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 시각) 아침 인도 뉴델리 남서쪽 신도시 구르가온의 사이버시티 전철역. 전철이 도착하자 백팩을 멘 직장인 100여 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3분의 2는 마스크 차림. 아예 필터가 달린 공사장용 마스크를 쓴 사람도 보였다. 직장인 프리야 다루(여·27)는 "델리 공기는 정말 최악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눈은 충혈되고 목구멍은 항상 부어 있다"고 했다.
한국과 중국이 미세 먼지와 황사로 고심하지만 인도에 비하면 그야말로 '투정' 수준이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상상을 초월할 공기질로 인도 대도시 주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이날 오후뉴델리 초미세 먼지(입자의 크기가 2.5μm 미만인 먼지) 농도는 428.4 μg/m³를 기록했다. WHO(세계보건기구) 권고 기준(25μg/m³)의 17배가 넘는 수치다. 같은 날 한국 시각 오후 5시 기준으로 도쿄(25), 서울(66), 베이징(140)의 초미세 먼지 농도를 압도했다. 이러다 보니 인도 환경부 청사 앞에선 수시로 "아이들이 독을 마시고 있다" "파란 하늘을 돌려놔라"고 외치는 시위가 벌어진다.
인도 뉴델리 수도권 지역엔 5000만명이 산다. 건설 현장도 많고, 교통량도 나날이 증가한다. 하지만 뉴델리가 있는 북인도 지역은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인 데다 북쪽에 히말라야산맥이 막고 있어 공기가 잘 돌지 않는다. 뉴델리 지역의 최근 한 달간 초미세 먼지 농도는 평균 362μg/m³다. 이런 날이 일상이다 보니 인도 중앙오염통제위원회는 초미세 먼지 농도 100 미만이면 '안전', 100~200이면 '보통'으로 발표한다. 한국에서는 농도 35 이상이면 '나쁨' 으로 분류한다.
11월은 더 심하다. 추수를 마친 인근 농민들이 남은 볏단을 대량으로 태우고, 폭죽을 터트리며 노는 힌두교 축제 '디왈리'가 최대 일주일간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7~11일이었던 올해 디왈리 땐 대법원이 나서 폭죽놀이가 가능한 시간을 오후 8~10시로 통제하고, 수도권 전역의 토목 공사를 중단시켰지만 소용없었다. 디왈리 기간에는 뉴델리 자와할랄 네루 경기장 근처에서 초미세 먼지 농도가 무려 1990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인도 당국도 나름대로 일을 하고는 있다. 뉴델리시는 지난 10일부터 도시 빈민과 노숙자들에게 면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인공 강우 카드도 꺼내 들었다. 요오드화은(銀)을 비행기로 살포해 인공적으로 비를 만들어 먼지를 씻어내겠다는 것인데, 구름 없는 날씨가 이어져 이 계획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학생들의 등교 시간과 직장인 출근 시간을 조정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지난 24일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정부가 등교 시간을 오전 8시에서 10시로 늦추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하루 중 공기질이 가장 안 좋은 이른 아침엔 나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미세 먼지와 싸운다. 원래 디왈리 기간에 친지나 이웃에 과자 세트나 양초를 선물하던 관습이 있는데, 최근 2~3년 전부터 과자 대신 마스크를 선물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귀한 사람에겐 공기청정기를 선물한다. 뉴델리 시내 전자제품 대리점들은 15만원 안팎 저가형 공기청정기를 문 앞에 쌓아두고 팔고 있다. 가정에서는 실내 공기 정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알로에베라·아이비 화분이나 히말라야산 소금으로 만든 전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예 깨끗한 공기를 찾아 인도 남부로 이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인도 시민단체 로컬서클즈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뉴델리 시민 35%가 "수도권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는 돈 있는 사람들 얘기다.
지난 19일 미국 시카고대 에너지정책연구소는 인도 뉴델리에 사는 사람은 미세 먼지로 인해 평균 기대수명이 10년 짧아진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평균은 1.8년이다.
환경단체와 주요 언론들은 대중교통 확대, 태양광 발전소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만성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인도가 환경이나 교통 정책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