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당하느니 욕듣고 끝내는 게 낫지"… 경찰, 겁먹고 몸사린다

입력 2018.11.30 03:07

법원, 시위 진압한 경찰 개인에 민·형사 책임… 유죄 받고 퇴직도
시위대가 경찰 걷어차도 "무죄", 집회 막은 경찰에겐 "배상하라"

정부 노동 정책에 불만을 품은 민노총 조합원들이 공공기관을 불법 점거하는 일이 이어지자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불법 시위는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지난 20일 전국 지방경찰청과 화상회의를 열고 "불법에는 법대로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다르다. 불법 시위, 농성은 여전하고 이로 인한 시민들의 민원도 계속되고 있다. 경찰은 "불법 시위 등에 적극 대응한 경찰에게 법원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놓는데 어떻게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느냐"고 했다.

법원은 최근 시위대의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일 대구지법은 올 초 대구지검 청사 1층 현관을 총 6차례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 기소된 민노총 조합원 10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은 정부서울청사 앞에 설치된 불법 농성 천막을 철거하려는 경찰관을 걷어차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시위대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불법 시위에 적극 개입하는 경찰관에게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있다. 작년 3월 대법원은 2009년 쌍용차 불법 점거농성 진압 과정에 투입된 류모 경찰 중대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민변 소속 변호사가 경찰 호송차를 가로막고 체포된 노조원 접견 요청을 했는데 이를 들어주지 않아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경찰공무원법상 자격정지 이상의 형(刑)을 받으면 자동 퇴직 처리돼 류씨도 경찰복을 벗었다.

경찰은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상징적 사건으로 백남기씨 사망 사건 재판을 꼽는다. 백씨는 2015년 민중 총궐기 집회 참가 도중 경찰 버스에 줄을 묶어 끌어내려다 경찰 물대포를 맞고 숨졌다. 당시 불법 폭력 시위로 경찰은 경찰관 76명이 다치고 경찰 버스 43대가 파손되는 등 3억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에선 이런 경찰의 시위 진압을 문제 삼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작년 10월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구은수 당시 서울경찰청장(치안정감)과 신윤균 서울청 제4기동단장(총경), 물대포 살수(撒水) 요원인 한모 경장, 최모 경장을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신 단장과 살수 요원 2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세 사람은 백씨 유가족에게 따로 6000만원을 배상했다. 한 경찰 간부는 "현장에 있는 말단 경찰에게까지 책임을 묻다 보니 예전처럼 '지휘권자인 내가 책임질 테니 명령을 따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찰 수뇌부가 자기 손발을 묶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는 '사소한 불법을 이유로 시위를 막지 마라'고 권고했고, 경찰청은 이를 받아들였다. 시위 진압 도중 경찰이 피해를 보더라도 시위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자제하라는 권고도 수용했다. 한 경비 담당 경찰은 "시위대에게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 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관공서나 기업체를 불법 점거하는 경우 건물주나 시설관리자가 퇴거 요청 서한 등을 보내기 전에는 강제 해산하지 않는다. 한 경찰 간부는 "(지휘부가) 무전으로 시위대 해산을 채근해도 현장 경찰들은 '욕 듣고 끝내는 게 (시위대와의) 소송보다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상관이 부하 경찰에게 무조건 강경 대응을 지시할 경우 상관도 직권 남용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지난달 말 김천시장실과 로비·민원실을 불법 점거한 민노총 같은 경우 집회·시위법 위반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해 현행범으로 체포했어야 한다. 경찰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원 판결의 흐름은 진보적 성향 판사들이 사법부의 핵심을 장악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쌍용차 해고자 등이 "집회 장소인 덕수궁 대한문 앞에 경찰관이 배치돼 집회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과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경찰에게 1200만원을 시위대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장이던 김기영 부장판사는 헌법재판관이 돼 있다. 한 고위 법관은 "시위대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하면 '인권에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고, 사법부 신(新)주류가 될 수 있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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