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이익 공유제 없는 '中企 강국'

입력 2018.11.24 03:04

김강한 산업2부 기자
김강한 산업2부 기자
'Deutschland ist Mittelstand(독일은 중소기업이다).'

5개월 전 독일 베를린 도심에서 본 어느 광고판 문구다. 독일 2대 은행인 코메르츠방크가 내건 글귀인데, 독일에서 중소기업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4위 규모인 독일 경제를 떠받치는 건 이름 없는 중소기업이다. 독일 전체 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이 99.6%를 차지한다. 이들이 전체 일자리 가운데 70%를 창출한다. 수출의 60~70%도 중소기업이 달성한다. 올 9월 현재 3.4%인 독일 실업률은 중소기업이 양질 일자리를 만들어낸 결과다.

비결은 독일 정부와 금융권이 중소기업을 위해 일을 제대로 하기 때문이다. 독일 금융사들이 중소기업에 대출한 내용을 보면 1년 미만 단기 대출은 13%에 불과하고 5년 이상 장기 대출이 70%를 넘는다.

덕분에 중소기업은 자금 걱정을 접고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은행들은 중소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함께 대책을 만들고, 그래도 회사가 문을 닫으면 폐업 절차를 맡아 처리한다. 독일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소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2016년과 지난해 각각 9억유로(약 1조1500억원)가 넘는 예산을 들여 공장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대기업들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지난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디젤을 악당처럼 보면 안 된다"며 "환경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디젤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계 각국이 배출 가스를 조작한 독일 자동차 기업들을 비난했지만, 메르켈은 80여만명이 종사하는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디젤차 퇴출을 언급조차 않았다. 정부의 '믿음'에 화답하듯 독일 자동차 업체는 최근 '디젤 하이브리드'라는 기술을 개발해 혁신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달 초 협력 이익 공유제 법제화를 발표했다. 쉽게 말해 대기업이 버는 돈을 중소기업에 나눠주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은 고개를 갸웃한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담보대출 비중은 71.2%다. 좋은 기술이 있어도 담보가 없으면 돈을 못 빌리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들은 혁신을 위해 규제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이지만 규제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그래놓고는 이익만 나누라고 하니 기업이 정부를 못 믿는 것이다.

대기업 돈 몇 푼 뜯어 중소기업 손에 쥐여준다고 자금난이 해결되진 않는다. 대·중소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게 독일처럼 각종 걸림돌을 제거하면 기업은 절로 큰다. 그러면 투자도 고용도 자연스레 늘어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중소기업 국가'라는 말까지는 못 듣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은 정부 마음대로'라는 말은 안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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