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지방선거 민진당 참패...탈원전 법 폐기 국민투표 통과

입력 2018.11.25 06:38 | 수정 2018.11.26 08:42

차이잉원 총통 민진당 주석직 사퇴...경제악화 탓...간판 정책 ‘탈원전’⋅‘동성결혼 인정’ 타격
"親중국 국민당 선호보다 민진당이 싫어"...도쿄 올림픽 대만 명칭 국민투표는 겨우 부결

탈(脫)중국 성향이 강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民進黨)이 24일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22개 현과 시에서 진행된 시장 선거에서 6명의 시장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4년전 지방선거에서 배출한 13명의 절반도 안된다. 차이 총통은 이날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직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관영 보수언론인 환구시보는 이날 밤 사설에서 민진당의 참패를 두고 차이 총통 집권 2년간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관계가 대립으로 되돌아갔다며 반성하라고 촉구했다. 마샤오광(馬曉光) 중국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25일 대만 선거 논평을 통해 "이번 투표 결과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발전의 혜택을 공유하려는 대만 민중의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민진당의 부진이 친중(親中) 성향의 국민당(國民黨)에 대한 선호보다는 임금 정체를 비롯 탈원전 정책 등 차이잉원 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불만이 쌓인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포함해 모든 국제스포츠 대회 참가 때 명칭을 ‘차이니스 타이베이’서 ‘대만’으로 변경하자는 국민투표 안건이 부결됐지만 찬성표가 435만 420표로 가결 기준인 대만 유권자의 25%(493만 9267표)에 근접한 수준을 기록했다.

또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중단시킨다는 전기사업법의 관련 조항 폐지를 묻는 국민투표는 530만 5000개 찬성표가 나와 통과됐다. 이로써 차이 총통이 취임 이후 법까지 고치면서 대못 박기에 나선 탈원전 정책이 폐기 수순을 밟게됐다. 차이 총통이 옹호해온 혼인평등권도 국민투표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안건들이 가결돼 "대만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게 될 것"(워싱턴포스트)이라는 관측은 빗나가게 됐다.

4년마다 9개 유형의 공직자를 한번에 뽑는 '구합일(九合一)' 지방선거는 집권당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짙다. 이번 선거 참패로 중국으로부터 견제 압력과 경제악화에 대한 후폭풍에 시달려온 차이 총통의 정국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돼 2020년 재선은 커녕 조기 레임덕 우려까지 나온다.

24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참패하자 차이잉원 총통은 민진당의 주석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AP연합뉴스
♢ 경제 실정 탓 집권당 참패...4년 전 지방선거 판박이

차이 총통은 참패가 역력해지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집권당의 주석으로서 오늘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지겠다"며 "국민들이 세운 높은 기준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고, 지지자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라이칭더(賴淸德) 행정원장은 이날 차이 총통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차이 총통은 사표를 반려하고 라이 원장이 계속 국정을 이끌어달라고 주문했다.

대만 중앙선거위원회가 25일 새벽 발표한 지방선거 결과에 따르면 22개 현과 시의 시장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6개, 국민당은 15개 석을 확보했다. 4년전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인 국민당이 6개, 민진당이 13개 석을 차지한 것과 대조된다. 7개 현과 시의 지도자가 민진당에서 국민당으로 바뀌었다.

특히 22개 현과 시 가운데 6대 직할시의 시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타오위안(桃園)과 타이난(臺南) 2곳만 확보했다. 4년전 4곳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민진당은 20년 간 장악하면서 탈독립 캠프 역할을 해온 표밭인 가오슝(高雄)까지 국민당에 넘겨주게 됐다.국민당 후보는 가오슝을 비롯 신베이(新臺), 타이중(臺中) 등 3개 직할시에서 승리했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는 무소속 커원저(柯文哲) 현 시장이 재선했다. 홍콩 문회보는 행정구역 면적 기준으로 민진당이 차지한 면적이 4년 전 63%에서 23%로 줄었다고 전했다.

중국 환구시보 등 중국언론들은 24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민진당(녹색)이 참패하고 국민당(파란색)이 약진했다고 전했다.22개 현과 시 지도자 가운데 민진당은 4년 전 지방선거에선 13개석을 차지했지만 이번엔 6개석을 지키는데 만족해야했다. /환구망
4년 전 지방선거와 이번 지방선거는 모두 집권당의 부진한 경제 성적표에 대한 불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만의 경제성장률은 올 2분기 3.3%에서 3분기 2.28%로 하락했다. 5개 분기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둔화된 것이다.

문회보는 이번 선거기간에 나온 유행어가 "현재 대만에서 최대 당은 ‘민진당 싫어 당’이다"였다며 선거결과는 유행어가 우스개 소리가 아님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국민당은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가 자신들이라고 즐겨서는 안된다. 그 대신 국민당과 차이 총통에 실망한 때문에 이긴 것"(순다첸 대만 CTBS 경영대학원 교수)이라는 평가와도 맥이 닿는다.

1998년부터 민진당의 텃밭이었던 가오슝에서 시장으로 당선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는 지역경제를 살려 가족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날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 대만 친중으로 선회?...반중 강화 관측도 제기

중국은 민진당의 참패로 대만의 반중 노선이 약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위커리 전 대만연구중심 주임은 "이번 선거결과가 양안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민진당이 갈림길에 있다. 더욱 합리적인 목소리가 생길지 지켜봐야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엇갈린 관측도 나온다. 왕쿵이 대만 중국문화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민진당 강경파들은 차이 총통 대신 라이칭더 행정원장을 다음 대선에 출마시키기를 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지방선거 참패이후 민진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를 지지하면서도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보여온 차이 총통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라이칭더는 행정원장으로 지명된 이후 줄곧 공개적으로 독립를 선호하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왕 교수는 "라이칭더가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양안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독립성향을 보여온 차이 총통 취임 이후 엘살바도르 파나마 등 5개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만과 단교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현재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수교국은 17개국에 불과하다.

‘대만' 명칭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안건이 국민투표에 부쳐진 데 대해서도 중국은 '변형된 독립 시도'라면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았다.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지만 찬성표도 430만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표와의 차이가 불과 86만 3840표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대만으로 출전 팀 명칭을 바꿀 경우 오랜 시간 준비해온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기회를 잃어 시간을 낭비하고 경력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도 반대표를 던지게 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앞서 대만이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대만'으로 명칭을 바꿔 참가한다면 참가 자격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친중 입장에서 대만으로의 명칭 변경을 반대했다기 보다는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 차이 총통 표 정책 줄줄이 타격

이번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10개항의 국민투표중 하나가 "전기사업법 95조 1항인 '2025년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을 완전 중단시킨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데 동의합니까"이다. 이 조항은 2016년 대선에서 "대만을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차이 총통이 집권 2년 차인 작년 1월 신설한 조항이다.

차이 총통은 법률 개정과 함께 전체 6기의 원전 중 4기를 가동 중단하는 등 탈원전에 속도를 내왔다. 하지만 정전(停電) 사태가 잇따르면서 전력 수급 불안 문제가 불거지자 원전 지지 단체인 '원전유언비어종결자'의 황스슈(黃士修), 국민당 출신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등의 주도로 '탈원전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운동이 이어졌다. 그 결과 법정요건(28만1745명)을 넘어서는 29만2654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가 이번에 실시된 것이다.

결과는 탈원전 법조항 폐지 찬성이 530만 5000표로 반대표(362만 5286표)보다 167만표 이상 많았다. 원전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이 줄었기 보다는 전력수급 불안과 청정에너지 선호 등의 현실적인 이유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건으로 영향을 받은 지역의 농산물과 식품의 수입 금지 유지에 동의하냐고 묻는 국민투표 안건에서 찬성표가 701만 8584표로 반대표(201만 6347표)의 3배를 웃돈 것으로 나타나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공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화력발전 생산량을 매년 최소 평균 1% 줄이는 데 동의하냐는 국민투표 안건에서도 찬성이 717만 1848표로 반대(190만 1945표)의 3배를 넘어섰다.

10개 국민투표 안건 중 직⋅간접으로 5건이 관련된 동성결혼에 대해 대만 유권자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민법상 혼인 주체를 남녀로 제한(민법상 동성결혼 금지 유지)해야 한다는 항목이 7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통과됐다.

동성결혼에 대한 국민투표는 차이 총통이 2016년 처음으로 대선 후보 자격으로 "저는 혼인평등권을 지지합니다"라고 발언한 데 이어 2017년 5월에는 대만 최고법원인 사법원의 대법권 회의가 동성결혼을 금지한 대만 민법의 혼인 규정을 위헌판결하면서 2년내 관련 법을 수정 또는 제정하라고 권고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대만에서 국민투표 안건이 가결되려면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고, 동시에 적어도 유권자(1975만 7067명)의 25%인 493만 9267표 이상이어야한다. 국민투표가 통과되면 대만 정부는 3개월 안에 그 결과를 반영한 법안을 입법원(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입법원은 이를 심의해 통과시킬지를 결정하게 된다.

♦️용어 설명: '구합일(九合一)' 선거
대만 지방선거는 특별시·현(급)시 시장 및 시의원을 비롯해 아홉 가지 공직자를 한번에 선출해 '구합일(九合一)' 선거로 불린다. 약 1800만명의 유권자가 총 1만1130명에 달하는 공직자를 뽑는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