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여의도를 떠도는 '박근혜 그림자'

조선일보
  • 배성규 정치부장
    입력 2018.11.26 03:15

    'TK 新黨論' '내년 사면설'… 다시 '박근혜 공방전' 조짐
    野黨까지 과거사 늪 빠지면 미래 없고 국민 염원 배반해

    배성규 정치부장
    배성규 정치부장
    최근 친박(親朴)들 사이에 '신당(新黨) 창당설'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 중심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 친박 유력 인사가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에게 신당 추진 의사를 전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탄핵에 찬성한 자유한국당 복당파나 비박(非朴)계와는 함께 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 전당대회에서 비박계가 당권을 잡을 경우, 박 전 대통령을 앞세워 대구·경북(TK)에 기반한 신당을 차릴 거란 얘기가 파다하다. 홍문종 의원 등 친박들은 김병준 비대위원장의 '인적 청산'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주변도 시끄럽다. 태극기 부대가 수시로 지지 집회를 열고, 박 전 대통령을 성원하는 편지가 쏟아진다고 한다. 그들은 이곳을 '서청대'라고 부른다. '서울구치소로 옮겨간 청와대'라는 뜻이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유 변호사 외엔 누구의 면회도 거절하고 있다. 하지만 친박 핵심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지지 집회와 팬레터에 상당한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내년 박근혜 사면설'도 심심찮게 돌고 있다. 2020년 총선을 앞둔 내년 하반기에 청와대와 여권이 전격적으로 박 전 대통령 사면 조치를 빼들 수 있다는 얘기다. 친박들의 '희망 섞인 기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사면'이 전략적 카드로 검토될 거란 관측이 제기된다. 만일 박 전 대통령이 사면을 받는다면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지형이 급변할 수 있다. 내홍에 시달려온 자유한국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완전히 쪼개질 수 있는 것이다. 여권에서도 "비상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카드"라는 반응이다.

    한국당 지도부와 비박 진영은, 박 전 대통령과 친박이 정치 전면에 다시 나서는 건 어떻게든 막겠다는 기류다. 당 조강특위는 한때 '박근혜 문제 끝장토론'을 제안했고, 당협위원장 평가에서 국정 농단과 '진박(眞朴) 공천' 관련자를 집중 심사하겠다는 방침이다. 2016년 말 탄핵 표결에 이어 친박과 비박이 당권을 놓고 또다시 '박근혜 공방전'에 빠질 공산이 크다. 여차하면 여권까지 여기에 가세할지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본인은 '직접 돈 한 푼 받지 않았는데 적폐로 몰렸다'고 억울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 농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명백하다. 법적 책임 이전에 실정(失政)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정권 핵심부였던 친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탄핵 사태 2년 만에 '박근혜'를 또다시 여의도 정치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그에게 기대어 'TK 신당론'이나 어설픈 '사면설'이 더 활개 칠 수 있다. 친박과 태극기 진영은 "탄핵 찬성한 것에 사과하라"며 비박과 복당파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비박은 '친박 청산'으로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야당에도 도움이 안 되고, 박 전 대통령을 오히려 두 번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1년 반을 과거 정부 적폐 캐기에 주력해 왔다. 그사이 경제는 악화되고 국민 삶은 팍팍해졌다. 그런데 야당까지 '박근혜 과거사' 싸움에 빠져들 듯한 조짐이다. 다수 국민이 바라는 건 박근혜 신원(伸寃)이나 부활이 아니다. 무작정 '친박 죽이기'가 능사인 것도 아니다. 국민은 서민 삶과 경제를 되살릴 유능한 정치 세력을 원한다. 한국당은 지금까지 과거에 얽매여 미래 정책 대안도, 새로운 정치 리더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서 다시 '박근혜 그림자'에 빠지면 야당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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