

이상률 부원장은 서울대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했고 천문우주과학연구소를 거쳐 1989년 항우연 설립 멤버가 됐다. 국내에선 이른바 '우주 1세대'. 발사체 분야에서 일하다가 1990년대 초 프랑스 유학을 마칠 무렵 다목적 실용 위성 1호 사업이 시작되면서 인공위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 위성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우리별 1호는 영국 기술로 했는데 신뢰도 낮은 아마추어급 위성이었습니다. 좀 더 도전하기 위해 다목적 실용 위성을 쏘아 올렸어요. 실용 위성 개발에 처음부터 관여했고 제가 가장 많이, 가장 오래 했지요."

―천리안 2A호는 이번에, 쌍둥이인 천리안 2B호는 내년 하반기에 쏘는데 서로 어떻게 다른지요.

"천리안 2A호는 천리안 1호의 임무를 대체해요. 해상도가 4배 이상 높아지고 전송 속도도 15~20배 빨라집니다. 태풍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더 정교해지는 거예요. 천리안 2B호는 미세 먼지, 오존 등 대기오염 물질과 더불어 해양 관측 임무를 맡아요. 위성까지 거리를 정밀 측정할 레이저 반사경도 달았고요."

―일기예보가 더 정확해지겠군요.

"하하하. 거기까지는 저희 업무가 아닙니다. 성능으로 보면 월등히 우수해졌어요."

―기술 독립 1호라면서 탑재체와 부품은 왜 외국산인가요?

"일단 기상 탑재체를 만들 기술이 없습니다. 위성 본체와 조립은 우리 기술로 해냈지만 부속품은 외국산이 많고요. 부품을 뺀 기술 자립도는 80~90% 수준이에요. 발사체나 위성은 거액을 투자해 만들어도 당장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예요. 3000억원짜리 위성이 3억원짜리 부품이 잘못돼 망가진다고 상상해보세요. 부품 국산화가 그래서 어려워요."

―천리안 2A호는 발사 단계만 남겨 놓고 있습니다.

"젊은 직원들은 별로 긴장하지 않고 담담해 보여요. 첫 발사 때 제가 느꼈던 간절함과 초조함이 없어요. 위성 발사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높지 않은 허들이 된 거죠. 저희 세대는 아리랑 1호 발사 때 정부 관계자한테 험한 얘기도 들었어요."

―뭐라고 했나요?

"'발사 실패하면 다 태평양에 빠져 죽어라'였지요. 진짜 죽지야 않겠지만 그렇게 각오가 달랐어요."

―나로호 발사는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에 성공했지요.

"발사체와 위성은 달라요. 인공위성은 발사체 머리에 실려 올라갔다가 분리돼 궤도를 돕니다. 아리랑 1호 발사 성공하고 손뼉 쳤는데 이틀인가 교신이 안 됐어요. 다행히 며칠 뒤 찾아내 8년을 운용했지요. 그 기억 탓인지 위성을 발사해도 샴페인을 터뜨릴 수가 없어요. 위성 개발자에겐 '숙제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입니다. 교신이 안 되거나, 성능이 안 나오거나, 고장이 나면 난리가 나지요."

―외골수라는 평도 있습니다만.

"과거엔 그랬는데 차츰 내려놓았어요. 이 일을 계속해보니 심리학이 필요하더라고요. 사람과 대화하고 함께 녹아들지 않으면 추진이 안 되니까요. 그렇다고 안 되는 일을 된다고 타협할 수는 없지만요."

우주 시대에 필요한 건 일관성

그는 다리를 전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역사적 첫걸음'을 디딜 때 대구에 살았는데 집에 TV가 없었다. 밖에서 그 역사적 장면을 얼핏 본 기억만 남아 있다고 했다.

―그 시절 꿈이 뭐였나요.

"곤충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잠자리를 잡아 유충을 키우고 매미도 굼벵이를 잡아 길렀습니다. 다리가 불편하니까 집에서는 법대나 의대를 가길 바랐어요. 비행기에 대한 관심으로 항공학과에 진학했지, 우주는 생각도 못 했지요. 대학원 가서야 발사체 궤도를 연구했고 항우연에서 인공위성으로 전공을 바꿨고 달 탐사 초안까지 짰지요. 농담으로 그럽니다. '내 인생은 곤충부터 비행기, 발사체, 인공위성, 달로 점점 고도가 높아졌다'고(웃음)."

―예민한 장비를 다루는 분인데, 어떤 직업병이 있나요?

"미세 먼지에 민감하지는 않아요. 매사를 분석하려 하고 체계적으로 한다고 할까요. 남들은 가볍게 넘어갈 걸 심각하게 따지고요."

―집에서는 어떤 남편입니까.

"(저를) 굉장히 싫어하죠. 인공위성 말고는 아는 게 없다고 하고. 나머진 평균 이하예요. 아, 집사람이 저더러 분리 배출은 잘한대요(웃음)."

―우주 쓰레기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지요.

"(최대 67만개로 추정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어요. 인공위성은 연료가 바닥나면 서서히 추락하면서 깨지고 쓰레기가 됩니다. 유엔이 '지구 저궤도에 쏘아올린 우주 물체는 발사 후 25년 안에 떨어뜨리도록 하라'고 권고할 정도예요. 고도 700㎞에 올린 위성은 25년 안엔 안 내려옵니다. 결국 적정 시간 운용한 다음에 남은 연료를 써 억지로 고도를 떨어뜨려야죠"

―정지궤도 선점 경쟁도 치열한데.

"자기 집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적도면에 위성을 무한히 올릴 수는 없어요. 궤도와 주파수를 같이 등록하죠. 우리나라 주변을 보면 한국 위성은 몇 기뿐이고 러시아·일본·중국은 이미 수십 기가 떠 있어요. 사실상 우주 영토인데 우리나라가 준비를 잘못한 거예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라면.

"한국 사람들은 결과를 중시하잖아요(웃음). 발사체든 위성이든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지요."

지체 장애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물었다. 그는 "하고 싶은 일과 열정이 있으면 무엇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꿈을 생각하고 간절히 바라며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그 꿈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 생애 안에 우주여행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 우주 계획은 2030년까지 달 탐사선을 쏘는 방향으로 미뤄졌다. 이상률 부원장은 "너무 자주 계획을 수정하면 결국 모두 패배자가 된다"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책은 큰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해요. 무엇보다 일관성이 중요하고요. 우리 국토는 작지만 우주 영토는 무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